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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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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를 들어 올리는 작은 거인, 김경수 박사

    김경수 박사· 서울대 치대 C.C.C. 나사렛형제들, 재미 나사렛형제들 회장

    “C.C.C.는 제 마음의 고향이자 어머니 같은 곳입니다. C.C.C.에서 훈련받은 대로 살고 있을 뿐입니다.”

    30년 가까이 미국에서 살면서 믿음과 실력으로 주님의 비전을 성취해 가고 있는 김경수 박사(59세, 서울대 치대 나사렛형제들, 재미나사렛형제들 회장, 미국 LA 김경수 치과의원 원장). 그는 서울대 치대 졸업 후 인턴과정을 밟던 ’62년, 그 유명한 C.C.C. 입석수련회에 참석, 김준곤 목사님의 강렬한 메시지를 통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했다. 이후 의대생들을 중심으로 한 MS(의료선교회)를 조직, 의료봉사활동도 열심히 펼치며, ’60년대 C.C.C. 부흥운동 역사의 한켠을 지켰다.

    “그 당시 김준곤 목사님은 저희들에게 앞으로 30년 안에 공산권이 무너지니까, 공산권 선교를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자고 하셨죠. 김목사님은 예언자적 선견으로 큰 비전을 우리에게 심어주셨지요.” 그때 비전과 제자화, 섬김의 지도력을 배웠다고 말한다. 한 번은 C.C.C. 회관이 충무로 OB칼라에 있을 때인데, 강용원 간사(미주지부 대표)와 같이 회관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도둑이 들어왔다. 둘 다 왜소한 체격임에도 너나할 것 없이 동시에 “누구냐!?” 고함을 지르며 뛰쳐나갔던 일을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69년 “둘이 결혼하시오.”라는 김준곤 목사님의 한 마디에 노경자 자매(이화여대 나사렛형제들)와 결혼했다. 그리고 3년 일정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미국에 먼저 가 있던 홍정일 장로(C.C.C. 초대회장) 등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순모임을 가졌다. “뭔지도 잘 모르면서도 모이면 공부하고 전도하고, 목사님들 모아 놓고 지도자 세미나도 열고…. 지금 생각해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73년 남가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귀국 계획을 변경해 LA 주정부 타운에서 4개월 동안 일하면서 밤에는 개업을 준비했다.

    그해 11월부터 개업의로 일하다가 2년쯤 지나서는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열과 성의를 다바쳐 환자들을 섬기고 있다. 미국에서는 한 건물 안에 수백명의 의사가 각 분야의 의사들과 더불어 일한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환자를 구름떼처럼, 밀물처럼 보내주실 거라는 마음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는 경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부단히 실력을 쌓았다. “탁월한 섬김, 탁월한 리더, 끊임없는 배움이라는 목표는 C.C.C.에서 배운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보증수표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실력 추구는 교포사회뿐 아니라 미국사회에까지 그의 명성이 알려지게 했다. 환자들도 몰려들었다. 그에게서 치료를 받은 환자 중 멀리 이사를 갔던 한 환자는 비행기를 타고 와 호텔에 며칠씩 머물면서 진료를 받고 돌아가는 등 그의 명성은 미국 치과의사회에서도 이름이 높아갔다. 그때 그는 동료 의사들을 위한 그만의 독특한 섬김법을 생각해냈다. 그를 찾아오는 수많은 환자들을 다른 치과의사들이나 새로 개업하는 한인 치과의사들에게 보내주고, 좋은 진료시간대에는 일부러 진료를 하지 않았다. 독점하지 않고 나누는 삶을 실천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더 많은 환자를 보내주셨다. 물론 골치 아픈 환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가 막히게 고쳐줘 그의 명성과 그리스도의 향기는 더욱 퍼져갔다.

    이제 그의 섬김은 미국사회를 끌어안고 있다. 마약환자들과 홈리스(집 없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참여하고 있고, 치과선교회를 조직, 멕시코와 인도네시아 정글에 치과의원을 개설했다. 키르키즈스탄과 우즈벡키스탄, 남미에는 치과의사들과 함께 단기선교 코스로 가서 치료와 함께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누누히 강조하는 작은 거인 김경수 박사. 그의 가슴에는 ‘하나님께 헌신’, ‘민족에의 헌신’, ‘형제들에의 헌신’의 의식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는 지금, 그만의 방법으로 먼 이국땅에서 사도행전 29장의 역사를 조용히 기록해 가고 있다.

    - 김철영/인터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