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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솟아라

박목월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어, 달밤이 싫어,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어...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라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라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 [상아탑] 6호(1946.5) 수록.
    새 인간성 및 이상적 우주 구현을 노래했다.
    이 작품을 가리켜 조연현은 "한국 서정시가 이룰 수 있는 한 절정을 노래했다"고 평했다.
    주제는 순수와 광명과 평화에의 의욕.
  • 조연현의 평 - "자기가 부르고 싶은 모든 것을 다 노래해 버리고 말은 감이 없지않을 만큼 절정에까지 도달해 버리고 말았다. 여기엔 적어도 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노래불리워지고 있다. 씨는 이 한편으로써 유언 없이 죽을 수 있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1998-10-08 · 조회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