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의 순정, 가을 진실"...
가을 갈대는 쓸쓸함과 행복을 동시에 주며, 개인의 어린 시절 추억과 역사적 경험을 되살리는 존재로서 연약하면서도 생각하는 존재의 상징이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과 달리, 현대 정치는 탐욕과 집착으로 국기까지 흔들며 진실을 외면하고 있으며, 가을의 진실은 갈대처럼 숨겨진 비밀까지 드러낼 것이다.
가을 석양 노을진 들녘을 지나며 바람에 운무 하는 갈대 숲을 본다. 갈대는 보기에 따라 쓸쓸한 추억과 포근한 행복 속에 잠기게 한다. 갈대를 보면서 느껴오는 느낌은 보는 대로 흔들리는 만감이 교차되는 출렁이는 물결과 흐르는 물과 같다.
나는 갈대를 볼 때마다 철모른 아이가 된다. 황금물결 들녁 가을 방천에 소먹이는 소년이 된다. 논두 렁 사이를 흐르는 맑은 실개천에서 미꾸라지를 잡는 꿈을 꾸게 한다. 갈대와 나, 갈대와 인생이 어떤 말없는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뉴져지 턴파이크 스포츠컴플렉스 옆을 지날 때마다 끝없이 출렁이는 갈대 들판, 웨스트 포인트로 이 어지는 베어마운틴을 오고갈 때 흐느러진 갈대의 도열은 사열대를 지나는 군 장성의 당당함을 느끼 게도 해준다.
갈대는 민물 갈대, 갯물 갈대로 산에도 들에도 바다 갯펄에도 있다. 어디에 있는 갈대든 갈대는 무리 를 이룰 줄 아는 공동체의 숲을 이룬다. 하나의 갈대만 우뚝선 갈대는 없다. 갈대는 흙의 산화부식을 중화시켜 주고, 뿌리털이 많아 물에 씻겨 가는 흙을 붙잡아 준다. 특히 시궁 창이 되어 버린 곳에서 오히려 강하게 자란다. 그 오염을 씻어주고 덮어주는 고마운 풀꽃이다.
갈대 숲만 보면 가슴이 울렁이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40년대 유년의 해방을 만주벌판 갈대 숲에서 맞았고, 갈대 숲과 낙조가 어우러진 수려한 순천 해협에서 6.25를 통과했다. 내 깊은 의식의 심층 속에 갈대 숲에서 자란 고향이 있는 것 같다. 갈대처럼 억새처럼 자라라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 첫돌에 갈대꽃으로 온 집안을 꾸며 주었던 생각도 난다.
쉐익스피어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했고, 파스칼은 그의 팡세에서, "인간은 자연 중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어 "나는 생각 없는 사람이란 상상할 수 없다. 그러한 자는 돌이거나 짐승에 불과할 것이다. 본능과 이 성, 두 가지 본성의 표지이다."라고 덧붙였다.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 것이 어디 여자의 마음뿐일까? 내가 좋아하는 가요에는 '갈대의 순정'이라는 노래도 있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알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사랑에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어디 노래에나 있을 뿐인가? 탐욕성, 집착성 인간성의 크라이막스 극치를 보 는 한국의 대선 경주는 국기(國基)마저 흔들어 버리는 참으로 더러운 변덕 성을 연출하고 있다. 알게 모르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몇 백억, 몇 천억, 몇 조억식 해 먹는 정치판 속 에 애써 일꾼 한국의 경제마저 뿌리를 들어내는 악순환을 본다. 어제 말 다르고 오늘 말 뒤집는 세 상이다. 대검찰청은 야당총재의 비자금 비리수사를 선거 후로 유보한다고 했다. 선거후 누가 대통령 이 된들 또 한번 치뤄야하는 비자금 비리의 몸서리치는 혼란을 생각하면 암담한 절망감이 앞선 것은 나 혼자만의 기우(杞憂)는 아닐 것이다.
가을은 폭로의 계절, 있는 대로 생긴 대로 보여주는 진실의 법정이다.
그리스 신화에 미다스(Midas)왕과 갈대 이야기가 있다. 프리가 지방의 미다스왕은 아폴로 신과 마르 쉬아스(Marsyas)의 음악 경연에서 마스쉬아스가 이겼다고 판정했다. 아폴로(Apollo) 신은 화가 나서 네놈의 귀가 왜 그렇게 나쁘냐고 기다랗고 마구 움직이는 당나귀 귀로 변하게 했다.
그후 미다스 왕은 늘 머리에 천을 두르고 자기의 흉한 귀를 감추고 지났는데 이발사에게만은 속일수 가 없었다. 이 비밀을 누설하면 큰 벌을 주겠다고 해서 이발사는 참고 참았으나 결국 앓아 눕게 되자 어느 외딴 강가에 나가서 땅속에 구멍을 파고 그 구멍 속에 입을 대고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야, 털이 나고 막 움직인다"고 마음껏 소리치고 나서 흙으로 구멍을 메우고 속이 후련해서 집으로 집에 돌아 왔다. 그런데 지난해 죽은 갈대 뿌리가 한줄기 그 구멍의 흙 속에 묻혀 있었다. 철이 바뀌고 갈대는 자라 바람에 날리면서 이발사의 말을 그대로 흉내내게 되었다. 미다스 왕은 펄쩍 뛰며 노발대발했으나 끝 내 범인은 찾아 내지 못하고 말았다.
나일강 갈대 숲에서 모세를 건져내어 400년 노예 살이 유대민족을 자유와 해방의 인간회복을 이루었 던 성서 속의 이야기는 갈대 숲을 좀더 자세히 보라는 무언의 가을 권면같기도 하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고 예수는 오늘도 묻고 있다. 진 실의 실체를 보라는 말이다. 우리 모두는 흔들리는 갈대, 연약한 갈대 같을지라도 생각할 줄 아는 갈대라고 다짐하는 가을이면 좋겠다. 바람에 흔들리며 속삭이는 갈대 숲의 진실한 참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