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리더십 스타일은?
리더십이란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사회적 영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리더십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 지도자, 추종자, 환경, 결과들이다. 지도자의 스타일은 그 결과로 결정한다.
토마스 제퍼슨은 리더십의 스타일을 분류하기를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지도자들이 있다. 사람들을 신뢰하는 지도자와 사람들을 두려워 하는 지도자이다.”라고 했다. 사람을 신뢰하는 지도자는 촉매자(catalyst)나 격려자가 되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독재자나 모든 사람을 다 피하려는 소극적 지도자가 된다고 한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분류하면 다음의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촉매자: 효과적인 스타일
촉매자 스타일의 리더십은 모든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사역에 참여하고, 사역의 목표도 보다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스타일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은 한 사람으로서, 전문가로서의 안정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는 마치 촉매가 화학적 변화는 촉진시키면서도 자기 자신은 변화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역의 목표를 이루는 면과 성도들의 필요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 스타일의 강점이고, 이러한 리더는 훨씬 광범위한 분야에서 훈련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분야를 다 완벽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과로로 쓰러질 가능성이 가장 많다. 완벽주의자들이 대개 여기에 속하며 자기의 성공에 대한 욕구를 하나님의 목표로 잘못 알 수가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을 할 때가 있다.
성경에서는 느헤미야가 여기에 속하며, 어려움 속에서 예루살렘 백성들을 동원해서 마침내 성벽을 완성해 낸다. 그는 계속적으로 목표를 향해 정진해 나갔고, 백성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읽을 수 있다. 그는 처음에 목표를 가지고 일을 시작할 때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그 위험을 무릅쓰고 왕에게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허락받는다. 또한 시작에서부터 성벽이 완성될 때까지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수행해 나갔다. 세번 째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적들과 교제하기를 거부했다. 우선순위가 뚜렷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또 다른 리더들이 되게 했다. 그는 팀 리더였다. 이 모든 일을 이루었을 때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들과 그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좋은 촉매자로서의 리더는 항상 이 기쁨의 요소를 빼놓지 않는다.
이 스타일의 리더십이 가장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성도들 중에서 동참자들이 있어야 하며 주변 여건도 협조적인 분위기여야 한다. 또한 보다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서 일하게 됨으로 성도들의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사령관: 효율적인 스타일
리더가 무엇이 목표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의 범위를 명확하게 알기 때문에 효율적인 조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스타일의 리더는 사람보다는 사역의 목표에, 관계보다는 결과를 우선한다. 그리고 촉매자 스타일보다 비교적 근시안적이어서 장기적인 목표보다는 단기적인 목표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또한 많은 경우에 스트레스와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 스타일의 리더들은 불확실성이 주는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하고 모든 면이 정돈되기를 원한다. 목표에 대하여 사람들을 보지 않고 돌진하는 경향이 있고 결과에 대하여 무책임한 경향도 나온다. 사사들이 사령관 스타일의 성경적 리더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위기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다시 모아서 군대조직으로 만들고 외부적인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어려움에 처한 한 조직의 구원자로서의 역할이다. 그러나 그 다음의 후계자나 다른 지도자들을 계발하지 못해서 그들의 성공은 단기적인 것이었다.
초신자가 많은 개척교회나 교육수준이 낮은 성도가 주류를 이루는 교회에 적합하고 믿을 만한 충성된 추종자가 필요하다. 또한 주변 여건이 불안정할 때나 반대로 너무 정체되어 있을 때에 적합하다. 특히 성도들이 위험 부담이나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분위기에서는 이 스타일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격려자: 동정적 스타일
이 스타일의 리더는 인간관계를 조직의 목표보다 더욱 중요시 한다. 목표를 향해 성도들을 몰아가기 보다는 성도들과 악수를 하고, 등을 두드려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을 우선한다. 성도들의 만족도를 가장 중요시하며 사역의 목표에 대하여는 리더가 지시하거나 방향타를 잡는 일이 없다. 그러나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성도들이 자기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어서 여론을 따라서 쉽게 흔들리고 떠밀려 가는 경향이 있다.
성경적 모델은 바나바를 들 수 있다. 바나바란 이름 자체가 격려자란 의미가 있다. 그는 계속적으로 유대파와 헬라파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했다. 그는 바울이 회심한 후, 그리스도인과 관계를 가지려고 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의심했으나 바나바가 그를 도왔다. 그는 안디옥교회를 도왔으며 나중에 유대 지방에 기근이 들었을 때 연보를 모아서 그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또한 요한 마가가 바울의 1차 선교여행 때 따라 나섰다가 중간에 돌아가는 일이 있었다. 이후 2차 전도여행에서 바울은 요한 마가를 데려가기를 꺼려했으나, 바나바는 데리고 가기를 원했다. 심지어는 이 일 때문에 바울과 헤어진다. 그 후 마가는 전도자로서 인정을 받고 바울도 그를 다시 받아들인다. 바나바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바나바는 계속적으로 자기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왔고 관대함을 보였다. 마가 문제로 바울과 이견이 생겼을 때도 다투지 않고 선교팀을 두 개로 만들어서 서로에게 유익한 길을 택한다.
모든 것이 다 정돈 되어 있는 환경, 즉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해서 시간이나 관심이 최소화된 환경을 말한다. 또한 성도들이 소속감과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가장 교화적인 유형이다. 그러나 이런 면이 지나치면 성도들은 영적인 어린아이로만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은둔자: 부담스러운 스타일
이 스타일의 리더는 사람이나 목표에 대하여 두렵고 불안하다. 사람과의 관계도 포기하고 교회의 목표도 교회 안에서 스스로 일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어 버린다. 천성적으로 내성적인 사람이거나 성도들의 공격 때문에 뒤로 물러서든지, 모든 일을 미루고, 숨고, 불안정을 보인다.
이러한 면을 가진 성경의 지도자는 사울을 들 수 있다. 그는 외모가 멋진 지도자였으나 결국 전형적인 은둔자 스타일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가 하지 말아야 할 제사를 주관한 것이나 아말렉을 물리친 후에 그들의 전리품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린다. 그 이유는 그가 백성들을 두려워함이라고 말한다(삼상 15:24∼25). 리더가 자기의 추종자들의 의견에 계속 끌려 다닌 것이다. 그는 오직 다윗의 성공을 질투하여 그를 미워하고 죽이려 한 것밖에 하는 일이 없게 된다. 또한 블레셋을 두려워 하여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 간다. 그는 결국 전쟁에 지고 자결을 한다. 그는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나라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어 나가는 데에 실패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세워 나가는 면에서도 실패했다.
이 스타일은 성도들과 갈등이 첨예화되어 있을 때 의사결정을 미루는 면에서 좋다. 시간을 벌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새로운 해결점을 모색하도록 한다. 고학력자나 사업가가 많이 있는 교회에서는 그들 위에서 존재하는 리더를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거나, 환경적으로도 리더가 필요 없는 경우에 이런 리더십 스타일이 효과적이다. 리더는 그저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실제로 그들을 이끌어 가지는 않는다.
위의 모델들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란 없다. 어떤 환경에 어떤 조직원들이 있는가에 따라서 스타일이 정해지고 거기에 리더 스스로가 변화되어야 한다.
목회자들이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하게 되면 점차로 교회는 성장하게 된다. 일정한 수준으로 성장하면 리더십 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 사령관형이었던 목회자는 일의 책임을 성도들에게 분담시켜야 하고 의사결정도 여러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스스로 리더십 스타일을 바꾸지 아니하면 교회가 일정한 숫자를 넘지 못하고 정체되거나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교회의 외부적 환경이 변화될 때, 교회 내부의 사정이 변화할 때 외부적으로 불확실성이 많아질수록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고, 내부적으로 성도들의 여러 가지 면에서의 분포가 달라질 때마다 리더십의 스타일은 조정되어야 한다.
채규현 박사/ 서울대 및 뉴욕주립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대원 졸업,
개혁신학교 실천신학 교수
- 채규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