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같은 사람인데 사람 맛이 나는 사람있는가 하면 화려한 학벌과 경력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껄껄하게 모래알 씹히는 사람맛이 메말라 빠진 인간도 있다.
만나면 정감이 흐르는 친밀감이 이는 사람이 있고 썰렁한 얼음판 같은 사람도 있다.
인간성이라는 어려운 정의를 내릴수는 없다. 인간성이 본래 악이냐 선이냐는 인류의 시작부터 논란이 된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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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단에 정식 데뷔 한 적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글을 써 온지 60여년이 되는것같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느끼고 배워가는 것이 많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인가도 새삼 깨닫는다.
어쩌다가 글을 쓰게 되었는지 어떨 때는 처량해진 자신을 한탄한 적도 있다. 한때는 여기저기 한 달에 6편의 새 글을 써서 8곳에서 활자로 찍혀 나온 적도 있었다. 국민학교 때부터 여름방학 숙제로 한 일 기 쓰기로 시작을 해, 중고때, 백일장에서 입상해 미제 파커만년필을 상으로 받은 경력밖에는 없는 처지다.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것임을 배운다.
나 자신을 쏙 빼고, 비판적인 글이나, 새로운 지식의 정보에 관련된 글,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해야된다는 글은 하루 내내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포함된 내 인격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옮겨 쓴다는 것은 내 자신을 발가 벗기지 않으면 써 질 수 없다.
특히 "방송에세이"를 쓰면서, <행복만들기>주제에 관련된 글을 쓰자니, 하루에 12번도 변덕을 부리고, 조그마한 일에도 신경이 걸리면, 화장실부터 가야하는 나의 체질에 한 주에 한번 쓰는 엣세이가 1년동안 나를 수련해준 훈련관이었다. 마감시간을 초를 재며 시험을 치르듯 자신을 다지는 시간들이었다. 다른 글과 함께 지난 한해 100여편의 에세이를 쓸수 있었던 것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은 다른 사 람에게 함께 나눌 수 있는 격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야 하기 때문에, 쓰기 전날부터 마음가짐, 감정관리를 잘하고 있어야만 글다운 글이 되는 것을 안다.
글을 쓰는 칼럼형태의 글도 그렇다. 그것도 쓰 고 싶을 때 쓰는 글이 아니라 고정된 마감시간을 앞에 놓고는 더욱 그렇다.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종 중에 하나가 신문기자, 그래서 기자생활을 한 사람의 평균 수명이 가장 짧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을 악(惡)이라고 한 순자의 이론도 있고, 인간의 본성이 선천적으로 선(善)하다는 맹자의 설도 있다. 기독교에는 원죄성이 있고 불가에는 불성이 있다고 한다. 나는 솔직히 어느 학설도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오래전 한국KBS의 좋아하는 인기프로그램 "열린 음악회"를 보았다. 사회정치 어디에나 문제의 현장에 가장 한가운데 앉아 있는 존경하는 김수환추기경이 음악회에 있었다. 음악회에 나온것만으로도 감동을 주었는데, 사회자의 요청으로 독창을 부탁했다.
김추기경은 서슴없이 마이크를 받아 들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애모'라는 유행가를 프로급에 가깝게 불러 주었다. 나는 눈물이 핑돌았다.
그 노래의 내용에 얽힌 사연도 슬펐지만, 나를 감동케 한 것은 김추기경의 사람같은 인간미의 모습이었다. 카토릭의 신부 그중에서도 로마교황청의 추기경 평민인 우리와 거리가 날수밖에 없는 추기경이다.
그런데 그날 김추기경은 그순간에 옆집 밭을 같이 가는 머슴아저씨같이 가까워짐을 느꼈다. 민생속에서 민생과 함께 애환을 노래 할 줄 아는 김추기경이 더 한층 존경 스러웠다. 강론이 날카로와 강남의 부유층 신자들을 향해 '금모으기운동'의 강론이 끝나자 마자 7백50명이 참여 51Kg 가량, 싯가 6억8천여만원이 일시에 모아졌다.
나 자신이 기독교에 입문한 동기는 교리가 아니었다. 한 목사의 따스한 인간미였다. 내 평생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김준곤목사님이 있다.
60년대 초 그때는 외국의 유명한 명작이라야 떳떳이 극장에라도 갈 수 있는 고상한 취미로서의 영화관람 그런 분위기의 상황이었다.
목사님은 나를 데리고, 허장강, 김승호, 김지미등이 주연으로 나온 한국영화를 함께 가서 보여주었다. 때때로 당시의 유일한 낭만의 주말여행은 교외선 기차를 타고 백제 송추를 한번 돌고 오는 것이었다.
교외선 아무데서나 내려 시골길 논두렁을 같이 걸으며, 아무 집이나 찾아가 '토종닭'을 한 마리 잡아 달라고 해서 농촌향수에 흠뻑 젖어 돌아오기도 했다.
미국에서 초청강사로 만나 호텔 방에서 당신이 즐겨쓰시던 당시에도 지금도 명품 고가인 은장 파카만년필을 손에 쥐어주시던 자상한 스승의 정이었다. 당시도, 지금도 수 십만의 대학생들의 황량한 가슴속에 칼날 같은 메시지를 퍼부어 대던 분이었다. 나는 모든 감화를 그분으로부터 받았지만,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과 내가 매력을 느낀 것은 그분의 사람일수 밖에 없는 사람의 정 인간미 (人間味)였다.
가신지 오래된 고인, 그분이 주셨던 편지들 한구절 한구절에 묻어나는 사람냄새를 다시 맡으며 사람이었기에 느꼈을 외로움과 배신과 세상의 부조리 구조에 함께 묻혀있기도 한다.
때때로 암울한 인간성을 만나고 당할 때마다 나는 나 자 신의 본래 모습으로 환원해 버리고 만 자신을 보면서도, 나의 스승, (그분에게도 결점은 있을지 모른다.) 이 보여준 인간미를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은 풀 수 없는 모순 속에 두 개의 자아, 선성과 악성이 싸우다가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피겨 올림픽을 본다. 가장 잘 미끄러지는 눈과 빙판 위에서, 가장 잘 미끄러지는 신발을 신고, 인간의 총체묘기를 연출해 보이고 있다. 미끄러지기 쉬운 세상 속에 서도 인간성을 다듬은 인간미가 오늘도 내게서 올림픽의 인간발휘처럼, 아름다운 인간미로 피어 나면 좋겠다.
험한 세상 살고, 살벌하기만 인간들의 관계 속에 '사이먼과 가핑걸'의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 어...>의 노래가 읇조려지는 시간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인간미가 다리가 되는 세상을 기다려 본다. 그래서, 늑대 이리떼 같은 인간성에게 할퀸 상처도 고운 인간미로 아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