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얼굴은 안보이고 마음이 보일 뿐이다."
인간은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존재이며, 이러한 방황은 정신병의 근본 원인이다. 희랍어의 네 가지 사랑(에로스, 필레오, 시돌케, 아가페)은 서로 다른 형태의 사랑을 나타내며, 인간의 세 가지 사랑이 신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아가페' 사랑 안에서 완성될 때 비로소 고귀한 사랑이 이루어진다.
광란하던 여름 먹구름 광풍도 말끔히 사라지고, 맑고 푸른 하늘 구만리 가을의 문턱이다. 잔인하고 사나운 여름이었다. KAL기 추락의 악몽이 그대로 있고 앗아간 생명들의 그 슬픔의 눈물이 아직 마르지 않고 있다. 년초부터 터진 모국의 대형 사건들, 한보비리, 전직 두 대통령 수감, 현철비리, 황장엽 망명, 대선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혼란을 보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물어 볼 수밖에 없는 여름방학 숙제다.
혼돈과 반복성 악의 순환적 현상은 인간 역사가 생긴 이래 끝없는 인간의 방황이었다. 우리는 이미 인간 안에서 인간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엇이 빠져 있거나 비어있는 빈 구멍이 있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어떤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일까?
로마신화에 나오는 프시케 여신의 이야기가 있다. 아름다운 여신 프시케는 미의 여신 비너스의 질투를 받는다. 비너스는 그의 아들 큐피드에게 명령해 세상에서 가장 추한 남자와 프시케가 결혼하도록 하게 했다. 그러나 큐피드 자신이 프시케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큐피드는 어머니 신의 명령도 있어, 몰래 밤에만 프시케를 찾아가 사랑을 나누었다. 큐피드는 프시케와 약속을 했다. 절대로 큐피드의 얼굴을 보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프시케는 큐피드를 너무도 보고 싶어 어느 날 밤 촛불을 켜고 큐피드의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그 날밤 이후 약속을 파기한 죄로 큐피드는 다시는 나타나지 안했다. 프시케는 밤만 되면 찾아오지 않는 큐피드를 찾아 밤길을 나섰다. 찾고 또 찾아 헤매고 방황하 기 시작했다.
프시케는 희랍어로는 혼 또는 정신, 마음의 의미를 가지는 말이다. 프시케Psyche(P-S-Y-C-H-E)라는 단어에서 정신병이라는 말이 나왔다. 정신병-Psych-osis(사이코 오시스)-라는 단어는 두단어의 합성어다. 프시케Psyche+오시스Osis다. 오시스Osis는 경과되었다. 오래되었다. 습관화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인간 혼이 사랑을 찾아 만나기 위해 어두운 밤을 방황하고 돌아다닌 지가 오래되었다는 말이 된다. 정신병은 사랑 병이다. 우리말에도 상사병이라는 말이 있다. 지상의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사랑 병을 가지고 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정신병적 초기증세를 가지고들 산다. 심리학을 연구 한다. 상담을 한다. 심리학(Psychology)이란 사실은 사랑 잃고 방황하는 인간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이어야 하는 것이다.
희랍어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네 가지로 구분되어 쓰여지고 있다. 1) 본능적 성적인 남녀사랑, 또는 학문과 예술에의 사랑인 '에로스'사랑이 있다. 인간의 의욕적인 삶을 위해 의욕과 욕망을 불러 일으켜준다.
2) 친구간의 우정사랑 '필레오' 사랑이 있다. 필라델피아는 '형제사랑'의 동네라는 말이다. 이 사랑이 있어 인생은 온정을 가지고 서로 돕는다. 그러나 지극히 균형을 서로가 유지해야 지속이 된다.
3)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사랑 '시돌케'사랑이 있다. 자녀에게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이다. 대가성 없는 초월적 사랑이다. 신의 자비와 사랑에 가장 가까운 사랑이다. 그러나 자기 자녀 밖을 넘어가지 못하는 울타리 안에 있다.
4) 네 번째 사랑, '아가페' 사랑이 있다. 희랍인과 히브리인들은 '아가페'사랑은 인간에게는 없는 신으로부터 받아야하는 사랑으로 사용된다. 조건 없이 무한히 품어 주고 변치 않는 약속의 사랑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사랑, '에로스', '필레오', '시돌케'의 사랑은 이 '아가페'의 근원적 사랑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에로스'는 에로스 답께 되고, '필레오'는 필레오'답께 되고, '시돌케'는 시돌케 답께 된다. 인간의 세가지 사랑이 아가페 사랑 안에서 사랑질서를 찾는다.
인간이 무엇인가? 그냥 "던져진 존재"의 운명의 장난인 것일까?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절제된 이성으로 '고귀한 사랑'을 나누며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고귀한 사랑의 완성'은 인간 안에 맴도는 사랑만 가지고는 '방황' 그 자체일 뿐일지 모른다.
끝없는 목마름 같은 그리움만 남는 것, 그 목마름, 그리움의 형태는 달라도 잃어버린 사랑의 실체를 찾는 인간의 방황일 뿐이다. 인간은 모두 외롭다. 인간은 모두 고독하다. 모두가 그 무엇엔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사병' 같은 정신병적 증상이 있다. 이것을 채워보려고 욕망과 욕구를 휘두른다. 그러나 다함없는 '그 고귀한 사랑의 실체'를 인격으로 만날 때까지 다함없는 갈증만이 더할 것이다.
해 넘어가는 석양, 허물어진 담장에 기대어 줄 끊어진 기타를 메고 G선의 엘레지를 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물리학의 천재, 파스칼이 그의 유명한 팡세에서, 이 사랑을 찾은 후에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만이 채울 수 있는 공백(마음의 빈자리)이 있다." 고 고백했다.
사랑의 신 큐피드의 '얼굴을 보지 말라는 약속의 사랑'이 주는 신화의 교훈은 무엇일까? 나의 스승이 내게 해준 말이 생각난다.
"사랑이란, 살다 보면 얼굴은 안보이고 마음이 보일 뿐이다."
귀뜨라미 울고 메밀 꽃이 하얗게 핀 달밤에 서로 나누고 싶은 말이다. 높아지고 푸르러 진 가을 하늘에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의 내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