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with "causes" not "symptoms" in solving problems."

RIIM

오늘도 나는 행복의 다리를 건너간다.

강용원 간사 1998-01-15 조회 1217

뉴욕의 다리들을 건너며 27년을 살아온 저자는 다리를 베틀에 비유하여, 그 아래 흐르는 허드슨 강을 계절마다 짜여지는 옷감으로 표현하며 인생을 짜는 과정으로 본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짜고 있는 인생의 과정 속에서 의미와 보람으로 얻어지는 것이며, 고난을 통과한 후에 생명이 부활하듯 우리의 행복도 고난 속에서 영글어진다고 말한

뉴욕에는 다리가 여러개 있다.
밤에 보면 더 아름다운 다리들이다.
스테이튼 아일런드를 잇는 베르자노 브릿지는 우아한 자태의 여성 상이고 뉴져지를 잇는 조지워싱톤 브릿지는 기상이 넘치는 남성 상이다. 다리 건축사에 명물로 100년이 넘은 브르크린 브릿지는 고운 레이스를 걸친 신부의 가려진 얼굴 모습이다. 롱아일런드를 있는 드록넥브릿지를 안개낄 때 건너가 면 어느 천상의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들 이 다리들을 건너가고 건너오고 있다. 쓸때없는 일로 다리를 건 너가고 건너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뉴욕 같이 비싼 브릿지 톨을 내면서는 더욱 그렇다. 다리 를 생각하면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로 본 <콰이강의 다리>가 생각난다. 그 주제음악도 좋아하지만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내 기억 속에 35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2차 대전중 일본군의 보급 로를 차단하기 위한 연합군의 다리 파괴 작전이다. 마지막 그 다리가 폭파되면서 그 다리를 통과 중 인 일본 기차가 산산조각이 되어 공중에 나뭇잎 날리듯 산화되는 장면을 보고 영국군 장교가 외쳤던 말이었다. <미쳤다. 미쳤다. 우리 모두는 미쳤다.> 같은 인간들끼리 목숨을 걸고 만든 다리에 목숨 을 걸고 다이나마이트를 장착해서 그 다리를 지난 사람이나 그 다리를 파괴한 사람이 거의 모두 함 께 죽어 없어지는 라스트 씬이었다.

다리를 건 낸다는 말은 운명적인 결단의 동의어로도 쓰인다. <돌아 갈 수 없는 다리>-No Return Bridge-가 판문점에 52년간 남과 북을 갈라놓고 있다. 다리는 건낼수 없는 곳을 이어 주고, 끊기어진 절망을 잇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나는 뉴욕에서 27년째 살면서, 13년은 뉴욕에서 밖으로 나가면서 다리를 건 냈고 14년은 뉴욕을 들 어가면서 이 다리들을 건너가고 있다. 뉴욕의 다리들 중 나는 특히 조지워싱톤 브릿지를 가장 좋아 한다. 특히 허드슨을 가로질러 세계의 중심 만핫탄이라는 바위섬과 미국의 대륙을 잇고 있는 이 다 리는 그 이름부터가 상징적 미국의 미래를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드슨 강변은 초봄 봄기운에 가장 예민하다. 웨스트사이드하이웨이 강변도로는 워싱톤의 벚꽃을 가 장 먼저 받아 피게 하고, 강변에 개나리는 이백리길 웨스트포인트까지 끝없는 찬란한 봄축제의 꽃길 을 강변으로 치장을 하기 때문이다. 허드슨 강을 따라 베어 마운틴을 중심으로 미국 현대 문학의 산 실로, 워싱톤 어빙의 <립반윙클> 같은 20년 세월이 술한잔 속에 흘러 버린 신비로운 꿈의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다.

이 조지워싱톤 다리를 건너가고 건너 올 때마다 나는 어떤 행복감에 젖게 된다.
지금 까지 이 다리를 몇 번이나 무엇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건 냈던 것일까?!
다리를 가만히 보면 옛날 우리 어머니가 베틀에 앉아 한올 두올 북채를 왼쪽 오른쪽으로 왕복시키면 서 발로 그것을 다져 가면서 베를 짜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머니는 명주실로 비단도 짜시고, 삼베도 짜셨다.
다리 위를 왕래하는 수많은 자동차들은 마치도 저마다 실 꼬리를 물고 왼쪽 오른쪽으로 왕래하는 실 북처럼 보인다
조지워싱톤 브릿지는 베틀이고, 그 밑에 도도하게 흐르는 허드슨 강은 계절 따라 짜여지고 있는 옷 감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저마다 자기 인생의 베틀에 앉아 저 나름대로의 옷감을 짜다 간다. 다리 를 건너면서 나는 오늘도 밑에 흐르는 허드슨 강물을 보면서 베 옷감으로 짜여지고 있는 내 인생을 본다.

비록 그것이 무명베라도 내가 짠것이기에 더욱 귀하게 보인다. 오늘도 다리를 건너면서 나의 꿈을 짠다. 그리고 다시 희망의 미래를 비단 옷감으로 짜고 싶은 것이다. 행복의 옷감을 짜고 싶은 것이 다. 행복은 자신이 짜고 있는 인생 속에 결과로 의미와 보람으로 안겨지는 것이지, 행복을 목적 자체 로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춘분도 지나고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 주간은 부활절을 앞둔 고난 주간이다. 생명의 부활은 고난을 통과해서 왔다. 우리의 행복 생명은 고난 속에서 영글어 진다. 잔인한 겨울을 지나고 봄생명으로 피 어날 우리의 행복의 라이락꽃을 함께 피워 가는, 함께 나누는 고난과 부활의 절기가 되기를 바라고 싶다.

그래서 나는 끊어질지도 모르는 조바심을 안고라도, 행복을 짜 내려가는 강물을 보며 오늘도 이 다 리를 건너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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