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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일이든지 주께 하듯 하십시오!”

    업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가장 신경이 쓰여지는 문제는 역시 결혼과 직장이다. 그런데 막상 이런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지금껏 열심히 주님을 믿고 섬겼던 신앙이 별로 도움도 안되고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믿지 않는 친구들과 똑같이 걱정하고 별로 다르지 않은 동기나 기준에 직업을 택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성경적인 직업관이 필요하다.

    성경적인 직업관
    기본적으로 세상에서의 직업을 하나님의 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관리를 사람에게 위탁하셨다(창 1:28). 그렇기 때문에 그 일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을 통한 그의 섭리를 믿는 성도라면 일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그 당시 노예들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고 했는데(골 3:23)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런 직업관을 가진 성도들에게 직업의 귀천(貴賤)이 없다. 세상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엄연히 존재한다. 과거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순서로 귀천의 순서를 매긴데 비해 요즈음은 어떤 직업이든지 돈과 명예와 인기를 안겨 주면 귀한 직업이고 그렇지 않으면 천한 직업이 된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주께 하듯 임하는 성도들에게 모든 일은 주의 일이며 귀한 일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천하게 인정되는 육체 노동은 모든 일의 기본으로서 의도적으로라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목수 일을 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직업의 성속(聖俗)의 차별 또한 없어야 한다. 루터의 만인제사장론 이후에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라고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직업에 대한 성속의 차별은 교회 안에 여전히 존재한다. 교회 내에서 영적인 가치로 순서를 매긴다면 오지에 나가서 수고하는 선교사가 되는 것이 가장 거룩한 일이 되고, 그 다음으로 목회자들이며 나머지 평신도들은 거룩지 못한 직업에 종사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주께 하듯 임하는 성도들에게 모든 일은 주의 일이며 거룩한 일이 된다. 성직의 여부는 일의 종류에 있는 게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의 자세나 동기에 있다. 청소를 하면서도 주님이 맡기셨다는 확신만 있으면아주 거룩한 일이 된다.

    직업에 선악(善惡)의 구별은 있어야 한다. 직업에 귀천, 성속의 차별이 없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 가능한 것은 아니다. 원래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일을 맡겼을 때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되었다. 그런데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일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축복이요, 특권으로만 생각했던 일에 고통이 따르게 되었고, 하나님이 원하고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이 점차 변질되어 버렸다.
    그 결과로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사악한 일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직업에 선악의 구별은 분명히 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이름을 낼 수 있는 일이라도 하나님이 원치 않으며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그것은 주께 하듯 할 수 없으며 그런 일은 주의 일이 될 수 없다.

    물론 선악을 결정하는 기준이 애매한 경우에 영적인 선배나 공동체 내에서의 의논이 필요하지만 선악을 구별하는 원칙은 분명하다. 일단 악하게 느껴지는 직업을 제외시킨 후에는 어떤 직업이든지 주께 하듯 해야 한다. 그러나 성도들이 그 일을 아무리 하나님의 일로 인정해도 자신이 그 일에 헌신하지 못하는 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은사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 선택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원리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택하는 것이다. 내 경우 엔지니어를 그만 두고 목사가 된 것은 순전히 이 문제 때문이었다. 엔지니어 일이 얼마든지 주님의 일이 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이 ‘나의 일’이 되지 못했으므로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현재 목사로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정말 하나님의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 목사이고, 설교하는 일이 주 업무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각종 은사와 능력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주께 하듯 할 수 있는 것이다.

    은사와 능력을 살리는 일을 한다. 은사와 능력을 살리는 일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때론 그렇지 않은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주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자기 부인의 자세로 임할 필요도 있다. 때로 하나님은 그런 일을 훈련으로 맡겨 주실 수도 있다. 요셉의 경우가 아주 좋은 예로, 요셉이 바로의 총리가 된 것은 물론 하나님이 주신 꿈의 실현이면서 일생 동안의 고난과 훈련에 대한 보상이었다.
    과거에 은사와 능력을 고려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동양에서는 천직의 관념이 있었고 서양에는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직업이 곧 소명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루터 같은 사람도 직업을 하나님의 일로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해진 직업이 그 사람에게 맡겨진 소명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은사나 능력을 고려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직업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적용이 된다. 특히 요즈음처럼 변화의 시대에 천직이나 현재의 직업이 곧 소명이라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며 하나님의 섭리를 오해하는 것이 된다.

    직업이란 현재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위임 직분이므로 현재 세상에서 필요가 없는 직업은 없어져야 하며 새롭게 수요가 생기는 직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것과 구별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적응인 셈이다. 직업은 그 열매로 부와 명예가 따르게 마련이다. 이것 자체는 결코 죄악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지 주께 하듯 할 때 주님이 주시는 보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차 동기가 될 때는 문제가 생긴다. 부와 명예를 목적으로 직업에 임하게 될 때 그 직업은 점차 하나님의 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여기서 사도 바울의 고백이 아름답게 들린다.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는데(빌 3:7~8) 바로 이런 태도가 성도들에게 필요하다. 그러므로 때로는 직업에서의 실패나 실직은 영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직업 자체가 이렇듯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은 고기를 못 잡아서 낙심한 베드로에게 고기를 잡게 하실 만큼 고기 잡는 일 자체의 중요성을 인정하시지만 바로 그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부르셨다(눅 5:1~10). 그것은 어부라는 직업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고기 잡는 일은 현재 이 세상에서 이웃을 사랑하는데 사용할 수 있지만 그들의 영생에 대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성도라면 이웃들의 영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때문에 베드로처럼 고기 잡는 일을 그만 두는 사람도 있지만 고기를 잡으면서 그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이 영혼을 구하는 일을 위해서 굳이 고기 잡는 일을 그만 둘 필요가 없고 오히려 직업의 현장이 더 유리하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장소로 직장보다 더 좋은 데가 없다. 물론 직장을 전도를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직장을 전도의 현장으로 이해하는 것은 직업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에게 당연히 필요한 자세이다.

    방선기· 이랜드 사목, 직장사역연구소 소장

    - 방선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