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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든 계절과 철부지 인생"

강용원 간사 · 1998년 01월 15일
홀로 한줄 두줄 현을 뜯던 귀뚜라미가 어느덧 관혁악을 이루어 넘어가는 석양 숲 속 이 가득하다. 구슬픈 곡조로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는 가을 풀벌레들의 노래 속에 올 여름도 가고 있다. 새로운 철이 들어서고 있는 철든 계절 속에 철부지 인생을 본다.

지난 3일 동안 세상을 또 한번 놀라게 하고 있는 다이아나의 죽음은 온 세상이 초상집으로 만들었다. 누군가는 '다이아나는 <행복>만을 빼놓고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인이었다.'고 했다. 미모와 명예, 가문과 돈, 역사 위에 최후가 될 대영 제국의 왕세자비 칭호, 만인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고 싶어하는 인기의 정상을 누렸던 여인이었다. 그의 죽음은 인생의 아이러니와 모순, 그리고 부조리에 얽힌 인생의 단편을 그림처럼 보여주고 갔다.

현대 기술로는 가장 안전도가 높다는 벤츠를 타고, 비행기 조종사를 했을 만큼 능숙한 경호원 겸 운전사가 경호가 완벽한 두 사람을 태우고 휘지조각을 부벼버리듯 박살난 형체의 차체 속에 그의 인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이 세기의 마지막 전설적 동화 속의 '공주'는 갔다. 그의 파란 만장한 16년간의 이야기도 가는 세월 속에 묻히고 말 것이다. 36세의 인생의 절정에 그는 모든 것을 마감하고 말았다. 한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으로 볼 때, 다이아나의 죽음이나 폐광 속을 헤집다 죽은 이름도 모를 광부의 죽음이나, 전쟁터에서 떼죽음을 하는 죽음이나, 날마다 일어나는 교통사고의 죽음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17세의 소녀로 종군위안부가 되어 하루에 20명을 상대하고 끌려 다니다가 어디서 죽은 지도 생매장 당했을지도 모른 정신대 여인들의 운명적 죽음에 비하면 화려한 죽음이다.

"누가 다이아나를 죽였는가?" 만취한 경호운전사가 시속196km로 질주해서 일까? 사생활을 벌거벗겨 놓고 보고 싶은 돈벌이 가십잡지들의 경쟁에 한탕을 노린 파리 떼 같은 파파로치들의 인간욕구를 충족시켜 재미를 보는 몰래 카메라맨들이었을까?

아니면 그런 사생활을 엿보기 취미에 도착이 된 인간의 변태성 세기말적 관음증(觀淫症)후적 변태성 도착인 것인가? 무엇이나 까 발겨야 직성이 풀리는 저질 매스컴을 좋아하는 우리 모두는 공범자다.

그러나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누가 다이아나를 죽였을까?" 다이아나를 죽게 만든 장본인은 챨스 황태자다. 그녀는 평범한 한 자연인으로 평범한 여자로서의 평범한 <행복>이상 더 바라지 않아도 살수 있는 여자였다. 이 열린 자유의 공간에 '버킹함'케케묵은 철장 같은 궁전 속에, 그 잘난 의식과 전통의 족쇄 속에 이 시대의 '자유'는 더 이상 갇혀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왕족의 혈통이 더 이상 흐를 필요가 없고 수채통으로 미련 없이 버렸어야 할 역사의 계절이다. 귀족과 천민이 따로 없고, 양반과 쌍놈이 더 이상 계층을 이루어 성곽을 높여야 하는 계절은 이미 골똥품이 된지 오래다. 다이아나를 죽인 것은 아직도 철을 모르고 버틴 철모른 철부지 인간의 계급 계층성 권위구조의 만행이다.

아직도 일본에 '천황'이라는 것이 있어, 늙은 귀신처럼 은신처를 찾아 헤매고 있다.

역사의 철은 들고 있다. 귀가 아프게 반복되는 21세기의 새로 열려야하는 '세계공동체' 속의 <서로 똑같이 함께 잘사는> 철든 인간의 자각이 아쉬운 귀뚜라미 울음소리다. 해 넘어가는 석양 고아원에 갓 주어온 2살 짜리 고아가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이 고아는 울음을 터뜨린다. 배가 고파서 그러는가 싶어 우유를 먹여도 울어대기만 한다. 장난감을 가져다 놀아주어도 울음은 그치지 않는다. 아픈 데나 병이 난나 싶어 의사를 불러도 이상이 없다. 옷 속에 벌래가 있는가 싶어 새 옷을 갈아 입혀도 고아는 울음을 멈출 줄 모른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울고 있는 고아도 왜 우는지 모르고 운다. 이유도 모르면서 울어야 하는 고아, 그것은 그가 고아원에 오기 전에 밭을 메고 저녁에 돌아와 엄마의 품에 안겨 젖을 먹는 시간이다. 잃어버린 엄마 품의 시간이다.

다이아나를 죽인 근본원인은 시대착오적 계급사회의 구조성에 있다. 인간 자유의 품속에 쉬고 싶은 자유 혼의 통곡같은 처절한 투혼 울음이다.

한 잎, 두 잎 철든 낙엽이 진다. 철든 잎들이 떨어지면서 철들고 있는 계절에 철들줄 모르는 철부지인간들에게 한마디씩하고 있다.

"지금이 어느 철인데 인생단풍놀이나 하려고 하느냐?" 더욱 구슬퍼진 풀 벌래 합창, 철든 역사의 계절에 철부지 인생을 청산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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