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어머니 테레사를 보내는 날
지난 한 주간에 우리는 두사람의 큰 죽음을 보았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야되고 한번은 통과해야하는 필수과목 죽음을 놓고, 이 가을, 인생을 생각해 보는 사색의 계절이면 좋겠다. 우리들 마음이 너무 황폐되고 거칠고 메말라있어 금속성 철근 콩크리뜨의 무감각 무감동 무표정이 되어버린지 오래이지만 이 가을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계절로, 두 사람의 인생의 마지막을 던져 놓고 있다. 다이아나 죽음과 테레사의 죽음이다.
키가 자란 코스모스도 하늘을 향해 그 이름처럼 무한한 우주의 질서를 열어 보여주는 듯 삼색 꽃잎으로 무엇인가 속삭이듯 하늘거리고 있다.
우리는 지난 몇 달 사이에 비행기추락의 떼죽음도 보았다. 이번에 간 두 사람의 죽음은 그것을 더 확대하여 인생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가을의 멧세지로 들려온다.
초가 지붕 위에 하얗게 피어 있는 박꽃의 소복을 입고, 겸허한 인간의 기본자세를 가다듬는 시간이면 좋겠다. 아무리 우리의 삶이 척박할지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아직도 뛰고 있는 심장의 맥박이 있고, 박동 치는 흐르는 피가 있다.
테레사는 하늘만 바라고 살리라고 수녀가 되었고 폐병에 걸려 자신의 병을 요양하러 가던 중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자신보다 가장 낮고 가장 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가장 비참한 사람에게로 가야되겠다는 깨달음이었다. 인도의 칼컷타 문둥이 촌에 빈손으로 자기 몸을 던졌다. 그가 가진 유일한 것 하나는 생명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생명이다" 는 믿음, 하나 였다. 생명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사랑을 그들에게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송두리째 주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교단이라는 종교의 굴레도 벗어 던졌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누구 한사람, 어느 기관 단체에 구원의 요청을 한적이 없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생명이라면 하나님의 사랑만이 그들을 치료할 것이라는 그의 믿음 하나 뿐이었다. 노벨상을 받았으나 그의 이름으로 받지도 않고, 헐벗고 굶주린 저들의 이름으로 받았다. 노벨 상금도 통체로 저들을 위해 썼다. 그에게 남은 것 신고 다닌 산달, 무명 사리 세벌뿐이었다. 인간으로 할 수 있고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가는 본을 보였다.
나 자신도 스스로 종교인이라 자처하는 뻔뻔한 얼굴로 살면서, 테레사 이름만 나오면 얼굴이 붉어지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 이름 그대로 마더 테레사, 위대한 인류의 어머니는 갔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이 깡마른 바닥에 샘물을 파듯 한 스푼 두 스푼으로 사랑의 샘을 파놓고 갔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게 젖어오는 이 석간수 같은 샘물이 한 어머니에게서 와서 나의 마음도 가슴도 심장도 눈물로 적시고 있다. 테레사 어머니를 생각하면 너무도 부끄럽기만 나 자신의 참회록을 쓰고 싶다.
"성녀(聖女)"추대를 교황청이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테레사는 그 칭호를 하늘에서 거절할 것이다. 오늘날 "성(聖)'자를 함부로 달고 다니는 우리는 낯뜨거운 줄이나 알아야 하겠다는 자책이 앞선다. "성도(聖徒)니 성직자(聖職者)"하는 말도 너무도 걸레처럼 쓰고 다니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어떤 자칭 성직자는 명함에 칼라 사진을 넣고 무슨 박사, 무슨 위원장, 무슨 고문 등등 참으로 "성"(聖)스런 글자까지 쌍스럽게 망치고 있다. 자칭 성직자라는 이름의 권위의 칼을 휘두르는 무리도 있는 것을 개탄한다. 테레사는 의식과 뼈만 앙상한 구조에 참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의 피를 수혈해고 갔다. 테레사 어머니가 파준 사랑의 샘은 이제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올 것이다.
테레사 어머니가 남기고 간 말들을 유언처럼 받들고 살고 싶다.
<"나는 가느다란-가늘면서도 낡아빠진 전깃줄이다. 전기는 하나님이시고--" 테레사가 이 빈민의 도시까지 전깃줄을 끌어 댄 것이 38세, 4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전깃줄은 낡아 나선이 되고 처지기도 했지만 그 사랑을 전하는데는 단 하루도 단전이나 정전을 한 때가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몽당 연필이다. 그분은 어렵기만 한 일을 해내신다. 그 일을 돕기 위해 그분의 손에 쥐어진 작은... 하지만 쓸모가 조금 남아 있는 나는 토막연필이다.'>
<'나는 모든 인간에서 신을 본다. 내가 나환자를 씻을 때 그리스도를 돌보는 느낌을 갖는다. 이 얼마나 행복한 경험이 아닌가?">
테레사는 예비수녀 시절 벵골만 바닷가를 거닐며 곧잘 돌멩이를 주어 바닷가에 던지곤 했다. 바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비해 용량이 너무 크다. 그러나 돌을 던지면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그 파문이 스러지기 전에 또 돌멩이를 던진다. "벵골만을 나는 이 작은 파문으로 굴복시키겠다."고 혼자 말을 했다. 그 파문이 테레사의 삶이었다. 이 작은 파문은 벵골만에 그치지 않고 오대양 육대주에 굽이치게 한 테레사 수녀다.
수녀이자 시인 이해인의 테레사를 위한 추모시가 기러기 울음 속에 우리의 어머니를 그리고 있다. 오늘 그의 몸을 땅에 묻는 날이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는 갔다. 그러나 그가 퍼준 사랑의 샘은 말라 붙은 우리들 가슴속에서 샘솟고 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해인 사랑하는 마더 테레사, 예상은 했지만 당신과의 영원한 이별은 깊은 슬픔입니다. 사랑이 너무 많아 잠시도 쉴 틈 없이 삶이 고달파도 누구보다 행복했던 마더 테레사.
메마른 세상 곳곳 사람의 샘을 만들고 인종과 이념의 벽을 넘어 누구에게나 평화의 어머니가 되셨던 마더 테레사 이제 모든 시름 잊으시고 편히 쉬십시요.
반세기 동안 당신이 뿌려놓은 사랑과 희망의 씨앗들은 당신을 따르는 선교회 수녀들과당신을 기리는 이들의 삶을 통해 길이 꽃피고 열매 맺을 것입니다.
겸손과 신뢰가 출렁이던 당신의 푸른 눈을 들여다보고 오래된 나무처럼 투박했던 당신의 두 손을 잡고 이기심과 욕망을 부끄러워하며 맑고 순한 기쁨만 가슴에 가득한 만남의 간들을 항상 기억하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당신의 그 마지막 말씀을 다시 삶의 지표로 세우고 끝까지 가야할 사랑의 길을 우리도 기쁘게 달려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안녕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