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2024년 09월 16일
예수프론트라인

예수칼럼:현대적 고전으로 읽히는 최장기 베스트 셀러!
4영리에 대하여 들어보셨습니까?
양치는소리:인터넷 선교원 후원이사 목사님들의 글모음
비전이야기:우리들의 이야기, 독자들로 부터의 글모음
박광택의 탕자! 탱자!
선교마당:선교사로부터의 편지, 선교지소개 등 선교에 관한 글모음

각종 자료 연결
영원한 명시

교회-단체연결

Vision2000

김준곤 예화모음

박성민의 성서보기

경제전망대

천일웅 변호사 이민법 칼럼

인터넷이모저모




동아일보
전자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미주중앙일보
한국일보
미주한국일보
한겨레신문
라디오서울USA
The New York Times



  •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면 살리라!"

    음의 대화를 주목해 보자.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한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되물으신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율법사가 대답한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율법사는 정답을 말한 것이다.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자만이 살리라!

    여기에 대해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더하신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5~28). 예수님의 말씀은 심오하다. 즉, 정답을 말함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답을 실천하는 자만이 ‘살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방금 율법사가 대답한 말씀이 구약(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전체의 요약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마 22:37~40). 그렇다면 우리는 한 번 이 말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살리라’ 하는 말씀과의 연관성이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부분은 이해가 가지만 이웃을 사랑하라는 부분이 왜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신약에서 처음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구약의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레위기라는 책은 처음 대하기에 그렇게 신나는 책은 아니다. 처음부터 제사 규례를 다룸으로 딱딱하고 엄숙하고, 제사의식 가운데 피를 많이 사용함으로 ‘피비린내 나는(?)’ 책이다.

    더구나 중간에 제사장들이(나답과 아비후) 거룩한 규례를 무시함으로 죽임을 당하고(레 10장),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구분함으로 음식도 가려 먹어야 하고(레 11장), 온갖 피부병에 관한 질병을 다루면서 정함과 부정함을 가리고 있다(레 13~14장). 또한 일년에 한 번 드리는 속죄일도 부정한 모든 것을 속죄하기 위한 것이 목적으로 되어 있다(레 16장).

    이렇게 진행해 가면서 레위기는 그 초점을 점점 윤리적인 문제로 옮겨간다. 그리고 레위기 19장에 오면 그 유명한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라는 성결방식(formula)으로 서두를 장식함으로 19장의 주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레위기에서는 소위 말하는 성(holy)과 속(secular)의 분리를 허용치 않는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한 제사규례에서 한치의 부정함도 허용이 되지 않았듯이 우리의 윤리적인 삶에 있어서도 적당주의는 통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윤리적 삶의 기준이 하나님이 거룩하듯 ‘우리도 거룩해야’하는 높은 기준의 완벽함을 요구하고 계신다. 이러한 가운데 나오는 구절이 바로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이다.

    이웃사랑은 어떠한 것인가?

    그렇다면 레위기 19장의 문맥 속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웃사랑’은 어떠한 것인가? 레위기에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하기 전에 몇 가지의 실례를 들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의 모습들을 소개한다.

    그것은 도적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속이지 말며, 거짓말하지 말며, 이웃을 압제하거나 늑탈하지 말며,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고,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재판할 때 불의를 행치 말고, 가난한 자나 세력있는 자의 편을 들지 말고, 공의로 재판하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이웃을 책선하는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생활 전반에 걸쳐 쉽게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은 부분에서부터 큰 부분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이웃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레 19:11~18).

    즉, 레위기 속에 나와 있는 이웃사랑의 의미는 단순히 감상적이고 추상적이며 플라토닉한 낭만적인 개념으로서의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개념으로서 접근하고 있다.

    이런 삶 속에서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며 그 절정에서 이 모든 것들을 요약하는 개념으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의 구체적인 해석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그 중에서도 두 사람의 해석에 주목해보자.

    첫번째는, 유명한 유대인 랍비 힐렐(Hillel)의 해석이다. 이 구절에 대하여 힐렐은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당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마시오.”라고 풀이했다. 즉, 힐렐은 자신이 속한 사회 일원으로 악한 것을 하지 않는 것,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구성원이 되는 것으로 이웃사랑을 정의했다.

    두번째는, 예수님의 해석이다. 예수님께서는 힐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마 7:12)라고 하시면서 힐렐의 ‘하지 마라’는 소극적인 태도보다는 ‘하라’는 적극적인 태도를 강조하심으로 이웃사랑의 행함(doing)의 실천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신다. 사회에 단순히 피해를 입히지 않는 그런 모습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유익을 낳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대하는 것을 기준’으로(네 몸과 같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하라는 말씀으로 이웃사랑의 정도를 가르쳐 주시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이웃사랑에 대한 깊이와 강도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실례는 바로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이웃으로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의 가장 큰 본보기로 우리에게 주신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결국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자들인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자.

    첫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레위기의 말씀은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간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과 요구의 항목 중 하나이다.

    둘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 명령은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또는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수동적인 명령이 아니라 우리가 이웃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나 자신에게 하듯 사랑의 표현을 ‘행함’으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이웃사랑에 대한 실천의 정수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도 적어도 ‘나 자신에게’ 하듯 만큼이라도 사랑의 표현을 행하며 살 것을 요구하신다.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다가와 있는 이때를 지내며 오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이웃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신다. 우리가 현재 속한 사회는 경제 난국 외에도 도덕불감증, 질서 무관심 등으로 점점 혼탁해지고 있다. 이러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한파와 같은 어려움에 대해 우리의 마음을 더욱 더 썰렁하게 만드는 것은 기독교인들조차 이런 사회 질서를 바로 잡는데 별 맥을 못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어느덧 우리 마음과 의식의 뿌리에 ‘이웃사랑’에 대해 생각은 하고, 말로는 그래야겠다고 다짐 하지만 실천적 무감각이 습관화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한번 각자 도전해 보아야겠다.

    앞에서 율법사와 예수님의 대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기억하여야 한다. 정답을 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 기독교인들의 역할과 거룩한 삶의 모습을 다시 한번 찾아 보아야 한다는 것을….

    김윤희 교수/ 이화여대, 웨스턴 신학교,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졸업

    (Ph.D.), 횃불 트리니티 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 김윤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