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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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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 예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도적의 비유(마 24:42∼44; 눅 12:39∼40), 문지기의 비유(막 13:32∼37),깨어있는 종들의 비유(눅 12:35∼38)

    위의 비유들은 겉으로 나타난 문장이나 표현을 중심으로 본다면 서로 관계가 없는 비유들로 보인다. 그러나 세 비유들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함께 다루어 주는 것이 적절하다. 단지 서로간의 강조점이 약간씩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며 함께 취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곳에서의 가르침과 비유들을 통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 그리고 종말의 임함의 확실성과는 대조적으로 그 시점의 불확실성 및 모호성의 가르침을 배경으로 이 비유를 인도하고 계신다. 바로 ‘이러한 불확실성과 모호성이 우리의 삶에 어떠한 모습으로 반영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오늘 비유들의 초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편리함이 더해지며 이 세상 속에 파묻혀 사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괜찮아 보이고 지속적으로 괜찮을 것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오늘의 말씀은 ‘언제 올지 모르는 종말’을 항상 준비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필요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1.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관찰

    먼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준비된 문지기 또는 종들’의 비유를 보면 서로 간에 유사한 점과 다른 점이 함께 존재한다. 유사한 점은 주인이 일정을 정해놓지 않은 여행을 떠나고 종들에게 일을 맡겨 자신이 예고치 않게 돌아올 것에 대하여 분명히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내용상 차이가 있다. 먼저 마가복음에서는 주인이 여행을 떠나며 모든 종들에게 각자의 임무가 맡겨졌다는 언급이 있으나, 결국 초점은 언제인지 확실치 않아 자신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문지기를 향하여 ‘깨어 있으라’라는 특별한 명령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문지기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관심의 변두리로 밀려난 듯 보인다. 이와는 달리 누가복음에서는 주인이 돌아와 문 두드리는 것을 모든 종들이 함께 준비하고 기다릴 것을 명하고 갔다 온다는 점에서 마가복음과 다르다. 이러한 분명한 차이 외에도 이 두 복음서 속에 흐르는 분위기 또한 다르다. 마가복음에서는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36절)를 통해 볼 수 있듯 경고(warning) 또는 심판적 성향이 강하지만누가복음에서는 “깨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37절)에서 분명히 나타나듯 축복(blessings)과 함께 기대적 성향이 부각되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메시지의 적용 부분에서는 ‘너희’(마가복음, 누가복음 모두 36절)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어느 한 특정한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것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누가복음에서는 또 다른 독특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이 돌아와 모든 이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it will be good for those servants)라는 말씀이 37, 38절에 두 번이나 반복된다. 그리고 그 복에 관한 말씀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라는 것은 이 세상 속의 주인과 종의 관계 속에서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모습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쉽게 이해되어 진다.

    그 분의 생전 시에 보여 주셨던 제자들과의 친밀한 교제,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던 모습(요 13장),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의 말씀의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때 그것은 그렇게 낯선 모습이 아니다. 이 비유 속에 나와 있는 주님의 모습은 믿는 이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기를 원하시며, 그 모습을 보셨을 때 칭찬과 상을 주실뿐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종의 모습으로 섬기실 정도로 기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그리고 있다.

    2. 이 비유를 통해 얻는 교훈

    비유 속에 나오는 두 인물들을 통하여 다음 두 가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주님의 재림은 마치 ‘도적’이 임하듯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실 것을 염두에 두고 ‘항상’ 깨어서 자신들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분이 재림하는 순간은 ‘준비된 자들’과 ‘준비되지 않은 자들’ 두 부류로 나누는 시간이 된다. 이 비유에서 약속하셨 듯 그 순간은 전자에 속한 자들에게는 ‘상급과 축복을 경험’하는 기쁨의 시간이 될 것이나, 후자에 속한 자들에게는 ‘심판과 후회를 경험’하는 애통의 시간이 될 것이다.

    3. 이 비유의 교훈과 우리의 현실

    우리 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했던 상황을 돌아볼 때 ‘경제의 문지기’ 역할을 해야 했던 요직을 맡고 있던 사람들의 판단착오 또는 직무유기가 그 원인이었다. 그들의 눈 앞에 다가온 위험에 대한 예측 및 대응 실패로 인하여 나라에 엄청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또한 영화화되어 엄청난 인기를 얻은 타이타닉(Titanic) 호의 침몰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이유도 물론 선장의 ‘최단시간 대서양 횡단이라는 신기록’을 세우려는 개인적 야심도 지적할 수 있으나, 배 앞에 다가오는 빙산을 안이함과 방심하는 자세로 임한 당직자들을 탓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것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일들도 준비부족 및 판단착오가 있을 때에는 죽음과 경제적 손실이라는 엄청난 비극과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세상일도 그러한데 하물며 영적인 영역에서의 ‘준비의 중요성’은 인간의 ‘영원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각도에서 볼 때 더욱 더 심각하다.

    모든 믿는 이들은 ‘주님의 제자들’이며 제자들로서 제자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역할 중에서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이 세상을 ‘평가’하며 ‘비판’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과 함께 동전의 다른 면과 같이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경고와 선언이다.

    위의 비유는 이러한 역할의 요소를 자세히 정의함과 동시에 그러한 일을 감당하는 자들을 향한 도전을 담고 있다. 바로 제자들이란 이 세상에서 ‘영적인 문지기들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들이다. 이 세상 속에 조금씩 더욱 분명해지고 있는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를 지적하며 이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의 필요성을 외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재림하신다. 그 분이 오실 때 준비되지 않은 자들은 ‘도적이 오듯’ 홀연히 오시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누가복음에 그려졌듯이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며, 현재 준비되어지지 않은 자들의 마음을 지금도 두드리심을 통해(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모든 이들과 교제하시며 풍성한 삶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그를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또한 믿으나 준비하는 삶을 살지 않는 자들을 위해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취할 당연한 태도는 기쁨으로 그 분께 응답하는 것이다.

    알람을 달거나 사설방범회사 등과 계약을 맺는 등 도적을 막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발견한다. 단순히 있다가도 없을 수 있는 이 세상에 속한 물건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데 영원한 생명을 위한 준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준비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이제부터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따라 재림의 순간 경험하게 될 결과가 어마어마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당신의 경우는 어떠한가? 주님의 오심이 도적의 침입과 같이 느껴질 것인가? 아니면 상급과 기쁨의 순간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