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에 생각하는 어느 로빈새의 사랑
신록의 오월은 온 세상이 들뜬 생명 잔치의 달이다.
꽃들이 축제의 매스게임을 벌린다. 새들이 합창을 한다.
아침마다 지절대는 새 소리는 하루가 새로 열리는 팡파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블루버드, 카디날, 블루제이, 로빈, 그리고 미국 참새들이 먼동이 트면 노 래하기 시작한다.
16년전 만핫탄 빌딩 숲에 살고 있던 우리를, 미국인 친구가 뉴저지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제일 먼저 자랑삼아 보여 준 것이 새가 알을 낳은 새둥지였다. 네게의 청록색 로빈의 알이 네스트속에 놓여 있 었다. 가슴이 설랬다. 그후 만핫탄을 벗어나 교외로 집을 옴긴 후 날마다 새를 보는 즐거움 속에 혹 시라도 새가 알을 낳은 새둥지를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새가 만든 둥지를 보는 것이 행복했다. 그래 서 한때는 새집만 모아 다가 나무 여기 저기 다시 올려놓고, 들어올 때 나갈 때 그것을 보는 즐거움 을 누린 적도 있다.
그런데 지난해 어느 날 바로 집뜰 앞에 있는 나무에 두 마리의 로빈이 입에 나뭇가지를 물고 드나들 며 둥지를 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로빈이 었다. 굵은 가지로 프래임을 잡은 후 부드러운 풀잎으로 속을 단장하고 흙을 물어 날라 보금자리를 만든 것이다. 어느 날부터 엄마 로빈은 둥지 안에서 밤이 나 낮이나 앉아 있었다. 아빠 로빈은 저만큼 물러앉아 둥지를 지키다가 입에 먹이를 물고와 엄마 로 빈에게 먹여 주었다. 나는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둥지 안에 있을 알을 보고 싶었다. 그 러나 행여라도 내가 보면 다른 곳으로 가버릴까바 조바심을 안고 참고 있었다. 그러던 중 며칠만에 드디어 둥지 안에서 짹짹거리는 소리와 함께 엄마 로빈과 아빠 로빈이 번갈아 지키면서 먹이를 찾아 다 먹였다. 나는 흥분을 억제할 수 없는 감격을, 큰 비밀처럼 가족에게 공개했다. 아내도 아들도 함 께 기뻐했다. 집안에 큰 경사라도 난 듯 온 가족이 날만 새면 둥지를 찾아가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도 눈이 뜨자마자 그 둥지를 보러 간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나무 위에 로빈의 둥지에 어느 강도가 들었다. 둥지는 흐트러진 채 땅바닥에 떨어져 있고 짹짹거리는 새끼 새는 없어 지고 온 바닥에 어미 새들의 깃털과 피로 찟기운 살점이 흩어져 있었다. 밤새 침입한 동물과 새끼를 지키려는 엄마 로빈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제 새끼를 살리기 위해 두 마리의 어미 로빈이 함께 죽으 며 그 생명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 사건을 본후 나는 사흘을 설사복통을 앓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아무리 동물 세계의 약육강식의 포탈이라 해도 너무도 허망한 본능욕구 동물적 착취에 치를 떨었다. 그날 나는 그 나무의 가지를 모두 쳐버렸다. 다시는 새가 둥지를 쳐 또 다른 참사를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다. 하물며 인간의 모정은 말할 것도 없다. 기차 길에 뛰어들어 아들을 던지고 대신 죽은 엄마, 추운 겨 울 아기를 품고 대신 얼어죽은 엄마의 이야기들은 얼마든지 있다. 세상이 변질되어 자기가 난 생명 을 비닐 백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리는 세태가 되었지만, 모정은 본능 이상의 희생의 숭고한 피를 묻 힌다. 인간 모정은 희생의 피 그 이상의 무엇이 더 있다.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는 내게 영원한 여인상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초가 지붕 위에 핀 박꽃이 연상되고 설악산 계곡의 달맞이 꽃으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당신의 본분을 최선을 다해 주시고 가신 어머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빼앗긴 조국을 등지고 핏덩이 나를 안고 만주로 살길을 찾아 쫓겨갔다. 갈대 숲을 일구어 논을 만들어 벼를 가꿔 쌀은 군량미로 공출하고, 강냉이죽으로 우리를 먹여 살렸 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다 쌀밥을 먹이고 싶어 간 만주 간도 이민이었다. 해방이 되어 두만강을 건너 기차로 개성까지 한달 걸려 왔다. 개성에서 이미 막혀 버린 38선을 밤으 로 밤으로 북한 경비병과 쏘련군을 피해 아슬아슬 사선을 넘어 남하했다.
해방된 초기 남한의 빈곤, 6.25 전쟁 잿더미 속에서 먹을 것, 입을 것을 빈손으로 4남매를 키워 내셨 다.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고 푸르름의 신록이 아름다운 계절에, 삶의 기본틀, 가정이 꽃동산으로 회복되 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우리의 가족은 이제 족보가족이 아니다. 한 민족의 가족 개념도 넘어 서야 한다. 특히 미국은 그것을 이상으로 세워진 나라다. "Many Faces, One Family" 다 민족 한 가 족의 세계가 한 가족이다. 세계가 하나의 화목한 가정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좁게는 내 자식 하나만, 내 가정 하나만, 내 민족, 내 동포 하나만 잘되면 된다는 울타리를 벗어나 글로벌 빌레지의 하나의 공동체가 서로 돕고 격려하며 사랑하는 이상 가정을 이룰 때까지 진정한 의 미에서 내 가정만의 행복은 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족 이기주의, 민족 이기주의, 집 단 이기성을 조장하여 끝없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 생존을 위한 호구책일뿐일것이다. 그것이 21세기 를 달려가는 우리들의 세계화 공동체의 과제다.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꽃 박람회가 하루 20만의 인파를 몸살나게 하고 있다.
어린이 날, 어머니날에 그만큼 꽃밭 같은 가정을 보고 싶고 이루고 싶은 사람들의 소원일 것이다.
가정과 가족을 다시 한번 챙겨 보면서 기쁨과 자책이 엇갈리는 달이다.
가정을 소홀히 했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싶은 가정 탕자의 회귀의 달이기도 하다.
우리는 결국 가족을 통해 가정에서 사랑과 희생을 배워 세계를 살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아무리 잘된 내 가정, 아무리 행복한 내 가족이라 할지라도 우주의 고아 신세를 면 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사는 특권이 여기에 있다. 미국을 사는 행복도 여기에 있다.
오늘의 한국의 비극은 이 집단성 이기주의의 씨족 보존 본능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에 혼란과 부패의 뿌리가 있다. 적어도 인간만은 씨족 보존 본능만의 네스트 차원을 높여야 할 시대의 계절에 와 있다.
세계는 어차피 한 가족이다. 운명을 함께해야 하는 세계로 달리는, 우리들의 가족팀이 되기를 바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