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stacles are those frightful things you see when you take your eyes off your goals."

RIIM

"얼마나 뜨거웠을까?!"

강용원 간사 1998-01-15 조회 1129

1997년 괌의 KAL 801호 비행기 추락 사건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죽음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가족과 인류 간의 끈끈한 관계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글쓴이는 현재를 마지막 날처럼 성실하게 살아가고, 살아있을 때 가족애와 인류애를 아낌없이 나누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 사람과 사람 사이, 아름다운 관계속의 아름다운 인생 가꾸기 ( 2 ) -

< KAL기 참사 급보를 접하고>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 사슴의 무리도 슬피운다. / 떨어져 나간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75년전 소월이 부르다가 죽은 한편의 시, '초혼'이다.

1997년 8월 6일 새벽 1시, 괌의 니가야 공항 착륙 1분전, 활주로 1마일을 앞에 놓고 KAL 801호기는 니미츠힐 산 중턱에 풍지 박산이 되는 비극을 가져 왔다. 254명중 27명이 기적 같이 살아 남았다. 청천에 날벼락이라 더니 가족이 오랜만에 벼르고 벼르던 휴가, 또는 신혼의 새 출발을 위한 축제의 여행길에 통곡의 울음만이 메아리쳐 돌아오고 있다.

한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다시 한번 본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현지로 날아가 그 현장을 목격하고, 아직도 식지 않는 동체의 열기를 느끼면서 "얼마나 뜨거웠을까 !?"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 이름을 부르며, 발을 동동거리며 몸부림치는 통곡의 외침이었다. 가족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고, 그들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었다. 생명관계, 한 핏줄로 엮어진 가족이라는 인연이 얼마나 짙은 색깔이고 얼마나 강한 연대적 밧줄인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이제, 지상에서는 영원히 어쩔 수 없이 끊어져 버린 관계다. 갖가지 후회와 회한이 더욱더 아픔을 도려내고 있을 것이다.

재미교포 박미나씨의 악연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83년 소련의 KAL기 격추로 남편을 잃고, 언니와 함께 LA에서 살다가 8살난 조카딸과 한국을 방문하고, 이들 자매의 막내여동생 미진씨 일가족, 미진씨 시부모 및 시누이 일가족등 모두 11명이 몰사하는 참극을 당했다. "설마 내 딸이, 내동생이..."이번만은 제발 아니기를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끝내 생존자 명단에는 그 누구도 끼어 있지 않았다.

어떤 말로 이들을 위로할 수가 있을 것인가. 할말이 없다. 같이 슬퍼 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한계다.

우리는 날마다 비행기 사고보다 더 엄청난 죽음들을 만나고 있다. 전세계의 자동차 사고, 지진, 수해, 해상사고등에 비하면 비행기는 가장 안전한 첨단안전 장비다. 테러살인, 기아사, 전쟁떼 죽음에 비하면 너무 순식간에 예칙없이 당한 것 외에는 다른 죽음들과 다를 것이 없다.

살아 있다는 우리도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당하게 될는지 알고 사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는 것이다.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뿐일는지 모른다.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처럼 정리된 인생준비가 있어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 불의의 사고가 특정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에는 특권층이 없다. 그 기회도 그 우연도 보편적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하더라도, 인생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살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오늘을 참으로 성실하게 살고 싶으면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 처럼, 성실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겠다는 각성이 새로울 뿐이다. 유족들의 오열 속에 통곡의 슬프고도 쓰라린 아픔절규속에 우리 모두의 숙제가 있다. " 얼마나 뜨거웠을까!?" 우리가 서로 살아 있는 관계에 있는 오늘 이 시간에 가깝게는 가족의 아픔을 넓게는 인류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핏줄의식이 살아있으면 좋겠다. 살아 있을 때의 관계 속에 우리 서로가 "얼마나 뜨거울까"를 나눌 수 있는 부부애, 자녀애, 민족애, 인류애를 아낌없이 나눌 수 있다면 죽음의 슬픔도 피해 갈 것 같다.

어찌하여 이런 비극을 당해야 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우리 모두에게도 언제나 열려 있는 우연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 자리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참사에 살아 남은 어느 승무원의 병상에서의 인터뷰에서 그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 몫까지 살아 내라고 그들을 대표해서 저를 살려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은 삶은 나의 것이 아니므로,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돌아가신 그 분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앞에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그 슬픔을 함께 슬퍼하며 위로 드리고 싶다.

이 시간도 북적이는 공항대합실, 이 밤에도 별처럼 날아가는 밤 하늘 비행기를 보면서, 우리 모두의 함께 나누어야 하는 슬픔으로 공동체속의 연대적 관계를 확인해 보는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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