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참가
김준곤 목사
1999-01-28
조회 1336
미국 동서해안 간 물고기 운송 예시에서처럼 과도한 보호는 생존 경쟁의 기회를 빼앗아 오히려 죽음으로 이끌게 되며, 인간도 마찬가지로 일, 도전, 고난을 통해 영혼이 성장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과 시련은 우리를 위로하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를 견디는 과정에서 더욱 강해진다.
또 한 예화가 있습니다. 미국의 서해안에서 동해안으로 물고기를 큰 물통에 담아 운반하는데, 수산 기사가 옆에 따르고 물고기가 서식하는 모든 생활 환경을 다 갖추어서 2주일간 기차에 싣고 운반했지만 물고기가 다 죽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들은 항상 생존 경쟁이라는 것이 있는데 물통 속의 물고기들은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그 생존 경쟁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너무 과잉 보호를 했던 것입니다. 그 생각이 나서 그 안에 조류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그 다음엔 큰 낙지 한 마리를 집어 넣었습니다. 이 낙지가 배가 고프자 긴 다리를 내밀면 물고기들은 나는 죽었구나 하며 피해 다니면서도 2주일 동안 죽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줄 압니다. 세계적으로 오래 사는 사람들은 "사람은 일하고 도전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고 말합니다. 인간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째서 하나님은 이 고통을 주었습니까? 왜 이런 시련을 주었습니까?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하고 까뮈는 고발했습니다. 사단을 하나님께서 이용을 합니다. 사단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고후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