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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기다린다

김후란

밤을 기다린다.
시간이 허리를 꺾는다.
무엇인가 변화하는 끝머리에서
마지막 그림처럼 압축된 세계를
털이 긴 동물이 스치고 지나간다.
오리 때가 발자국을 찍는다.
여린 풀꽃이 꺼질 듯한 한숨을 뿜는다.
목을 감싼 신부의 검은 미사복
빌로드를 밟으며 얼굴 없는 밤의 입김이
귀밑머리를 간지린다.
나는 웃었다.
그리고 미사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그림 속으로 들어섰다.

1998-04-05 · 조회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