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증인과 증거
4복음서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며, 사도행전의 수백 명의 순교자들은 부활의 증인들이었다. 예수님의 부활 증인들이 영혼의 이득 없이 순교를 택한 심리적·도덕적 동기와 유대교의 안식일, 할례, 회당이 주일, 세례, 교회로 바뀐 사회학적 변화는 부활의 역사성 외에는 설명할 수 없다.
예수의 상흔(傷痕)
부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상흔은 우리가 부활의 약속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여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의에 대해 살게 하셨으며, 우리에게 죽으심으로 사는 법을 가르치셨다. 부활의 권능은 그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만 얻어진다.
부활과 과학
과학 법칙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발견되는 확률적 진리이므로 반복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인 예수의 부활을 과학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 미국 생물학 학회장 A.C.아이비 박사도 현재의 과학 지식으로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과학적 태도가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예수의 부활은 어떤 과학보다 절대적이다.
빈 무덤
예수의 죽음과 무덤 파수, 부활 사건에는 유대 산헤드린과 로마제국의 국권이 개입했으며, 로마 병들이 부활을 목격했으나 유대 당국이 뇌물을 주어 도난설을 날조했다. 유대와 로마 당국 모두 부활 신앙 운동을 억압하려 했지만 예수의 사체를 제시하지 못했는데, 이는 예수가 실제로 부활했기 때문이다.
예수 부활의 실존적 의미
예수의 부활은 죽음을 극복하고 죄와 죽음의 노예였던 인간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는 육체적이고 실존적인 사건이다. 부활의 영인 성령은 창조의 역사보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 삶의 매 순간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성화와 영화의 영이다.
사랑의 빚진 사람
세리와 바리새인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함보다 겸허한 회개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고 남을 은인처럼 대하기보다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사랑의 빚진 것만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신앙인은 자신이 이루어낸 것이 아닌 받은 은혜만을 기억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천국의 소유
물질은 줄수록 작아지지만, 사랑과 영혼의 보화인 천국의 것들은 나눌수록 커진다. 사랑은 사랑함으로 존재하고, 영생과 성령도 나누고 전도함으로써 유지되고 의미를 갖는다.
예수와 기적의 문제
자연 법칙 속에는 초자연이 없다는 증거가 없으며, 예수가 행한 기적들은 신화가 아니라 자신의 신성과 교훈을 뒷받침하기 위한 표적이다. 하나님은 의사를 통한 치유든 즉석에서의 기적이든 모두 같은 기적으로 보시며, 무에서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 죽은 자를 살리는 것도 가능하다.
염려하지 말라.
성경에서 365회나 언급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크리스찬은 내일의 걱정과 생활의 염려를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새와 백합화처럼 신앙의 본질에 투철해야 한다. 염려는 감기처럼 신앙 성장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며, 심리학적 분석에 따르면 인간의 걱정 98%는 과거, 미래 가상, 불가항력의 일에 대한 것으로 실제 염려할 사항은 2%에 불과하
신학사(神學史)의 3대 위기
신학사의 3대 위기는 초대 교회의 기독론(예수의 신성 여부), 중세 교회의 구원론(믿음 vs 행위), 근대 신학의 성경 권위 문제로 나타났다. 초대와 중세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삼위일체와 오직 믿음의 교리를 정립했으나, 성경의 권위를 흔드는 현대의 도전은 모든 기독교 교리의 기초를 위협하고 있다.
정상 참작
주님은 각 사람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대하시며, 니고데모, 부자 청년, 십자가의 강도 등에게 서로 다른 처방을 내리셨다. 학대받는 어린이와 부자집 자녀, 낡은 자동차를 탄 운전자, 유전적 약점을 가진 사람 등 모두 처한 정상(처지와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대우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님은 모든 사람의 정상을 참작하
죄책의 투사(投射)와 전가
죄책감을 느낀 사람이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거나 전가하는 심리 현상을 설명한 글이다. 남의 악을 공격하는 데 열을 올리는 사람은 자신의 내적 죄책감을 감추기 위해 공격을 방패로 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타인의 약점을 포용하고 덮어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중국 민족의 양자 택일
중국 민족의 상징인 장개석(기독교)과 모택동(공산주의)은 예수와 적그리스도의 영적 대립을 나타내며, 이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갈등을 대표한다. 한반도의 38선은 이러한 영적 분계선으로서 기도와 성령으로만 극복할 수 있는 여리고 성이다. 우리 민족은 이 양자택일 앞에서 신앙적 선택을 해야 한다.
아담권과 예수권
아담의 범죄로 인류가 죄와 사망에 빠졌듯이, 예수의 의로운 행동(십자가)으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은혜와 의와 생명을 얻게 된다. 아담권은 하나님의 진노와 죄와 사망에 속하고, 예수권은 생명과 의와 성령권으로서 정죄가 없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절대적 왕자권이다.
야곱의 궁지
야곱은 이기주의자이고 기만적인 인물이지만, 잘못된 방법으로서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는 집요한 집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신선(대하나님관계)은 끊지 않았다.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추적 앞에 옛 야곱은 깨지고 새로운 이스라엘로 탄생하게 된다.
마음에 새겨 둔 헌법 전문
저자는 이란의 종교적 헌법을 비판하면서, 한국의 새 헌법 제정에 대해 자신이 구상하는 기독교 중심의 헌법 전문을 제시한다. 그가 제안하는 헌법은 여호와를 민족의 하나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성경을 신앙의 원리로 하며, 국민 수익의 십일조를 선교에 사용할 것을 규정하는 내용이다.
노아 홍수족과 고모라족
성경은 노아 시대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하는 세상일뿐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예수님은 말세가 노아 시대와 소돔·고모라처럼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따라서 신자들은 방주를 지었던 노아처럼 세상과 다른 영적 파장을 가져야 한다.
허무적 행동주의
인간은 본질적으로 의미 없는 존재이지만, 행동하는 한 구원이 있다는 허무주의적 휴머니즘과 행동주의의 인생관을 제시한다. 행동의 결과가 무의미할지라도 결사적으로 살아가야 하며, 이는 신앙 없이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무신론적 교육의 핵심이다.
영원을 심자
당년부터 백년까지의 수확을 위해 곡초, 나무, 사람을 심어야 하지만, 영원한 수확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심어야 한다. 세상의 물질적 성공도 중요하지만 영혼을 잃으면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예수 안에서 예수를 위해 심은 것만이 영원히 남는다.
크리스찬의 고독
크리스찬은 이 세상의 나그네이자 이방인으로서 세상의 정욕과 자랑을 사랑하지 않으며, 아브라함처럼 순례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세상과 체질, 언어, 고향이 달라 세상 사람들로부터 냉소와 비판을 받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