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의 작은 예수 되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88년) 평택에서 2년 동안 보육원 보육교사로 생활한 뒤에 지금의 남편(송주완 목사)과 결혼하여, 원주의 시골마을에 ‘작은예수 공동체’를 설립했다. 8년 전 첫째 아이 연항이를 낳고 한 달 만에 70세 되신 할머니 한 분이 식구가 된 후로 우리집을 거쳐간 사람들은 20여 명이 넘는다.
집안 형편이 나아져 다시 자식집으로 간 할아버지, 지병이 악화되어 요양원으로 간 아저씨, 나이 들어 인생의 길을 마치고 주님께로 가신 분들, 남편의 구타로 잠시 피해 있다가 돌아간 아줌마, 성격을 못 맞춰서 다시 떠돌이로 집을 떠난 사람들도 있다.
현재 우리집에는 열한 분이 함께 산다. 50세의 무기력증 아저씨, 65세에 중풍으로 한 쪽이 마비되었지만 키도 크고 잘 생긴 아저씨, 알콜 중독증세가 가끔씩 나타나 밤낮없이 술을 마시다가도 갑자기 정신을 차려 집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농사를 돕는 70세 할아버지.
간질로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발작을 일으키는 뚱뚱이 아줌마, 치매 걸려 똥오줌 싸면서 큰소리 치는 90세 할머니 두 분, 365일 밥만 먹으면 지팡이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못생긴 할아버지, 이렇게 우리 식구들은 그리 사랑스럽지 못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똥 냄새, 오줌 냄새를 맡으며 함께 먹고 산다.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울고 소리지르면서 싸우기도 하면서….
사람들이 내게 “왜 그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다.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또 사람들은 가끔 “어떨 때 가장 힘드냐?”고 묻는다. 그건 내 자신과의 싸움이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우리 식구들(연항, 민주, 민경, 민제, 그리고 몇 달 후 태어날 다섯째)끼리 어디 가서 한 달 만 살다 오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날마다 똑같은 일- 밥 하고, 빨래 하고, 농사일 돕고- 과 눈 뜨면 보는 똑같은 사람들. 그러나 내가 늙어 내 자식들 중 하나가 이 땅을 지키고 이 일을 계속해 주었으면 하고 기도한다. 또 내 뼈가 이곳에 묻히게 되는 날까지 나를 지키시고 위로하시고 힘 주실 주님을 바라봄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한다.
이명남/ ‘작은예수 공동체’ 송주완 목사 사모 인천 C.C.C. 나사렛형제들
- 이명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