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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6.25, 그 날을 잊을 수가 있을 것인가?

강용원 간사 1998-01-15 조회 1864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을 분단시킨 비극적 사건으로, 미국을 포함한 UN군의 막대한 희생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다. 1995년 워싱톤 DC에 건립된 6.25 참전기념공원에 모인 참전용사들의 상처와 헌신은 "자유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는 이들의 희생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로 47주년 6.25 사변 기념일을 맞는다. 기념일이라기 보다 "6.25 비극의 날"이라는 말로 바꾸어 민족을 분단시킨 피 맺힌 우리의 한을 숙연한 마음으로 되 새겨 보아야 할 날이다.

이 역사위에 일어난 사건 중에 이보다 쓰라린 민족상쟁의 참혹한 비극을 초래한 사건은 없다. 47년 전의 이 사건은 지금도 해결의 길을 찾지 못한채 아직도 언제 터질줄 모르는 더 무서운 폭팔물를 안 고 위기의 시간을 재고 있다. 신(神)이 역사를 주관한다면 이 엄청난 비극 속에 우리 민족이 풀어야 할 비밀이 있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민주우방의 엄청난 희생을 치룬 도움이 없었던들 오늘의 조국 대한민국은 영원히 지 상에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북쪽은 지금 이 시간에도 "불 바다"협박, "일전 불사"공갈로 남쪽을 위협하고 있다. 북쪽의 악의 구조를 냉정하게 볼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지금의 대한민국이 건재한 것은 우방 미국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이야 말로 그 래도 미국 같은 자유의 나라가 이 지구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축복된 일인가를 잊어서 는 안될 것 같다. 미국의 수도 워싱톤 DC에 지난 1995년 7월 27일에 건립한 "6.25 참전기념공원"에 한번쯤은 방문해 보는것도 우리의 현 위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다음 글은 6.25 참전기념 공원 준공식에 참가하여 한국으로 기사를 보낸 내용중 일부이다. --------------------------- - "Forgotten No More" (두번 다시 망각해서는 안될 날) : "Freedom Is Not Free" (댓가를 치루지 않는 자유는 없다) - 미국은 그 날을 오히려 잊지 않고 있다. 아니, 잊어 버려서는 안되는 날로 알고 있다. Forgotten No More 더 이상 잊혀진체 바로 지금도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로도 들린다.

그들이 지난날 자유를 위해 희생한 5만4천여명의 젊은 피와 UN군 42만여명의 피의 대가는 헛되지 않고 있다는것을 한국을 보고 다시 한번 자랑 스럽게 깨닫고 있다. Freedom Is Not Free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와 번영은 그냥 굴러 들어온 떡이 아니고 비싼 댓가를 치루었던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지난1995년 7월27일, 미국의 수도 워싱톤 광장- 죠지 워싱톤의 모뉴먼트와 링컨 메모리얼 사이 미 국의 상징적인 광장에 미국의 한국전 참전 기념 준공식을 미국을 방문중인 김영삼 대통령의 참관리 에 성대하게 거행 되었다. 섭씨 37.5도의 무더운 날씨에 미국을 비롯한 참전용사와 4만여 참전 관련자들이 모였다. 대 부분 70 을 넘은 할아버지 용사들이었다. 어떤이는 휠체워에 실린체, 어떤이는 한팔은 없는체, 어떤이는 다 리가 없어진채 목발로, 눈을 잃고 검은 안경을 쓰고 부인 할머니 손에 이끌리어,얼굴에도 상처의 흉 터, 몸속에 흉터, 그러나 그들은 가슴에 단 참전훈장 보다 그들의 상처를 더 자랑 스럽게 내 보였 다. 전쟁 포화속의 열기 못지 않는 이날의 작열한 날씨와 저들의 타오르는 눈동자들은 잊어서는 안될 감격의 날로 한층 더 높은 열기를 뿜고 있었다. - Freedom Is Not Free - 저들을 잊어서야 되는 한국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한국이 있 어서야 되겠는가? 속으로 젖어 오는 깊은 감회와 감격이 한동안 필자의 가슴속을 흐르는 땀과 함 께 눈시울을 적시며 흐르고 있었다. 이날 <한국 50년, 그때와 지금> 텐트속에 전시된 한국의 발전상 사진과 비데오를 보기 위해, 어느 텐트 보다 많은 인파가 몰려 들었다. <한국 50년, 그때와 지금> 텐트안에 마련된 한미우호협에서 특별기념호로 마련된 "PACIFIC BRIDGE" - 45 Years Ago... Korea: Then and Now - 협회지는 한편의 변치 않는 친구의 우정 어린 편지가 되었다. 그 편지를 전하는 사람이나 받아든 한 사람 한 사람 사이에 끈끈한 옛정으로 다시 접목되고 있었다. 1 of 2 (전체 ) 특히 이날 Pacific Bridge 전달을 위해 동원된 한국인 2세들, 70년대 출생한 그들은 만일 저들의 용 기와 희생이 없었던들 오늘의 우리가 있을수 있는가를 생각케 하는듯 잊혀 질뻔 한 미국의 참 우정 에 대한 새로운 우정을 배우고 있었다. 한.미 우호는 변치 않고 있고, 변해서는 안될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50년대 의 한국을 보았던 저 노병들이 아니, 우리가 피흘렸던 잿더미에 쌓였던 한국이 저렇게도 아름답게 변했느냐? 고, 한마디 씩 감격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이제 한국이 전쟁 원조국에서, 세계화를 향한 길에 미국과 어깨동무를 하고 동반자로서의 위상을 보여주고, 저들에게 그때의 자유를 위한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나에 높은 긍지를 그리고 한아 름 보람을 안겨 주는 시간이었다. 참으로 이번 기념공원에 새겨진 - Freedom Is Not Free-를 오 고 있는 세대를 향한 비젼 표어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해 본다.

지금 바로 한국의 시간이야 말로 6.25도발을 한시라도 잊고 방심해서는 안될 시기에 다시 직면해 있다. 그리고 피로 맺어진 한국과 미국의 우호의 정을 잊어서는 더욱 안될것이라고... - Forgotten No More, Please! - (1995년 7월 27일)-미 한국전 참전기념공원 준공식 날에 - 지금 북한은 95년을 기준으로 GNP는 239달러다. 인구 2천1백81만9천, 대외부채 76억5천만 달러를 지 고 있다. 세계 4번째 규모인 1백6만명의 정규군과 5백만명의 준(準)군사부대와 즉각적적인 국가동원 태세유지, 군량미,유류, 탄약등 수개월간의 전쟁 지속능력, 공군전방 배치, 스커드미사일 및 서울수도 권 일대에 사격이 가능한 노동1호미사일 전방배치, 대규모 화학탄 보유를 하고 있다. 모든 군사시설 은 지하에 있다. 체제위기가 가속화 될 경우 이판사판 남침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는 실정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값을 치룰 준비를 해야한다. 꿈속 의 환상적 남북통일의 노래만은 이미 아니다. 감싸안을 무조건적 희생의 사랑, 그리고 함께 잘사는 대가를 치룰 마음의 준비와 경제력이 있어야한다. 1만불의 GNP를 가지고 있는 남한이다.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쳐 값을 치룬 우방의 대가다. 민족의 대가를 함께 치룰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떤가? 이땅에 "6.25 비극의 날"이 다시 오지 않게 함께 물어 보아야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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