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행복을 찾으면, 큰 행운을 얻는다.
미국에서 27년간 살아온 저자가 930라디오의 한국 방송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이를 통해 그리워하던 고국의 소식을 생생하게 접하게 된다. 방송 중 "행복 만들기"라는 프로그램 제목을 접한 저자는 작은 행복을 찾고 만드는 자세로 하루를 시작할 때 큰 행운을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변덕도 많은 봄 바람따라 날마다 가슴 설래듯 무엇인가를 기다리다가 간 지난 봄이었다.
지난 3개월, 봄을 기다리면서 생명과 자연, 그리고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식의 흐름을 함께 나누고 싶 은 글을 썼다. 그것이 930라디오를 통해 나간 첫날 출근길 트래픽에 걸린 어느 친구로부터 카폰으로 격려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930라디오 <전영실의 행복만들기>에서 <강용원 엣세이>가 나오고 있 다" 첫날 몇사람의 전화를 더 받고 나는 약간 혼동된 기쁨과 책임감이 엇갈렸다. 내가 아마 다른 사람보 다 아는 사람이 많아서 일까. 아니면 방송된 <엣세이>가 좋아서일까. 아니면 방송 진행자의 맑고 밝 은 세련된 낭송 때문일까. 열린 하늘을 더 유심히 보며 날리고 있는 전파라도 보는 것 같은 착각으 로 보이지 않는 공기의 빈터 같았던 뉴욕의 공간이 한동네같은 마음을 가지게 해주었다. 서로의 피 가 돌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향수 같은 고국에서의 라디오 음성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것이다.
미국에서 산 연륜에 따라 우리말 방송에 대한 느낌이 다를 것이다. 70년대 미국에 떨어진 나에게는 무엇보다 고국의 소식이 아쉬었다. 그래서 정보원들이나 쓰는 초단파 라디오를 사서 아무리 주파수 를 맟추어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에 두 번째, 이번이 새번째 월드밴드 라디오다.
그후 간간이 몇군대 1시간짜리 한국 방송을 듣기도 했고, 유선방송기를 사다가 한국방송을 듣기도 했으나 마음에 아쉬움만 쌓였다. 한 시간 짜리 텔러비젼 한국시간만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시청도 해 보았다. 좀더 확 뚤린 24시간 그리고 어디서나 들을수 있는 880 CBS NEWS 라디오 같은, 한국 방송이 그리웠다. 한국의 엄청난 사건이나 정치적 중대한 이슈가 미국신문이나 방송에 나오지만 고 국의 소식을 좀더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목축임에 불과했다. 요지음 같은 초읽기에 들어간 한국사정 은 같은날 활자로 찍혀 나온 한국신문 만으로도 초조한 심정이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한국의 방송 과 신문은 세계적이다. 특히 한국의 정서속에 자란 우리에게는 아무리 뉴욕타임스를, 타임지를 월스 트릿 저널을 들춰봐도 한국 신문과 방송에서 얻는 친밀감과 같은 정서분위기가 공유되지 않는다. 27 년이나 살아도 아직도 미국화가 되지 못한 나혼자만의 성격탓인지도 모를일이다.
원래 정보통신분야를 전공하고 싶었던 나였지만 뜻대로만은 되지 않았다. 당시 월터 크롱카이트가 앵커로 세계를 휘어 잡고 있을 때 CBS NEWS 는 닐슨레잇의 20년 이상 1위였다. 나는 10년 동안 CBS NEWS의 뒷전에서 일을 도운 경험이 있다. 방송매체의 영향력과 그 특이한 분위기는 활자 신 문 잡지와는 또 다른 특성이 있다. 시간의 일치성과 그날의 일기와 계절의 환경이 함께 동시성 분위 기를 만든다. 거기에 진행자의 표정의 명암과 목소리의 밝음과 명랑성과 색갈, 높고 낮음과 부드러움 과 거셈과 경쾌성과 지진성에 그 프로그람의 내용이 생명인격 처럼 만나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말 급박한 한국사정이 궁금해 라디오를 돌리다가 930라디오의 깨끗한 한국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믿기어지지 않았다. 내가 거주한 지역은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지형상 전파난청지역에 속 한다. 24시간 한국어 방송을 깨끗한 음질로 듣게 되었다. 진행자마다 아마 한국에서 전문 방송인으로 활략했을 프로급들이었다. 궁금한 고국의 숨가뿐 위기의 소식들이 자세하게 전해 지고 있었다. 이민 사회 동포들의 궁금한 사연들이 전문가들과의 대담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뉴스가 끝나고 라디오 를 끌려고 하는데 아침 산책길 자깅할 때 기분 좋으면 돌을 차듯 경쾌한 시그날뮤직과 함께<행복만 들기> <행복만들기>듀엣이라도 하듯 반복되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뭐라고, 행복을 만들어?" 그냥 그렇고 그런 것이겠지 하고 흘려 넘겼다. 그러나 그 "행복 만들기"라는 말이 그날 내내 머리속에 맴돌고 있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오늘 하루가 행복한 날이되도록 행복을 만드는 자세로 임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고쳐 먹기 시작했다. 행복은 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만질수도 들을수도 먹을수도 냄새를 맡을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대도 행복이라는 것은 엄연히 지금 나와 함께 옆자리에서 서로 무엇인가 주고 받는 대화를 하고 있는 인 격과 같이 실재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은 행운과도 다른 말이다. 행복은 불행의 반대말도 아니다. 행복은 성취나 성공, 부귀나 명예와 도 같은 것이 아니다. 아무리 성취욕을 만족시켰다 해도 행복은 저 만치 홀로 울고 있을수 있다. 아 무리 세계 정상의 인기를 한몸에 모으고 있어도 행복은 저만치 홀로 외로운 고독을 달래고 있을수 있다. 행복은 무엇인가를 종합하고 복합된 인생살이를 정리해야하는 과제를 숙제로 우리에게 던져 놓고 기다리고 있는것 같다. 행복은 스쳐가는 기쁨같기도 하고, 확 터진 자유 같기도 하고, 먹고 싶 은 음식을 먹을 때 혀 끝에서 느껴오는 감촉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붙잡아 놓을수 없다. 음악 은 보이지 않지만 들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은 사랑할 때 폐속에 피가 그들먹하게 고이는 것 같은 오감, 육감이 시간과 날씨와 환경 기분에 서 오는 종합예술이다.
행복은 애써 찾을려고 하고 만들려고 하고 느끼려고 하는데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것이다. 느끼는 순 간이 행복이다. 찾는 순간이 행복이다. 만드는 순간이 행복이다.
신체장애인들에게 미안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인 행복의 조건들을 너무도 외면해 버리고 엉뚱한 허상 의 행복추구에서 정작 행복을 잃어가고 있다. 정상적인 건강, 눈으로 볼수 있는 행복, 입으로 말할수 있는 행복, 귀로 들을수 있는 행복, 피부로 촉감할수 있는 감각의 행복은 최대의 행복의 조건이다. 작은 행복이 큰 행복으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마실수 있는 물, 쉼 쉴수 있는 공기, 질병으로부터, 억 압으로부터, 무지로부터, 빈곤과 굼주림으로부터 오고 있는 날마다 걷고 있는 길위에 있다.
행복을 찾을줄 아는 사람속에 찾아오는 사람에게, 행복을 만들려고 고쳐 먹는 마음의 샘속에 평안이 있다. 기쁨이 있다. 그리고 자유가 있다. 행복은 외로움과 고난, 불행속에 오히려 풍성해 지는 비밀이 있다. 행복은 오래 쌓여진 의미와 보람속에 숨어 있다.
오랜만에 고국에서 듣던 프로 방송인들의 세련된 진행과 잘 짜여진 방송을 들으면서 멀어진 곡국이 한발 가깝게도 느껴오고, 어디에 묻혀 살고 있는지도 모른 우리 동포들의 가까운 숨결을 느끼면서 행복해 진다. 오늘도 <행복 만들기>를 들으면서, 나의 기분도 나의 환경도 지금 산적한 문제들을 헤치고 행복의 조건을 정리해서 <행복작품>으로 오늘 하루를 만들기 위해 마음의 방향을 바로 잡고 싶다. 메모리얼데이를 지났다. 이제 본격적 미국의 휴가철이 시작되었고, 미국의 국립공원이 문을 열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의 환경은 그냥 얻어진 공짜가 아니다. 지난 한국전 참전기념공원 개막식에 워싱톤을 방문하고 한국으로 기사를 썼다. 백악관 앞, 링컨 기념관과 워싱톤 모뉴먼트 사이 미국을 상징하는 공원 한가운데 6.25 참전 기념공원을 세웠다. 그 앞에 새겨진 표어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값을 치루지 않는 자유는 없다.)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의 행복은 대가 없이 그냥 굴 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대가를 치룬 행복이 참다운 행복이라고 <행복의 대가>를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우리 동포들 삶속에 남모르는 외로움과 고독속에 편지 한편이라도 서로 나누어 가며 밝은 행 복의 미래를 가꿔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참다운 행복은 얽혀 사는 인간 관계속에서 함께 서로의 관심과 격려가, 공원에서 맞나 주고 받는 대 화 처럼 익어가는곳에서 더욱 아름답게 닥아 올것이기 때문이다.
여름으로 들어가는 만발한 자연의 숲속에서 행복과 자유가 더욱 무성한 여름 숲을 이루기를 바란다. 노부모와 함께 등산 산책길에 150년 넘은 산삼을 캔 행훈을 얻은 고국의 어느 효자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