아담 족과 예수 족
성경은 인류를 아담의 족속(자연인으로서 죄와 죽음에 속함)과 예수의 족속(성령으로 거듭난 신인으로서 생명과 의에 속함)으로 구분한다. 예수 족은 아벨부터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선택된 순례자들의 계보이며, 한 사람 예수의 의와 십자가로 인류에게 생명과 의가 도입되었다.
미개발의 동력 자원
세계는 식량 문제만큼 동력 자원 문제가 심각하여 석탄, 원자력, 태양열 등 다양한 에너지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국가의 진정한 국력은 경제력, 정치력, 군사력, 과학력을 균형있게 갖추되, 도덕과 조직력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기도의 힘이 모든 물질적 힘보다 무한하므로, 한민족은 이 영적 동력을 개발하여 국력 강화에 활용해야
중생(重生)한 자와 범죄
중생한 자는 하나님의 씨를 받아 새로운 본성을 가지게 되지만, 동시에 육신의 옛 본성도 여전히 남아있어 두 본성이 갈등한다. 따라서 요일 3:9의 "범죄하지 아니하나니"는 성령으로 충만한 새 본성은 범죄할 수 없다는 의미이며, 중생한 자가 실제로 죄를 짓지 않으려면 성령 충만함으로 성화를 완성해 나가야 한다.
비만증 사랑 결핍증 환자
선진국의 주요 질병인 비만증과 정신분열증은 각각 과식과 운동 부족, 그리고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질병들을 치유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순수하게 나누어주는 사랑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성경에 계시된 본성은 사랑, 빛, 거룩함, 영의 4가지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성령을 통해 나타나며, 빛은 보고 아는 것, 열과 에너지, 선과 미, 생명의 근원이 된다. 하나님은 거룩하심을 십계명으로 표현하셨으며 영이신 분으로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받으실 분이다.
죄의 정의
죄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역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며, 죄에 대한 세상의 해석들은 동물성, 무지, 환경의 산물 등으로 보지만 이를 단순한 성적 저하 정도로 취급한다. 그러나 성경은 죄를 하나님 관점에서 보며, 인간이 하나님의 법도와 뜻을 따라 살도록 창조되었음에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등지는 것으로 정의하여 훨씬 더 치명적
성경 해석자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쓰인 초자연적인 책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만이 영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을 읽고 공부할 때는 반드시 성령이 저자이자 해석자이자 교사로서 가르쳐주기를 경건하게 믿고 기도해야 한다. 가정, 직장, 학교 등 모든 곳에서 성경 공부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모든 신자가 평생 성경 학도이자 교사가 되어야 한다.
죽은 행실의 회개
성경은 행실을 착한 행실, 악한 행실, 죽은 행실 세 가지로 분류하며, 중생한 사람만이 성령의 열매로 진정한 착한 행실을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은 행실은 사랑과 영적 생산이 없는 율법적 종교 활동, 사이비 종교 운동, 교조주의나 당파 싸움처럼 표면적으로만 주님을 위한 것처럼 보이는 빈껍데기 행실을 의미한다.
대신속죄 대신형벌
구약 성경 시대에는 노예 해방이나 사형 대신 속전(몸값)을 지불하는 제도가 있었으며, 이는 타인을 위해 대신 대가를 치르는 관례였다. 글쓴이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는 사랑의 사례들을 언급하며,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형벌을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의미를 강조한다.
사제(私製) 기독교
성경을 자신의 욕망과 사상의 수단으로 왜곡하는 일은 오래되었으며, 공산당부터 사이비 종교까지 다양한 집단들이 성경을 자기식으로 해석하여 이용해왔다. 마치 개똥 의학이나 개똥 철학처럼, 일부 종교인들도 유치한 논리로 교권 싸움을 벌이며 자신과 다른 의견을 거짓된 신학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인다.
애정수입(愛情收入)과 광기문명(狂氣文明)
인간은 애정 결핍으로 인한 절망과 고독에 시달리며, 어린 시절 과도한 애정을 받은 사람이 성장 후 냉엄한 평가에 직면하면 애정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비뚤어진 행동(폭력, 물질 유혹, 아첨)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애정 결핍의 영적 근원은 신의 사랑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진 인간이 물질 문명 속에서 그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이것이 현대
주님과 나와의 관계
주님과의 관계는 포도나무와 가지, 신랑과 신부로 비유되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의와 새 생명을 주신다. 이러한 연합은 새 언약의 법적 실효와 성령의 내주를 통해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며, 예수의 의를 소유한 새로운 종류의 의인이 되게 한다.
대속자
키에르케고르의 실존 단계에 따르면, 인간은 감성적 실존에서 도덕적 실존으로 나아가지만 도덕적 단계에서는 악을 행하면 죄책감에, 선을 행하면 교만에 빠지는 절망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도덕적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신앙적 실존으로 비약하게 되며, 이는 자신의 죄와 죽음을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의 대속을 깨달을 때 가능해진다
자유의 문제
진정한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법칙과 조건 속에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이 정해준 인간의 법도 안에서만 존재하며, 이를 벗어나 절대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파멸을 초래한다. 현대인은 기존의 속박에서는 벗어났지만 그 자유의 방향성을 잃어 방황하고 있다.
성도가 받는 최고 그랑프리 [면류관]
성경에서 성도는 천국에서 신앙과 행실에 따라 다양한 상을 받으며, 그 중 최고의 상은 자신이 전도한 영혼들이 이루는 면류관이다. 바울과 다니엘은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자가 영원한 영광과 축복을 받을 것이라 말했으며, 전도하지 않은 책임에 대해서는 엄중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 경고했다.
주(主) - 퀴리오스 -
신약성경에서 '주'라는 칭호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을 자신의 절대적 주권자로 받아들이는 신앙 고백을 의미한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고백은 단순한 입술의 말이 아니라 예수가 자신의 전 생애, 소유, 행위의 주인임을 마음으로 수락하는 것이다.
실존적 회의
아버지가 자식의 병 치유를 간구할 때 보인 "내가 믿나이다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는 고백은 실존적 회의의 전형으로, 믿고 싶으나 믿어지지 않는 인간의 진솔한 신앙 모습을 보여준다. 기독교 신앙은 실험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을 믿는 것이므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며, 회의에는 지식을 추구하는 명제적 회의, 악의적인 회의, 그
종이 되어 섬기는 삶
부유함과 많은 종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불만이 많은 노부인의 예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려는 삶은 불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솔로몬 왕도 모든 영광과 부를 누렸지만 결국 모든 것이 헛되다고 깨달았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은 만인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에 있으며,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왕자와 공주의 삶의 스타일이다
영원한 생수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목마른 여인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는 생수인 자신을 제시하셨다. 세상의 것들은 잠시 만족을 주지만 다시 목마르게 되는 반면,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무진장으로 제공되는 영원한 생명수이다. 예수님과 그의 영인 성령의 생수는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며 그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다.
순
'순'은 사랑방 문화를 예수 운동과 성경 공부로 침투시키기 위해 만든 조직의 이름으로, 순하고 소박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단위 조직을 나타낸다. 순은 성경에서 예수님을 지칭하며, 한문자로도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시골의 순박한 이미지를 대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