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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님

남궁벽

말님.
나는 당신이 웃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숙명을 체관한 것 같은 얼굴로
간혹 웃는 일은 있으나
그것은 좀처럼 하여서는 없는 일이외다.
대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순하게 물건을 운반도 하고
사람을 태워 가지고 달아나기도 합니다.

말님, 당신의 운명은 다만 그것뿐입니까.
그러하다는 것은 너무나 섭섭한 일이외다.
나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짜할 수 없는
사람의 악을 볼 때
항상 내세의 심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이
당신의 운명을 생각할 때
항상 당신도 사람이 될 때가 있고
사람도 당신이 될 때가 있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 '신생활' 8호(1922.8) 수록.
    마치 '걸리버 여행기'의 한 대목을 작품화한 듯한 시. 아뭏든 독특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남궁벽은 27세의 젊은 나이로 작고했다. 그 사이에 그가 남긴 작품은 고작 10여 편. 오늘날 거의 잊혀지고 있지만, 하나하나 음미해 보면 재평가 되어야 할 작품이다.

1998-09-10 · 조회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