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살 돋은 오리 새끼들
"엄마, 나 오리 맞아?" "그럼 , 네 오빠도 오린데..." "정말 나 오리 맞지?" "오늘 따라 왜 그러니? 징그럽게." "그런데 나는 왜 닭살이 돋지?...." 최근 어느 신문 일기예보 제목을 "요즈음 날씨 봄날씨 맞아?" -그런데 왠 천둥번개 벼락 소나기가 쏟아지지?- 반항성 풍자 일기예보 타이틀로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요즘 한국의 정치풍토는 자고 나 면 용들이 한 마리씩 생겨, 정치판의 연막을치고 미꾸라지 지렁이들까지 용이라고 기염을 토하니 날씨까지 성질 나서 지난 봄철, 청와대 뒤뜰에 벼락이 떨어졌는지 모른다. 마침내 구룡(구렁이들)이 7룡 미꾸라지가 되어 진흙땅에서 허우적 거리는 꼴이 되고 있다.
세태를 꼬집는 대학가의 유머들이 어떤 설교나 명언보다 설득력과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한때 '참새시리즈'는 60년대를 , 5공 6공때 '전두환 시리즈' '최불암시리즈' 문민정부 '김영삼시리즈'들 이 하이텔을 비롯해 대학신문등에 신세대 감각으로 표출되고 있어 재미있다. <썰렁시리즈> 중에 나 온 동물을 빗대어 풍자하고 있는 대학의 은어들은 날카로운 비판력과 울분을 풀 줄 아는 멋이 있고 카타르시스가 되고 있다.
시절이 하도 수상하니 우화(寓話)가 뜬다. 요지음 자고 나면 다른 세상이 되어 버린 섬찍한 뉴스들로 소름이 뻗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에, 변태성 사회 현실에 혼동되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정립하고 싶은 것이다. 참으로 헷 갈리기 쉬운 휘몰이 시간대를 지나고 있다. 시대 착오적인 세계관속에 정체성의 확립이 어느때 보다 시급하다. 21세기를 3년반 앞에 놓고 세계는 무서운 속도로 돌변하면서 대격변기의 세기말적 혼란을 여과시키고 있는 과정에 있다.
하나의 인생이 한번 왔다가 한번 살고 가는 유일하고 고귀한 삶이다. <내 모습>을 바로보고 <내 자 리>에 바로서서 <내 할 일>을 바로 하고 가는 삶이, 인생을 인생답게, 사람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고 가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엄청난 세기말적 격변속에 제 모습, 제 자리, 제 할 일을 바로 보고 찾기가 매우 어려운 역사의 격랑속에 혼돈속에 있다. 혼동마져도 혼동하는 세태속에 묻혀 돌아가고 있다.
특히 미국이라는 다 문화, 다 민족속의 이민자의 삶은 더욱 그러하고, 더더욱 우리는 우리의 2세들의 정체성 확립에 뿌리의 확실한 긍지를 심어주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문화와 인종사이의 정체성은 말할것도 없고, 근본 인간성 자체의 본질 정체성이 더욱 우선과제다. 지 금이 몇시인가?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고 오늘의 역사의 날씨는 어떤 예보를 하고 있는가?
인간성 말살의 뿌리를 뒤집는 우리를 헷갈리게하는 엄청난 사건들이 터지고 있다.
프롬파티에 가던 여학생이 아이를 낳고 비닐백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서 댄스를 한다.
핵주먹 타이슨이 승부를 위해 상대방의 귀를 물어뜯어 밷고 다시 물어 뜯는 식인종이 된다.
학교는 폭력배들의 아지트가되어 초등학교 학생이 자살을 해야한다. 일등일류병 경쟁의식에 일등을 하고 나서 영원한 일등을 위해 죽음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산다고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스위스은행에 비밀계좌를 가지고 있다.
이성 잃은 김정일은 민족 서로돕기로 쌀을 보내는 남쪽을 향해 언론사 폭파위협과 온갖 욕설로 남한 을 비방하고 있다. 최악의 욕지거리를 배우려면 북쪽의 노동신문을 보면된다.
헷갈린다. 닭살이 돋을 수밖에 없는 소름끼치는 헷갈림이다. 앞과 뒤, 전후좌우가 헷갈리는 상황이다. "혼동이 잘 안되네..." 이거 말이 되는지 혼동된다. 첨단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터넷이 세상을 한 그물에 끌어올리고 있다. 두 개의 대표적인 인터넷 웹 브라우져가 넷스케이프의 네비게이터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러러다. 오고 있는 세기를 향해 그 이름들 부터가 헤매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고 메시지가 되고 있다.
무한히 열린 바다를 항해 할 때, 방향키를 잡아야 하는 네비게이터가 없으면 방향을 잡을 수 없다. 무한히 열린 세계와 우주를 향한 엑스플러러의 탐험 의지가 없으면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마저도 잃 어버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Network을 이뤄 팀웍으로 공유되어야 사는 시대를 헤쳐 나가고 있다. 다시 보는 세계, 다시 나의 위치를 확인해 보는 정체성의 의미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살아 남는 시점 에 와있다. 이념적 정치구조 권위가 아닌, 냉엄한 기업경영 운영체제로 실속 차린 세상이 되어 간다.
쉐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 "To be or not to be"(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존재의 의미를 묻 고있다. 지금 우리는 "To CLONE OR NOT CLONE" 그것이 문제다. 일등 일류복제성 인간교육, 성 공위주, 생존경쟁에 참 인간성의 정체성이 상실된지 오래다. 지금 우리는 그 비극을 걷우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어 사람답게 사는 것, <제 모습 찾기>, <제 자리 찾기>, <제 할 일 찾기>를 겸 손하고 차분하게 다시 정리해야만 하는 소름끼치는 가공할 혼돈의 다리를 건너고 있다.
"그래도 나는 한국인이요." 73세의 훈 할머니, 역사의 수레바퀴 틈에 끼어 50년 일본으로 캄보디아로 끌려다니며 핏줄과 조국을 잃어버린 한 여자의 운명이 오열하는 한 외침을 우리는 어디서부터 풀어 가야 할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 여름 7월, 이름도 모를 들꽃 하나 하나 제마다 아름다움이 있고 제마다 풍기는 독특한 향기가 있 다. 제 철에 제 모습대로 피어 반기는 행복한 저들의 모습이 많은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Who are you? What are you? Where are you now? 우리 사람들도 인간의 제모습, 하나밖에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을 찾아 제 모습대로 피고 사는 인간의 모습을 가추어야 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