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과 허무사이
글은 시대적 분위기가 공기처럼 인간의식을 지배하며, 종교도 권력이나 상업화 같은 시대 분위기에 쉽게 영향받는다는 점을 비판합니다. 저자는 현재의 암시적 최면 분위기에서 벗어나 예수의 향기로 새로운 분위기를 창조하고, 인터넷 시대 속에서도 예수의 정신을 되찾아 제정신으로 살아갈 것을 주장합니다.
분위기는 공기와 같다. 분위기는 바람과 같다. 분위기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옷과 같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고 그것을 숨쉬고 있다. 새가 공기 속을 날 듯이 물고기가 물 속에서 헤엄치듯이 인간의식은 분위기 속에 젖어 살게되어 있다.
그것은 때로는 먼지처럼 날다가 때로는 폭풍으로 몰아치는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 때로는 안개처럼 깔리기도 하다가 홍수가 되어 휩쓸어 가기도 한다. 그것은 기류로 흘러 제트스트림을 이루기도한다. 그것은 기압과도 같다. 그것은 때로는 저기압을 형성해서 지구의 모든 구름을 몰아 오기도하고, 때로 는 고기압이 되어 구름을 내어쫓기도 한다. 그것은 때로는 해류가 되어 바다 속으로 흐르기도 하다가 때로는 거센 파도가 되어 떠있는 배들을 삼켜버리기도 한다.
계절은 계절대로 분위기가 있고, 역사와 시대도 그때 그때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대학캠퍼스에 따 라 분위기가 다르고 사람마다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다르다. 군벌전국시대의 분위기가 있었고 문민정부 때 분위기가 있다. 기업재벌춘추시대가 휩쓰는 분위기도 있다. "모래시계", "태백산맥", "서편제"가 휩쓰는 문화정서 분위기도 있다.
이상한 것은 그분위기에 묻혀 있으면 그분위기를 잡고 있는 것들이 지상의 가치로 여겨진다는 것이 다. 그래서 헤어지지 않는 옷을 날마다 만들어내도 유행성 분위기가 그것을 날개도치듯 팔리게 한다.
무서운 것은 흥행성 유행 분위기이다.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일부분이고 환경을 구성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 유행성 분위기와 떠나 살수 없을 것이다. 불교 분위기에 휩싸인 신라시대에는 권력과 결탁한 승려가 국사가 되고 땅 좋은 곳만 골라 절간을 지었다. 그것들이 우리 문화의 유산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 교회부흥시대는 어떤 가. 기업을 등에 업고 생명보험회사 앞잡이 노릇을 하는 "빛과 소금, 그리고 향기"는 없는 것인가?
-기독교가 로마에 결탁하면 제도적 수도원이 되고, 헬라와 붙으면 철학화되고, 영국과 붙으면 권력화 되고 미국과 붙으면 상업화 돈벌이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Richard Halverson)
통계숫자로만 인간성을 진단하는 정신병의사는 위험한 생명작란을 저지르게 된다. 우리는 지금 무서 운 통계 암시적 최면에도 걸려 있다. 암시성최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헤집고 나와야만 산다.
우주가 혼돈과 흑암속에 묻혀 있을 때 하나님의 창조가 이루어졌다. 성령은 알을 품은 어미 닭처럼 혼돈과 무질서의 흑암을 품고 새롭게 하시고 질서를 이루시는 새 창조를 이룩하였다. 성령은 새롭게 하시는 분위기의 영이기도 하다. 우리인격이 그의 인격과 만날 때 새롭게 하는 분위기를 이루워 준 다. 지금의 분위기는 어떤 것일까. 분위기 속에 묻히지 말고 분위기를 새롭게 하고, 분위기 속에 노예 가 되지 말고 분위기를 풀어 가는 빛으로 소금으로 향기로 사는 내가 되어야만 하겠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 싱그러운 새순과 꽃들로 생명축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분위기는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밀어붙이고,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은 피해간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이 분위기의 속성이다. 우리는 예수향기로, 예수생명으로 거슬러 질서와 자유의 분위기를 이루어 나가는 분위기 창조를 서둘러야만 한다. 한 인간에게 자유로움은 지금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 분위기 위에 떠 있을 때, 그리고 그 분위기를 거슬러 올라 설 때, 구름 위의 태양처럼 자유로워진다. 오리지날 예수분위기를 되찾아 제정신으로 돌 아 와 살자. 들뜨지도 설치지지도 말고 제 분수의 제 분위기를 잡자.
지금 내가 서있는 세상분위기는 어떤 분위기일까?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예수분위기는 어떤 것일까? 나는 지금 어떤 암시성 최면분위기속에 넋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것인가? 세상이 온통 인터넷 분위기다. 인터넷 위에 떠 있는 예수분위기를 만들어야만 하겠다. 이제 우리의 프론트라인은 허공 속의 공중권세잡이와 나란히 떠 있다. 제공권을 예수넷으로 잡아야만 하겠다.
글/ 순장 강 용원 (본회미주대표) 인터넷 속의 사랑과 생명의 샘터 KCCC인터넷 http://www.kccc.org
1.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으로 볼수 없는 것이 분위기다. 그러나 그 힘은 막강하다.
2. 눈을 들어 지구를 보라. No surprisr is real surprise. 세상 한 번 야단스럽게 변하고 있다.
3. 날마다, 시간마다 변하고 있다.
4. 무서운 암시에 걸려 있고, 반복된 최면에 걸려 있다.
5. 뇌성 마비현상, 치매층초기현상- 미쳐 있다. 미친 세상에 제정신으로 사는 것이 정말 미친 사람이 다.
6. 종교적암시, -그 반복성 주문성-아편화 / 인간 자율의식은 그리고 자유는 무엇인가. 종교의 의식의 노예들, - 11조 축복암시, 성수주일암시, 성직자억지카리스마암시, 새성전 건축헌금 축복암시, 감사헌금 축복 저주암시, 율버암시, 새벽제단 기도암시, 저주,지옥,천당암시, 사이비암시, 이단성암시, 정통암시.. 교리적 암시 사슬
7. 허무와 허망 사이- 허무는 극복했을지라도 허망함은 그대로 있다. 그러면 허무는 무엇이고 허망함 은 무엇일까.
8. 두가지 생명 개념- 영생 / 풍성한 삶 이원론의 문제
9. 종교는 그리고 기독교는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입은 자유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다.(그 무엇이 우리를 그 하나님이 주신 자유생명-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저주 의식으로부터 ......
10. 죽은시체 화장하기- 생명엔진-그것에 성령의 스파크가 일고 있어야한다.
11. 누구를 위해 교회 종은 울리고 있는가- 수용소군도, 아우스비치화- 시베리아유배 - 암병동 환자 들 약주고 얼리고 달래며 뜯어 먹고 사는 그대는 누군가.
12. 세계화의식은 자유시민의식부터 - 민중의식--누구를 위한 커뮤니티구조인가- 뉴욕의 쓰레기 치 는 사람, 우체국 직원-동네 이발사, 1미터 누예고후전 소방전 마다 꽂아논 빨간 막대기 -
13. 예수로 셰례를 받았으면 토탈예수의식으로 사는 것이 정상이다. --자나 깨나, 자든지 깨든지, 먹 든지 마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달려 가면서도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것도 유익이라.
14. 내인생이 최고야. / 나의 나됨도 변치 않고 나의 나됨도 바꾸기 싫어하는 유일하다.
15. '가장 많은 추억과 사랑과 기도속에..발을 땅에 딛지 않으면서도 너무나 잘 걸어가고 계시니까요.. -어느 누구이든 자신의 십자가는 힘에 겨웁다고 생각하는 법이다. 견딜만한 십자가를 지고 간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1964.6.
16.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면 자유에게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자유에서 자유를 얻는다. 그 자유는 자신을 찢어 십자가를 진 예수에게 있다.
17. 브링코, 무스탕 같은 새끼들 기들이기- 스페인 투우 (투우에 쓰는 소이름?) Bull
18. 민주화의식은 타운 의식으로부터 -
19. 세계관이 문제다- 어떤 세계관을 가지는가에 인생의 가치가 결정된다. 억압 받는 노예를 풀어 자 유와 질서의 우주관을 하나님을 중심으로 정립시킨 것이 구약 역사다. - 별을 관찰하던 우주를 바라 보던 동방의 학자들이 우주관을 예수비젼으로 보게 된것이다.
20. 말에는 무서운 자계성 암시적 최면성이 있다. 인간본능에 호소하는 본능적언어구사력 -
21. 나를 <나>되게 사랑하는 것이 일만악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해방이 있다. <나>를 사랑한다는것 의 정리- 자기 암시에서 벗어 나는길
22. 그래도 이놈의 세상이 미쳐터져 버리지 않는 것은 성령이 아직 분위기를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좇아 가지 말고, 분위기를 만들어 가자. 군중심리, 대중심리...유행성 체제
23. 인간이 동물보다 성실하고 정직한가 / 그본능적 사랑 / 로빈의 새집짓는 모습-알을품는 어미새- 다람쥐의 생존 본능
24. 미치고 들뜨고 달떠서 분위기에 휩쓸리며 살면 되는데 그렇지 못하니 허무하다. 허망하다.
25. 자아의식 - 인간의식의 예민성이 삶에 도움이 되는가 -통찰력이 도움이 되는가 -신경을 죽이는 약을 먹고 살아야 살수 있다.
26. 서편제가 울고 간 뒤 국악의해가 선포되고, 모래시계가 휩쓸고 간 뒤 전직 칼날 시퍼런 권자 두 대통령이 검사의 손에 감옥으로 갔다. 태백산맥이 가로지른 후에 반대급부로 신한국당이 승리를 거뒀 다. 김정일이 휴전선 침범
27. 뜰앞의 떡갈나무도 200-500년을 살고, 지는 풀도 시든 자레서 다시 돋아는데 인생느 70 80이이면 끝난다. 인간은 그자신의 허무와의 싸움이다. 자신의 허무극복과 무의미성과의 싸움이다. 작은 것이 걸리면 큰 것이 걸린다. 가장 작은 일 하나 소중하면 큰 일이 이뤄 진다. 작은 기쁨을 긁어 모으면 큰 기쁨이 된다. 순간의 기분을 전환하면 하루의 인생, 한주의 인생이 기뻐질수 있다. 인간 그것은 그 자신과의 전쟁이다.
작은 보람을 뫃아라. 조각난 기쁨들을 모아라. 잃어버린 감사를 찾아내라. 순간의 생각을 그것드속으 로 들어가라.
28. 눈을 다시 들어 지구를 보라. 하나님나라가 어디 있는가. 세계관 /인생관이 올바로 박힌 기독인이 절실하다. 너희는 먼저 그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강용원칼럼/ " 허망과 허무사이 "
- 허망과 허무사이 / 허공과 텅빈 마음사이- 헛수고/ 절망/ 후회/ 현상 /진상 /허상/ 虛 / 無/허욕/허영/허위/허탈/ 망각 /니 힐/ 비관/ 절망/죽음/ -의미 / 보람 / 의욕 / 용기 / 희망/ -보람과 허망사이 / 미분/ 적분/
1. 텅빈 충만 -견성-빈 마음 -텅빈 마음/ 마음이 허공 같을진저 우리가 진여에 도달하고 무위진인(본 래자리가 없는 것을 깨달은 사람)
2.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3. 허무속에 불타는 용기- 로망로랑 / 그것은 믿음
4. 솔로몬 지혜자의 각성- 허무성 / 반복성 / 새것이 없다. -괴테
5. 바람잡는것-모래성 모래바람 /
6. 참담하고 처참하고 처량한 어미새의 죽음 / 생명이 생명을 먹어치우는 비극 / 가꾸워온 사랑과 생 명을 송두리채 앗아버린 또 하나의 본능생명은 무엇인가. 5/17(금)/96 아침 -로빈가의 죽음
7. 아빠새가 먹이를 물고 와서 그 둥주리를 찾아 왔다. 없어져버린 둥우릴를 보고 한참이나 넋을 놓 고 앉아 있다가 멀리 날라가 버린다.
8. 미분, 적분 / 비트가 생명이다- 디지탈시대 /
글/ 강 용원 (KCCC 미주대표) 인터넷 속의 사랑과 생명의 샘터 KCCC인터넷 http://www.kccc.org
강용원 칼럼 " 허망과 허무사이 " -살아 보면 안다. 생명과 풍성한 삶의 차이를...- 해 넘어가는 노을진 석양에 무성한 초 여름숲을 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아쉬움이 한낮에 작열하던 식어지는 태양처럼 가슴 한구석을 스치고 지나간다. 허망하게 하루가 없어져 버린 것이 안타깝다.그 느낌이 점점 밀도의 강도를 높혀 가고 있는 것 같다. 한 번 살고 가는 인생이 허망해서 일까 허무해서 일까? 허무하다는 거창한 말은 철학자, 신학자들이 쓰는 말이고, 우리 같은 민초가 쓰는 말은 허망다는 표현이 더 친밀할 것 같다.
뜰앞의 참나무는 100년 200년을 살고도 버티고 있고 해마다 그 가지가 넓게 높게 싱싱하다. 죽은 줄 알았던 풀잎도 같은 풀이 해마다 반복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초로인생, 풀잎같다는 인생은 초 목 만도 못하다. 아침 이슬처럼, 안개 같은 인생의 한계를 자연 생명이 무성할수록 본능적 역 거부반 응이 일고 있다.
잘들 살아 보자고들 야단이고 법석이다. 보람과 의미를 자식에게라도 얻으려고 발버둥치는 노력들, 그러나 본능적 생명보존애착은 알을 품고 있는 새 만도 못할 수 있는 것이 인간들일지 모른다. '사람 이라 해서 짐승보다 나을것이 무엇이냐?'(잠 3:19표준새번역)
'온갖 노력과 성취는 바로 사람끼리 갖는 경쟁심에서 비롯되는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그러나 이 수고 도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것과 같다.'(잠 4.4 표준새번역) 인간무상, 인생허무를 깨닫는 것이 지혜의 첫걸음인데 늦게사 인생걸음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것인지 모르겠다. 지혜자의 말대로 새로운것은 없고 반복번복되고 지루한모방만 있는 것이 세상이다. 어제는 젊고 싱싱했는데 오늘은 늙어 축첮어 늘어져 있다. 성취욕에 모두들 도취되어 있을뿐 허무의 극점 죽음 앞에 섰을 때야 한 번 제정신으로 깨어날지 모를 인생도취가 욕망을 이끌고 미치고 있을 뿐이다.
허망함과 허무가 인생의 전부일까? 허무를 미분해보면 허망한 것들의 조각(bit)이다. 허무를 적분해 보면 허망함의 연속이고 반복이다. 이따금씩 찾아 오는 작은 낙심들, 사소한 좌절감들을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있다. 허망과 허무사이 허영이있다. 거짓이 있다. 허욕이 있다. 참실이 아닌 허실이 깔려 있 다. 디지탈 시대에 접어들었다. 비트(bit)가 생명이라고 한다. 20세기를 종결하는 종말적 싯점이다. 나 의 비트(beat), 생명의 고동소리는 참으로 정상인가. 예수생명 비트가 뛰고 있는가. 살아보면 안다. 옆집의 잔디는 항상 더 파랗게 보인다. 잔디를 파먹는 굼뱅이를 죽여야 그 굼뱅이를 먹을려고 땅굴을 파는 두더지를 없앨수 있다. 허망한 칙뿌리를 짖씹고 있는 하루가 아닌 예수를 살고 있는 하루가 아 니면 인생의 쓴 뿌리 죽음의 허무앞에 할말이 없을것이다.
박창서 박사의 30여년전을 돌이켜 써준 글을 읽고 감회와 회한이 엇갈리고 있다. 30여년전에 우리나 이 또래들은 일시에 마라톤으로 경주를 했다. 종점이 가까워 지고 있다. 이제 골라인이 눈앞에 보인 다. 각자의 제 나름대로의 성취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자아 도취욕성취가 아닌 주님의 눈으로, 겸손한 무릅으로, 가난한 빈 마음으로 각자의 인생을 정리해 볼 필요들이 있을 것 같다. 이제 보면 달밤에 어리는 허망한 '황성 옛터다. 추억만 감도는 덕수궁 돌담길이다. 황혼에 돌아 오는 황포 돗대다.' 나도 모르게 들어버린 도둑같은 세월이 억울하기만 하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허망일 수도 허무일 수도 없다. '인생은 허무가 아니다. 허무와 싸우는 생명이 다. 허무속에 불타는 불이다.'-로망로랑- 생명은 허무와 싸우는 영원한 전투다. 생명은 허무와 싸우는 용기다. 어떤 중은 '마음이 허공 같을 때 진여에 도달한다'했다. 맞는말 같지만 속이는 말이다. 절간에 피해 혼자 살면 몰라도 세상에서, 세상과 더불어 사는 우리들의 마음이 허공같을 수가 있을까!? 실컨 허욕 을 채우다가 허망한 세무십년, 화무십일홍을 빙자한 참회자의 도피 궤변을 대변하는 말 장난이다. 허망감은 허무의 극약이다.
날마다 허망과 싸우는 용기, 그것은 생명이 아니고는 얻을수 없는 힘이다. 나는 예수 때문에 허망도 허무도 극복했다. 허무의 피안까지도 넘어섰다. 그래서 나는 그 예수를 허무의 죽음을 걸고 전하고 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영원한 생명, 그것을 향한 우리의 하루의 투자, 투신만이 허무와 맞 설수 있는 보람이요 의미일 것이다. 그것만을 위해 빈손이 될 때까지 인생은 허무의 성을 쌓고 있을 것이다. 살아 보아야 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허망함과 허무사이를 오가며 그것들의 의미의 차이를 모른채 싸우고 있을뿐 이다. 허망과 허무 사이 예수 생명, 참이 있다. 예수 프론트라인은 허망과 허무사이에 있다. 그것은 날마다 대결하여 싸워야 하는 극열한 전투현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