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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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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의 다섯 계단

    마태복음 4장 12~22절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갈릴리 해변가를 다니시다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부릅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때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 순교를 할 때까지 다섯 가지 신앙의 계단을 밟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 계단- 주님을 만남!

    처음에는 주님을 만난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무식한 30대의 어부였습니다. 성품은 굉장히 단순하고 직선적입니다. 논리가 잘 맞지 않고, 말을 잘 반복하고, 언제든지 앞장을 서고, 발언은 맨 먼저 합니다. 주저함이 없고, 사려가 깊지 않습니다. 외모도 거칠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솔직합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제자로 택하십니다. “나를 따르라”하니까 즉시 따랐습니다.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행동으로 따릅니다. 생명과 생사를 예수님과 같이합니다. 직업도 가족도 버렸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생사를 걸고, 운명을 걸고, 한 가지를 위해 삶을 걸었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날부터 크리스천에게는 모험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멀리 서서 관념적으로, 관조하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시를 쓰거나 예수님의 그림을 그리거나 찬송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순교를 하면서까지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렇게 따르는 베드로에게는 진실성과 성실성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계단- 신앙 고백!

    두 번째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세상에서 나를 누구라 하더냐”고 물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모든 기대와 모든 구원이 포함된 고백이었습니다. 전인류의 구속사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최초로 고백한 것은 베드로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것은 네가 안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알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를 나의 주로 고백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인간의 인식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인생의 자각 단계 가운데서 이 이상의 고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고백을 참으로 체험한 사람은 절대로 그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교육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라는 사실을 배우고, 알고 그것을 통해 생활하도록, 또 증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 교육의 궁극적 목표였습니다.

    세 번째 계단-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는 예수님의 부활 후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제자들은 아무런 변화도 없이 옛날의 생활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고기잡이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납니다. 생선과 떡을 준비해서 제자들을 대접합니다. 그러면서 베드로에게 질문하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Agape)하느냐?” 베드로는 전과 다르게 대답합니다. 굉장히 겸손합니다. 죽어도, 옥에 갇혀도 예수님을 따르겠노라고 그렇게 장담했던 사람이었는데 이때는 “내가 주님을 사랑(Philleo)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조금 사랑하는 것, 우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아십니다.”라고 답합니다. 베드로에게 다시 묻기를 “네가 나를 아가페 하느냐?” “필레오”합니다. “내 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질문의 정도를 낮추십니다. “그러면 네 말대로 나를 필레오하느냐?” “모든 것을 모르심이 없사오니 내가 필레오합니다. 내 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내 양을 치라고 부탁하십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소명을 받은 것이었고 베드로의 임직식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묻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가야바의 법정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저주하며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후 베드로는 평생토록 새벽닭이 울 때마다 통곡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맺혀 있는 배신의 상처를 예수님은 더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치유하신 것입니다.

    네 번째 계단- 증인의 삶!

    네 번째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사도로서 쓰임 받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베드로는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열흘 동안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는 베드로의 생애에 베드로가 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베드로를 끌고 다니며 살았습니다. 더 이상 옛날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죽음이든, 감옥이든 장애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네 터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베드로의 증언과 설교를 통해서 많은 성도들이 세움을 입고 교회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것처럼 베드로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사역을 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며 이리 가라 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 하면 저리 가고, 산헤드린에 잡혀갔을 때 죽을 줄 알면서도 주님을 증거하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성령에 이끌려 살았습니다. 신앙의 단계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성령입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개념적인 신앙고백으로 끝나고 맙니다. 성령이 힘이고 능력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사랑의 질도 달라지고 헌신의 질도 달라지게 됩니다.

    다섯째 계단- 순교!

    다섯째는 순교하는 단계입니다. 로마에서는 네로 황제의 박해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죽어갔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야음을 이용해 로마를 벗어나 도망을 가다가 마지막 언덕을 넘을 때 자기 옆을 지나가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틀림없이 주님인데 베드로에게 말 안하고 그냥 지나가니 예수님을 꽉 붙잡고 묻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내가 로마로 간다.” “왜 가십니까?” “네가 버리고 가는 양 떼를 위해 내가 또 십자가를 져야겠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내가 가야 합니다.” 베드로는 발걸음을 돌이켜 로마로 되돌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합니다. 전체를 주고, 전체를 박탈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베드로의 전체를 다 가져갔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을 들고 가는 것입니다. 마른 해골 떼와 같이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북한 땅에도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후 변했듯이 우리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변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한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신앙의 다섯 단계를 밟아 나가야겠습니다. 지금 당신은 신앙의 어느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까?

    - 김준곤 목사 (한국대학생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