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lures are divided into two classes- those who thought and never did, and those who did and never thought."

- John Charles Salak

RIIM

예수님의 절규

김준곤 목사 1999-09-28 조회 417

많은 문인과 철학자들이 죽음, 허무, 무지 등의 문제로 고뇌하며 자살까지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모든 고통받는 자들을 초대한다고 선언했다. 세상의 문학과 철학에는 구원이 없지만, 예수님의 말씀 속에만 참된 소망과 구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 김소월은 철새가 나는 하늘을 보고 "공중에는 길이 있는가 나는 열십자 한복판에 섰다"고 했다. 일본의 다꾸보꾸라는 시인은 죽을 사 자를 일백 번 모래 위에 써보고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입을 통해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 문제로 몸살을 했다. 얼마나 많은 문인들이 자살을 하는가. 불란서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끌로드시몽은 허무주의자였다. 할 말도 쓸 말도 의미도 목적도 없지만 그저 산다고 했다. 까뮈는 몽유병자 같은 [이방인]을 썼고 사르트르는 출구 없는 [방]을, 헤밍웨이는 행동적 허무주의를 주제로 한 [노인과 바다]를 쓰고 자살을 했다. 괴테는 죽을 때 빛을 찾았다. 철학에도 구원은 없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한 가지 아는 것이 있는데 무지를 안다고 했다. 인도의 성자 간디는 참회적 자서전에서 "오호라 괴롭다"고 죄를 참회했고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목마른 자는 다 내게로 오라 하셨다(마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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