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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화사회에 대한 이해

    자료출처 : http://www.kdchurch.or.kr/

    1994년 5월 1일 (16) / 홍기선 장로(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사는 모습이 바뀌어지고, 그 사는 모습이 바뀌어지는 것을 시대가 변한다 사회가 변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의 사회와 지금의 사회는 다르다고 느끼곤 하는데, 그 변화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이 변화의 모습 속에서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어떤 문제와 어떤 대안을 생각해야할까? 이런 것을 같이 생각해보고자하는 의도로 제가 이 시간을 맡은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문 앞에 도달하고 있는 이런 사회를 우리가 정보사회다라고 말을 합니다만, 정보하게 되면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합니까? 저는 두가지가 생각이 납니다. 첫째는 중앙정보부가 생각이 납니다. 그래가지고 뭔가 엉큼하고 남의 비밀을 찾아내고 멀쩡한 사람 뒷통수 때리는 이런게 정보가 아닌가? 두번째로 저도 매일 컴퓨터를 대합니다만, 복잡한 기계로 사람의 넋을 빼앗아 나하고는 거리가 먼 것 관계 없는 것 그런 것이 정보가 아닌가? 제가 아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여러분도 저하고 비슷하다면,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정보라는 걸 실은 알고보면, 우리가 매일매일 그것 없으면 못사는 겁니다. 예를 들면 제가 한 천만원 있는데, 요것을 땅을 살까? 땅을 사자니 돈이 부족하고 또 주식을 살까? 뭔가 하고 싶은데 불안하지 않습니까? 이것 저것 선택할 것이 많은데, 불안합니다. 그리고 잘 모릅니다. 그때 '이틀만 지나면 주가가 확 오를테니까 요건 비밀이야 거기다가 투자해', 요게 정보입니다. 정보라는 것은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해주고 분명히 해주고, 이 자리에 가만히 보니까 시집 장가 가실 분들은 별로 안계시고, 며느리 사위 볼 분들이 많은데, 저 친구에게 우리 딸을 맡겨도 될까? 허우대는 멀쩡한데, 생활능력은 있나? 집안은 어떤가? 불안하거던요? 누가 그 친구에 대한 소상한 이야기를 죽 알려준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그렇게 우리가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데, 마음 편하게 해주고 확실하게 해주는, 그게 바로 정보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어디에서 정보를 취했습니까? 백설공주라는 옛날 이야기에는 어디에서 정보를 취했는가하면, 요술거울에서 정보를 취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나보다 이 세상에서 이쁜 사람이 있느냐? 하고 물어봤더니, 있습니다 했거던요. 용한 정보꾼이죠. 우리 한국에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미아리 찾아가서 용한 점장이한테서 정보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정보라는 것은 우리가 불안한 것을 확실하게 만들어주는 어떤 것입니다. 엣날 라디오 퀴즈 프로그램에 스무 고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동물성입니다.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나 거기서 질문을 하나씩 하나씩 하면서 불안한 것을 줄여갑니다. 그 질문 하나가 정보 하나입니다. 현대용어로 질문하는 것을 one bit of information 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학술적인 용어로는 정보란 불확실한 상태(entropy)를 줄이고 분명하고 확실한 상태(redundency)로 바꾸는데 필요한 근거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여러분이 사위볼때 점장이한테 물어서, 용한 점장이가 이렇게 이렇게 사주팔자가 이렇다고 말하면, 그게 바로 정보다, 라고 알아주시면 됩니다. 여러분에게도 용한 단골 점장이가 있다하면 그게 바로 중앙정보부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이해가 훨신 편할 겁니다.

    그런데 정보란 말이랑 비슷한 용어가 있습니다. 자료(data), 정보, 지식 이런 게 있습니다. 이것도 예를 들면 이해가 빠르리라 봅니다. 신문에 증권정보가 밤낮 납니다. 주식값이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런데 저같이 주식에 몽땅 넣었다가 떼인 사람은 그거 쳐다보지도 않아요. 그건 나하고 관계가 없는 겁니다. 주식에 대한 자료는 거기에 있습니다. 데이타입니다. 나하고 관계가 없으면 자료로만 있을 뿐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주식에 투자하신 분들, 혹은 정갑영 교수님과 같이 업으로 해서 먹고 사시는 분들은, 자기 생활하고 관계있는 자료는 그게 정보입니다. 저녁에 노을이 어떻게 될까? 바람이 어떻게 될까? 농사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대단한 정보입니다. 또 내일 소풍가는 국민학교 애한테는 내일 비가 올지 개일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정보입니다. 자기 생활하고 관계가 있는 데이타는 바로 정보가 됩니다. 관계가 없으면 하늘 노을이 붉어도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하늘을 보고 내일 날씨가 개이겠다. 어쩌겠다. 하는 것을 다 안다. 그런 정보를 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징조는 너희들이 읽지를 못한다. 자료는 있는데, 그것을 너희 생활과 연결시키지 못할때, 정보가 아니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는 겁니다. 그 정보가 자꾸 축적이 되다 보니까 꾀가 생깁니다. 요런 경우에는 요렇게 하면 되는 거구나. 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을 때, 그것을 우리는 지식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정보는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기 시작한 때부터 우리하고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다만 왜 정보화 사회라고 하느냐? 그런 정보가 이제는 무지무지하게 중요해졌다는 겁니다. 하다못해 구멍가게 하는 데도 중요해졌다. 여러분이 만약 국민학교 앞에서 구멍가게를 한다고 해봅시다. 애들의 학용품들을 잔뜩 사놓습니다. 사놓고 팔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그렇게 해놓고는 장사가 안됩니다. 어떤 물건이 많이 팔리는가? 재고가 얼마나 됐는가? 과거에 생산이 어떻게 됐는가? 여러분 동네 슈퍼마켓에 가면은 바코드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얼마짜리 물건이 얼마만큼 팔렸고 앞으로 재고가 얼마나 있을 것이고 얼마만큼 우리가 사야하고, 찍하고 긋는 걸로 그게 한꺼번에 다 생깁니다. 그러니 장부를 해가지고 요렇게 기록하는 사람하고 한번 찍하고 긋는 사람하고 그게 게임이 됩니까? 안됩니다. 저는 72년도에 미국에 가서 처음 직업이 바로 한국에도 나와있는 서클 케이라는 구멍가게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그때 한달 지나서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 얼마팔렸는가 계산을 잘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미국 사람들이 기껏 고등학교도 졸업못하는 사람들이 와서 일을 하거던요. 저는 대학 졸업 맡고 갔는데, 계산하는 것은 게임이 안되잖아요. 마찬가지로 한번만 그으면은 모든 것이 다 되는데, 계산하고 재고 정리를 해서는 되지를 않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살던 사회는 아담과 이브의 사회입니다. 과일 따먹고 사냥을 하고 그런 겁니다. 그때 무엇이 필요했습니까? 풍부한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줏어먹고, 여기 과일 다 따먹으면 저기가서 따먹고 그런 생활을 하다가, 이것을 우리는 수렵생활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다가 짝을 지어서 가족을 이루고 한군데에 부락을 정하고 그리고 살기를 시작했습니다.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땅이 넓은게 제일 입니다. 그리고 애를 많이 나아서 노동력이 많은 것이 제일 입니다. 지금도 큰 농장을 경영하는데 가보면, 지금은 달라졌습니다만, 미국에도 애를 열씩 낳곤 했습니다. 노동력과 토지가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산업사회가 되어서 공장이 돌아가고 물건을 만들어 내면서 중요한 것은 토지보다도, 자원과 에너지,자금, 자본 이런 것들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생기고 기계가 돌아가고 생산성이 증가한 것은 우리가 손으로 하던 것이 기계로 바뀌어지면서 우리의 노동력이 확대되었습니다. 근육이 확대된 사회, 그것이 바로 산업사회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정보사회는 현재 우리가 잘 피부로 못느낍니다만, 돌아가고 있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도 필요하고 땅도 필요하고 인력도 필요하고 자본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합치고 나누어주고 어디다가 투자를 하고 언제 은행에서 꾸고 언제 은행에 갚고 하는 이 모든 정보가 우선되는 사회이다. 이것이 정보사회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그 정보를 수집을 하고 가공을 하고 모으고 나누어주고 하는 이 정보로 밥먹고 사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훨씬 많고 돈 많이 벌고 그리고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그런 사회, 그게 정보사회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이 땅에 만들고 모든 짐승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 앞으로 피조물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제일 처음한 게 무엇입니까? 이름을 지었습니다. 너는 사자다 호랑이다. 이 이름을 지은게 무언가? 이게 컴퓨터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아담이 이름을 지었다는 작업이 뭔가? 를 이해하시면 컴퓨터의 70%를 이해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들면서 다 자기끼리 짝 짓고 의사소통을 하도록 언어를 가르쳐줬습니다. 꿀벌은 몸을 떨어서 자기네끼리 의사소통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개미는 질질 뭘 흘리고 다닙니다. 그럼 다른 개미가 냄새를 맡아가지고는 얼마큼 가면 뭐가 있다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미의 언어는 이렇게 질질 흘리고 다니는 것이 개미의 언어입니다. 닭은 올라타서 쪼고 그럽니다. 그건 무엇이냐 하면, 닭 사회에서의 위계질서를 나타내는 사회적 서열 계급을 정하는 의식입니다. 그게 다 닭의 언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각 종족마다 종류마다 자기에게 필요한 짝 짓는 언어, 협동하는 언어를 날 때부터 가르쳐줬습니다. 좀 유식한 말로 표현을 하면 DNA 안에 엽록소 안에 각 종족의 언어가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가능성만 주었지, 말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말을 자기가 만듭니다. 그것도 멋대로. 그래서 미국사람이 어머니라고 부를 때 mother이라고 부르고 독일 사람은 mutter라고 부르고 우리는 어머니라고 부르고, 다 말이 다릅니다. 그러나 미국 강아지 한국 강아지 독일 강아지, 님이 그리워서 부르는 말은 다 같습니다. 여러분 눈을 감으셔도 좋고 눈을 떠셔도 좋습니다. 어머니 얼굴을 떠 올려보십시오. 떠 오릅니까? 다 떠오르는데, 어머니라는 말하고 머리에 떠오르는 실상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건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직접 피부로 접하고 젖을 빨고 만났던 어머니에 대한 실질적인 감각을 우리는 아날로그(analog) 정보라고 합니다. 자연의 모습을 닮은 유사정보라고 합니다. 이것에다가 임의로 어머니라는 말을 붙인 겁니다. 즉 어머니에 대한 모든 기억을 부호화해서 어머니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암호입니다. 우리 머리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는가 하면, 어머니라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어머니라는 말을 들으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그것도 늙었을 때 어머니 젊었을 때 어머니 화났을 때 어머니, 여러가지 기억이 한꺼번에 어머니라는 부호 안에 전부 기억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강아지라고 상상해봅시다. 강아지에게는 어머니에 해당되는 말이 있을까? 물론 강아지에게는 자기 엄마가 있습니다. 체온으로 느끼고 피부로 느끼고, 그러나 그 느낌이 사라지면 어머니가 없어져 버립니다. 인간이 엄청난 기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피부로 느낀 기억을 언어로 바꾸는 그런 비밀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을 들으면 기억을 하고, 또 그 물체를 보면 말이 떠오르고, 그래서 우리가 사고를 할 수가 있습니다. 기억의 양을 엄청나게 늘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내어머니 뿐만이 아니라 네 어머니, 과거에 존재했던 어머니가 아니라 앞으로 존재할 어머니 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가능합니다. 어머니라는 말을 우리는 digital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은 아날로그와 디지탈을 서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말씀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어떻게 가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모세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엄청난 경험, 떨기나무가 불붙는 경험, 십계명을 받은 경험, 그 모든 경험을 어쩔 줄을 몰라 했을 겁니다. 그 어쩔 수 없는 체험을 아날로그라고 합니다. 그것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써놓고 보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내가 체험한 것은 엄청난 것인데, 그래도 재주가 그것 밖에 없어서 썼습니다. 즉 디지탈화한 겁니다. 인간의 아날로그 정보를 디지탈화하는데 기가 막힌 재주꾼들이 누군가? 시인입니다.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줄을 예전에 미쳐 몰랐어요. 저 달이 슬픔인줄은 예전에 미쳐 몰랐어요' 우리도 달 쳐다보며 이 싯구절 때문에 콧날이 시큰하는데, 그것을 쓸 수 있는 재주는 김소월이가 있거던요. 그래서 우리가 그 글을 보고 공감을 합니다. 그 암호를 보고. 글이라는 것은 암호입니다. 암호를 보고 콧날이 찡하고 아 그랬지, 이렇게 생생한 현실을 되체험합니다. 그것을 해석학이라는 분야에서는 주체험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컴퓨터가 그것을 해줄 수 있는 사회, 우리의 두뇌를 그렇게 늘려주는 것, 그것이 정보사회에서 상당히 중요합니다.

    말이 생긴다음에 글이 생겼습니다. 글은 말하고 뭐가 다른가? 기록을 남깁니다. 말은 해버리면 날라가지만, 글은 잘못 쓰면 흔적이 남아서 두고두고 책임을 져야합니다. 말은 나 그런 것 말한적이 없어 잡아떼면 그만이지만, 글은 물증이 있어 시간을 극복하는 겁니다. 지식이 축적이 됩니다. 모세가 성서를 썼기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체험을 할 수 가 있는 겁니다. 느낌은 느끼고 사라져버리면 그만입니다. 우리나라의 도공들이 고려자기를 만드는 기가 막힌 지식이 있었는데, 글을 써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전했습니다. 그래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리 나라에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답니다. 참 평화로운 나라였다고 합니다. 중국문헌을 통해서 우리가 간접적으로 아는데, 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조선이 어떻게생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글 때문에 지식의 전승이 생긴겁니다. 지식이라는 게 정보라고 했습니다. 남 못하는거 자기가 혼자 하는 것이 지식입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엣날에 글을 읽은 사람은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상민들이 똑똑해서 글을 읽으면 무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새는 통치권에 도전하면 혼나는 것과 같이, 그때는 지식권에 도전하면 혼납니다. 상놈이 글을 읽으면 그건 사회구조 자체를 뒤바꾸는 엄청난 짓이었습니다.

    성서를 전에는 인쇄술이 없었기 때문에 양피지에 전부 썼습니다. 귀했습니다. 높은 신부님들만 가졌습니다. 그런데 성서도 어려운 말입니다. 라틴어로만 되어있습니다. 이걸 쉬운 언문으로, 불어, 독어, 영어 이게 언문입니다, 그 시대로 말하면 상놈말입니다, 그 언문으로 번역을 하고 인쇄를 하고 막 만들어서 이 사람 저 사람 보게되었고, 이것은 신성모독죄고 신성한 권위에 도전하는 그런 것이 되었다는 겁니다. 지식을 확산했다는 것은 천기를 누설한게 됩니다. 성서가 귀할 때는 신부님이 성서를 라틴어로 읽고서 이건 이런 뜻이다 하고 말하면 군소리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서가 쉬운 말로 되고 많이 보급이 되고 모든 사람이 다 읽다가 보니까 안하던 버릇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거다, 알았냐 했더니, 신부님 질문있어요, 하면서 손을 들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사람이 지식이 있으면 자기 목소리가 생기고 주장이 생깁니다. 인쇄술의 발명은 지식의 확산을 가져왔고, 자기 목소리가 생기고 주장이 생기고,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시민 사회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냥 종교개혁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지식의 확산,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통신술이 발달되다 보니까 찰라적으로 공간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연락을 하려고 해도 며칠이 걸리던 것이 순간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야 거기 물건 값 내려갔어? 올라갔어?, 내가 얼마 보낼테니까 물건 좀 사, 이게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산업이 발달하고, 국제관계가 막 늘어나고, 전쟁도 그전하고는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전화라던지 팩시밀리는 다 통신입니다. 연결망이 생겨가지고 순식간에 정보가 왔다 갔다 합니다만, 정보내용에 대해서는 비밀을 보장하는 것이 통신의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몰래 훔쳐보기도 하지만, 편지를 열어봐서는 안됩니다. 전화도 몰래 도청해서는 안됩니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범죄가 확실하더라도 몰래 도청한 내용 가지고서는 증거를 확보못합니다. 통신은 비밀이 보장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방송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방송은 통신하고 다른 것이 한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알립니다. 퍼져나갑니다. 미국에서 처음 방송이 생겨서 나온 메세지가 무엇인가 하면 크리스마스 때 크리스마스 캐롤을 불렀답니다. 그리고 어느 구멍가게에 무슨 물건이 있으니까 와서 사가라, 그런 것이었답니다. 방송은 가만 보면 상당히 정서적이고 감정적이고 약간 단따라 기질이 있는 것이 속성입니다. 반면에 인쇄와 책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입니다. 우리가 대통령 후보를 뽑을 때, 대통령 후보의 정견을 신문으로 읽으면 누가 옳고 누가 틀리고 누가 합리적이고 누가 엉터리이고 이걸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송으로 대통령 후보를 볼 것 같으면 저사람 헤어스타일 멋잇다, 말을 누가 잘하는데, 누가 더 마음에 드는데, 주어지는 정보가 전혀 다릅니다. 방송 때문에 망한 대통령 후보가 있습니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닉슨 대통령입니다. 케네디 대통령과 닉슨 대통령과 둘이 붙었는데, 그전까지는 텔레비젼이 중요한 위치를 못 차지하다가 텔레비젼을 통해서 선거운동을 했는데, 케네디는 머리를 턱 이렇게 하고, 자유분방한 스타일로 나와서 이야기를 했는데, 닉슨은 경직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성표가 전부 케네디에게 갔습니다. 닉슨은 떨어졌습니다. 최근에도 그런게 있습니다. 먼데일과 레이건의 선거운동을 보면, 먼데일은 상당히 합리적이고 깐깐한 사람입니다만은 레이건은 배우입니다. show man입니다. 요새 우리 김영삼 대통령도 방송을 무척 의식해서 방송에 나오기 전에는 화장도 하고 신경을 씁니다. 방송이 생기면서 논리적인게 정서적인 것으로 퍼졌습니다. 뭐가 펴졌습니까? 서태지와 아이들, 아이들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이드신 분들도 다 압니다. 서울대전대구 찍고 부산, 다 아십니다. 이게 방송때문에 이렇습니다. 방송으로 전달하는 정보가 어떤 정서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버렸습니다. 마치 옛날에 사랑방에 앉아서 누구 집 며느리가 어떻다는 이야기를 온 세계적으로 같이 해버린 겁니다. 이런 정서적 공동체를 대중문화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런데로 방송으로는 '서울 대전 대구 찍고 부산' 같은 것을 보고, 전화로는 너한테만 이야기하는 건데 하면서 남 흉 실컷 보고, 신문으로는 주식값이 올라갔나 내려갔나를 보고. 각각 역할이 따로 따로 됐는데, 정보사회는 이게 다 합쳐져 버린 겁니다. 통신과 방송이 합쳐졌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면, 한국통신은 전화회사입니다. 거기서 비디오 가게를 차릴려고 합니다. 전화회사에다 전화를 해서 여기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 몇 월 몇일 몇 시에 보내주세요 하면, 그날 텔레비젼 켜두면 저절로 나와요. video on demand, 비디오 가게 차리는 겁니다. 짜장면 배달해주듯이 비디오 배달해주는 겁니다. 그거 금방 하게 되었습니다. 막 섞여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전화회사가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통신은 비밀스러운 내용이고 방송은 확 개방됐는데, 이걸 섞어놓으니까, 이걸 묶어야하느냐? 개방을 해야하느냐? 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 자녀 가운데서 컴퓨터 통신하는하는 자녀들이 있으면, 그 내용이 뭔가 잘 보세요, 이제 앞으로 그 내용이 성인들도 주고 받기가 창피한 여러가지 포로노가 막 왔다갔가 합니다. 이걸 막아야할가 안 막아야할까,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제는 T.V.스크린 하나에, 그것도 지금보다도 훨씬 크고 영화같이 선명한 T.V.스크린에, 어느 백화점의 세일에 어느 물건이 나오는지 다 나옵니다. 또는 아이들이 숙제를 하다가 독수리가 뭔지 궁금해서 버튼을 누르면 독수리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독수리의 모습이 보고싶습니까? 라는 질문에 버튼을 누르면 독수리의 모습이 나오고, 독수리의 우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까? 라는 질문에 버튼을 누르면 독수리의 우는 소리가 나오고. 도서관, 시장, 관공서 등 여러분이 알고 싶은 모든 것이 쉽게 선명하게 화면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백설공주의 요술거울이 바로 여러분의 방안에 들어가는 것이 정보화사회입니다.

    아까전에 아이들이 숙제할 때 독수리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CD롬입니다. 이게 왜 가능하냐? 우리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빨간 색'하고 제가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디지탈입니다. 말로 했으니까. 여러분 머리 속에 빨간 색이 생각납니까? 떠오릅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빨간 색은 시끄럽다' 하면은 빨간 분위기에 시끄러운 감이 생깁니까? 벌써 색과 소리가 합쳐졌습니다. 우리 두뇌는 그런 기능을 합니다. 약간 거기에다가 꼬리꼬리한 냄새가 난다고하면, 냄새가 추가가 됩니까? 그리고 부드럽다고 하면? 촉각, 후각, 청각, 시각, 전혀 다른 감각을 우리 뇌가 합치듯이, 이제는 전혀 다른 매체를 컴퓨터가 다 합칩니다. 무엇때문에 가능하느냐? 여러분이 그것을 합칠 수 있다면 무엇때문에 가능했죠? 제가 말을 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컴퓨터 언어가 아날로그를 디지탈화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텔레비젼을 보다가, 이 화면에는 천둥치는 것을 만들자 하고, 버튼만 누르면 멀쩡한 봄날에 천둥을 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거 겨울로 만들자하면 겨울이 되구요. 이런 식으로 마음대로 우리의 감각기관을 종합해주듯이 컴퓨터가 그렇게 해주는 시대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여러가지 시행착오와 여러가지 문제와 갈등을 통해서 그런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만사형통일 줄 알지만 그건 나름대로 고민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자동차가 있으니까 얼마나 편했습니까? 그러나 지금 자동차하면 얼마나 끔찍한 물건이 되어갑니까? 그렇다고 전부다 없애버릴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그런 문제가 우리에게 생겨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뉴미디어의 특징은, 모든 감각 테이타를 디지탈화하고 컴퓨터 언어화해가지고 각각 다른 감각 수단을 합칠 수 있는 것이 첫째 가능성입니다. 두번째는 이 놈의 컴퓨터라는 물건이, 모든 것을 다 창고와 같이 쌓아뒀다가 필요한 때, 필요한만큼 조정을 해서 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화라 하더라도 전화를 해서 상대방이 받지 않으면 통화를 못합니다. 요새는 자동응답의 수단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도 아직까지 자동응답의 요구에 쉽게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허공에다가 소리지르는 것 같습니다. 맹맹한 정신으로 가라오케가서 노래하려면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이 컴퓨터는 전자사서함이라는 겁니다. 나한테 뭐 온 것 없나하고 열어보면 메세지가 들어있는 거죠. 그래서 응답을 보내주구요. 미국대학에서는 이런 것을 대단히 많이 씁니다. 보고서를 언제까지 내주십시오 하면, 그것보고 학생들은 선생님 컴퓨터 메일박스에다 숙제를 보냅니다. 그리고 채점은 몇 점이다 해서 컴퓨터로 보내주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좋습니까? 그런 사회가? 예전에 강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정보사회라는 괴상한 사회가 오는데, 내가 생각할 때 끔직하다, 왜냐하면 전화 좀 안 받고 도망가서 숨고 싶은 때가 있는데, 딕하고 가는데마다 얼굴이 나타나고 도망갈 수도 없으면 어떻게 사느냐? 혹시 기억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바로 그런 겁니다. 감출 수가 없고 숨을 데가 없고. 정보사회가 극대화되는 사회, 그 날을 최후의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감출 데가 없이 명명백백하게 다 드러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약속을 해주면서도 문제를 엄청나게 제기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사회가 가능한 것은,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가 전에는 오솔길이었는데, 전화선 같은 것은 오솔길입니다, 이제는 큰 경부고속도로 같은 것이 뚫렸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고속전철 같은 것이 깔린 겁니다. 통신의 급속한 발달과 정보망의 통로가 커지는 것을 요새 초고속 정보망이라고 합니다. super highway 라는 말입니다. 정보의 초고속도로, 그것은 광섬유가 개발이 되서 가능하게 된 겁니다. 광섬유는 값도 쌉니다. 모래로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통해서 어린아이의 세발자전거부터 시작해가지고 탱크 비행기까지 왔다 갔다할 수 있는 그런 기기입니다. 우리 가정마다 그런 게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래서 모든 자료가 전산화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고 또 남한테 모르고 있다는 것을 들키게되고.

    들키는 이야기를 하나 할까요? 한국유학생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 자동차 스티커 동차 한국유학생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 자동차 불법주차 딱지를 잔뜩 떼이고서는 도망가면 그뿐이지 하고 한국으로 왔답니다. 10년후에 다시 의젓한 교수가 되어서 미국 비행장에 내렸더니, 디딕디딕하더니만 당신 10년전에 딱지값 얼마 얼마 안냈는데, 이자까지 얼마해서, 이것 내고 통과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추방이라고 했답니다. 얼마나 무섰습니까? 우리나라도 이제 그럴 겁니다. 미국의 경찰들이 왱왱왱 하면서 자동차를 뒤쫓아 갑니다. 자동차가 앞에 서면, 경찰들이 내려서 금방 오지 않습니다. 천천히 옵니다. 천천히 오는 이유가 뭐냐? 쫓아가면서 자동차 컴퓨터 센터에다 연락을 합니다. 그 차가 어떤 차량인지, 사고를 저지른 차량인지? 천천히 걸어올 동안에 추적을 다합니다.

    금융실명제가 됐습니다. 몰래 뭉치돈 감추어 둘 수가 없습니다. 장농 밑에 넣기 전에는. 그 다음에 땅을 경기도에서도 사고 경상도에서도 사면, 옛날에는 지적도가 따로 따로 있었기 때문에, 따로 따로 딴 짓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하나로 다 통일되었습니다. 이름 하나면 대면 땅을 어디에 갖고 있고 집을 어디에 갖고 있고 돈 얼마나 예금하고 있고 언제 딱지 떼는지, 이게 다 한꺼번에 나옵니다. 약간 끔직하지요, 그래서 불빛 아래에서는 회개하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게 금방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될려면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우선 그 어려운게 무엇이냐? 전화는 우리나라 부처 중에서 어디서 관리를 하죠? 체신부에서 합니다. 방송은 어디서 관리를 하죠? 공보처에서 합니다. 전화하고 방송하고 합쳐져 있습니다. 합쳐지면 체신부 관할 입니까? 공보처 관할 입니까? 그래서 애매 모호합니다. 없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낮 공보처장관과 체신부 장관과 싸웁니다. 무슨 권한을 갖게다기 보다는, 그거 빼앗기면 부서가 없어지고 예산이 깎이고 목이 달아납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초고속정보망을 만든다면, 전화회사가 지금 깔아놓은 것은 어떻게 됩니까? 망합니다. 방송을 보고 제작하는 모든 것은 다 아날로그 방식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나올 위성방송은 디지탈 방식입니다. 그러면 모든 기계 다 버려야하고 새로 전부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수신하는 것도 다 바꾸어야 합니다. 이거 엄청난 변화입니다. 기존 사업체가 투자한 것을 몽땅 버릴 수는 없는 겁니다. 신형자동차가 나왔다고 해서 여러분 전부 타고다니던 자동차를 없애버리고 그 차를 삽니까? 아닙니다. 털털거릴 때가지 사용하다가 새 차로 바꾸는 식으로,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와 옛날 기술 전환의 손익분기점이 어디인가? 이런 것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아주 복잡합니다.

    그 다음에 그런 것이 가능할려면 여러가지 기술이 많은데, 어떤 것은 훨씬 앞서 발전하고 어떤 것은 한참 쳐져서 발전을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 나라에 위성방송이 오르게 되면 현재로서 9개의 채널이 가능합니다. 이론적으로는 27개의 채널이 가능합니다. 위성방송말고 케이블 텔레비젼이라는 것은 100여개의 채널이 가능합니다. 미국에서는 500개까지 늘인다고 합니다. 그렇게 채널이 많아질 수 있는 기술은 있습니다만, 그 많은 채널을 무슨 프로그램으로 짭니까? 그 만드는 software의 기술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옛날 구닥다리 영화부터 긁어서 하다가 그 다음에 모자라면 뭘 합니까? 미국서 수입해서 하다가, 급하면 아무거나 막 할겁니다. 여러분 비디오 가게 가 보십시오. 볼만한 프로그램 몇 개나 됩니까? 그런데 그게 다 텔레비젼으로 들어온다 생각해보세요. 그것도 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이 좀 조화를 이루어서 규모있게 나타나면 좋은데, 그게 아니고 지지부진하게 옵니다. 화음이 잘 안됩니다. 불협화음입니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가능한 정보화사회가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갈지짜 걸음을 걸으며 우리에게 오고 있습니다.

    정보화 사회가 왔다고 합시다. 뭐가 문제입니까? 우리의 개인비밀(privacy)가 없어집니다. 그다음에 정보라는 것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셋, 넷, 다섯, 여섯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응용하기에 따라서. 만약 데이타 베이스(data base)에 홍기선을 홍기섭으로 잘못 넣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홍기섭이라는 존재가 생겨서 거기에 여러가지 정보가 붙게 됩니다. 홍기섭을 고칠려고 하면 아주 복잡해집니다. 잘못된 정보는, 계속 꼬리를 물고 누적되게 생기게 되고, 눈덩이처럼 커지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오염된 공기가 퍼져나가는 것 같이 오염된 정보는 결국 고치고 바로 잡는데 엄청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생각해봅시다. 아이를 데리고 부페식당엘 갔습니다. 좀 이런 것 이런 것 먹었으면 좋겠는데, 애는 밤낮 뭐만 먹습니까? 아이스크림, 과자, 그런 것만 먹습니다. 여러분 방에 채널이 백개가 갑니다. 하나는 만화, 하나는 스포츠, 하나는 영화, 하나는 신파조 연극, 하나는 음악, 이렇게 좍 가면은 뭐만 볼 것 같습니까? 좀 맛이 없더라도 몸에 균형잡힌 영양가를 섭취해야할텐데, 일부 사람만 빼놓고는 어린아이가 아이스크림만 먹듯이, 맨 그런 것만 볼겁니다. 그래서 계속 그런 것만 보느 사람은 더 무식하게 되고, 정보를 잘 이용하는 사람들은 더 유식해집니다. 사회적으로 어떻게 됩니까? 엄청난 지식의 격차가 생길 겁니다. 정보능력의 격차가 생길 겁니다. 한 떡을 가지고 나누어 먹기 때문에 저 놈이 많이 먹으면 내가 빼앗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등이니 공정방송이니 떠들었지만, 자기 보고 싶은 것 마음대로 보는데 이제 공정방송이 필요없습니다. 여당방송만 계속하고 야당방송만 계속하는 데가 있는데 공정방송이 뭐가 밀요합니까? 실질적으로 자신은 박탈을 당하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이 없어집니다. 있는 사람은 더 부자가 되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 까지 빼앗긴다는 성서의 이야기가 바로 정보사회에서는 생기게 됩니다.

    바보는 바보대로 행복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대로 더 야심을 가질 기회가 주어지고, 그러다보면 우리 온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할 그런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져, 자기 나름대로의 정보세계 안에 함몰해버립니다. 재택근무로 이제 사람끼리 만날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이 프린터물 경동교회에 어떻게 보낸지 아십니까? 써가지고 와서 한 것 아닙니다. 제 컴퓨터로 찍어서 하이텔로 보낸 겁니다. 그러니까 왔다갔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끼리끼리 노는 겁니다.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화좋아하는 사람끼리 놀고, 음담패설 좋아하는사람들은 그런 이야기 하면서 살고, 끼리끼리의 미분화된 세계 속에서 사는 겁니다. 김경재 목사님이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인도 브라만 종교의 가장 중요한 것은 전 우주를 싸고 있는 어떤 인격체, 브라만이다. 우리는 각각 가지고 있는 소우주체이다. 소우체와 전체의 범신적인 우주체사이의 어떤 교호가 브라만이 아트만이요, 아트만이 브라만이요, 이때에 하나의 공동체가 생기고 유대가 생깁니다. 그런데 난 나, 넌 너, 전혀 별다른 세계에서 살 때에, 사람끼리 멱살을 잡고 싸우는 인간적인 것도 필요없고, 서로 이쁘하고 증오할 필요도 없고, 이런 문제가 생기는 위험성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보통사람의 이야기이고, 높은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정보를 콘트롤하는 제일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요쪽 사람들 행복하게 해줄까? 요쪽 사람들 화나게 해줄까? 라는 것을 정보를 조작하면서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게 현대판 big brother가 아니겠습니까? 플라톤이라는 희랍의 철학자가 이상적인 나라를 republic이라고 했고 그런 나라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철인이 통치를 합니다. 그런데 그 철인이, 우성학적으로 바보 같은 사람은 도태시키고, 똑똑한 선남선녀만 시집장가를 가서 우수한 아이들만 낳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거죠. 그런데 맘대로 못하잖아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위에 있는 통치자 철인이 시집장가가게 짝지워주는 그런 방법이 없나? 그래서 독똑한 사람들만 뽑아서 캠프를 차려줍니다. 그 안에서 서로 어울리게 하고, 좀 바보같은 친구는 캠프에 가지 못하게 격리시켰습니다. 그런 것이 현대소설로 나타난 것이 헉슬리의 {Brave New World}라는 소설입니다. 죠지 오웰의 {1984년}도 정보화 사회에서 누가 정보를 조정하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심각한 위험성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년 아니 앞으로 5년 후에 우리 기독교인은 복음으로는 이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할 지를 자주 거론하지 않겠느냐 그런 예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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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성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