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가을 세상과 아직 보이지 않는 오는 세계
시몬, 나뭇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낙엽의 빛깔은 정답고 쓸쓸하다./낙엽은 덧없이 버림받아 땅위에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석양의 낙엽의 모습은 쓸쓸하다/ 바람에 불리울 적마 다 상냥스러이 외친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 한 낙엽이리라./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바람이 몸에 스민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 가을이면 한번은 읽고 지나가고 싶어진 구르몽의 낙엽 밟는 가을 발자국 소리다.
앞뜰에 참나무 떡갈잎이 한잎두잎 떨어지고 있다. 떨어진 나뭇잎은 소복이 길가에 쌓이고 포도위를 뒹굴고도 있다. 구슬픈 가을노래 풀벌레울음소리도 멈추었다. 어떻게 보면 적막한 고요가 침묵 속에 가라않고 있는 듯 떨어진 나뭇잎소리 만으로 가을은 침묵한다. 어쩐지 쌓이고 있는 낙엽들을 거두어 버리고 싶지 않는 마음이다. 덮힌채로 한겨울을 밟고 지났으면 좋겠다.
사슴은 사슴대로, 다람쥐는 다람쥐대로 봄을 맞는 겨울준비에 분주하다. 나뭇잎이 지는 이유는 수액 의 절감에서 오는 생존하려는 생명력의 안깐힘이 그런 빛깔로 화학변화를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가을이 가을로만 끝나 버린다면 얼마나 허망하고 절망의 벼랑에서 허무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가을은 보다 풍성하고 새로운 봄의 약속을 심고 있는 희망 속의 행복을 심는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아무렇게나 떨어진 들깨 씨를 땅은 받아 흙속에 품고 겨울을 난다. 봄에 피는 튤립을 보려면 튤립의 벌브를 가을에 넣어야 한다. 집 사람이 하루 품을 내어 봄에 피어날 꽃씨를 묻고 있다. 튤립 도, 히야신스도, 데포딜도 릴리과의 나리, 난초뿌리도 땅이 얼기 전에 흙속에 심어 놓아야 한다. 가을 의 조락에 봄의 환희를 기다리며 품고 기다리는 봄의 축제를 심고 있는 것이다. 새가 알을 품고 있 는 침묵의 시간이다.
인생도 그렇거니 무언인가 기다리다 맞은 가을, 막상 맞고 보면 환희와 회한이 엇갈리는 가을이다. 그러나 분명 가을은 알찬 생명을 더 알차게 가꾸라는 한 생명의 도약을 위한 하나의 연속된 단계다.
눈에 보이는 세상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는 더 치밀한 생명전략이 숨어 있다. 마이크 로 스코프로 보아야 하는 분자 원자의 세계, 텔레스코프로 보아야 하는 은하우주의 세계가 있다. 정 치현상에 떠오르고 있는 비자금의 생태를 보면 보이는 정치판도 펄럭이는 깃발과 썩은 정치판도의 물밑 비리 속을 짐작할 수 있다. 암흑가의 마피아 깡패들과 다른 점 같은 점은 무엇일까? 철통같은 북쪽의 비밀이 황장엽의 생명을 건 탈출로 폭로되고 있고, 김정일의 전처 이남욱의 망명으로 김정일 침실의 커틴이 거두어지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생떼 같은 '식량원조'도 완전 통제된 유선방송으로 연 출하는 또 다른 획책을 위한 쇼라는 것이 세계언론의 분석이다.
가을은 우리에게 '심는 대로 거둔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귀한 백로 200마리가 낙동강 하류에서 아까운 떼죽움을 했다. 보이지 않는 부패의 오염이 무엇인가 를 보여주는 교훈이다. '심는 대로 거둔다.' 생명을 심으면 생명을 거두고, 부패를 심으면 죽음을 거 둔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파로 세상은 무서운 탈바꿈을 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혁명이 일고 있 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어떤 혁명보다 세상을 뒤흔들 혁명인 것이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질주하는 정보통신망의 달음질에 떨어지면 오는 21세기에 우리는 또 하나의 웃음거리가 되고 자고 나니 변해 있는 딱정벌래의 변신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맑은 하늘에 뚫린 귀로 낙엽이 밟히며 바스 락거리는 소리를 유심히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오는가?' 올해 동인 문학상을 받은 신경숙씨의 작품 속에 '그는' 죽음이라는 궁극적 종말이라 했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의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는 사랑과 욕망을 건져 올리고 싶은 긍정적 '죽음 '을 전제하고 있는 테마다. 인간의 실속은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종말을 전제 할 때 강해지는 것이 다. 이번 78회 전국체전에서 '오뚝이 월계관'으로 마라톤의 승리를 거둔 홍기표, 골라인 3m앞에 두고 그 는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가진 인간체력한계 조건을 넘어서 버린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 어났다. 그리고 최후의 3m를 다리를 끌며 결승점에 들어서서 영광의 월계관을 썼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단풍드는 아침 가을, 하루가 새롭게 달라지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눈에 보이는 가을 단풍과 눈에 보이지 않는 낙엽의 비밀한 언어가 적혀 있다. '비록 한 잎의 낙엽일지라도 바람에 떨어지면서, 우주의 최대의 법칙의 하나로서 충만한 뜻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텅빈 마음속에 오히려 충만으로 차 오르는 가을 '텅빈충만'속에 차 오르는 감회의 도 (道)라도 깨닫는 착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낙엽을 밟으며 듣는 소리, 낙엽이 지면서 속삭이는 말, 가을의 가라앉은 침묵을 깨고 있다.
'낙엽에 두자만 적어 서북풍에 높이 띄어/ 월명장안(月明長安)에 님 계신 데 보내고저 / 진실로 보오 신 후면 님도 슬퍼하리라.'- (청구영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