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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난의 현재적 의미 / 특별간증



    -기도의 두레박으로 퍼올린 영광과 감사-


    이 민족의 심장인 C.C.C. 대학생들을 위해 기도로 성원해 주시는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 장로의 간증을 싣는다. 고난의 터널을 함께 지나고 있는 C.C.C. 편지 독자들에게 큰 격려가 되길 바란다. 또한 대통령 내외분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이희호 여사 / 이화여대 문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과 졸업,
    미국 스카릿대학교(Scarritt College) 사회학 석사, 미국 교회 여성
    연합회 '용감한 여성상(Valiant Women Award)' 수상, 일본 아오야마
    가꾸인대학 명예 교육학 박사, '더불어 선교회' 이사장, 대통령 영부인



    는 살면서 여러 가지로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난과 크리스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거듭된 정치적 역경을 겪으면서 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한국은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를 통해 50년 만에 여·야간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제 남편이 대통령 입후보 4수 만에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민주화와 정의에 목말라 몸부림치던 민중의 승리였고,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작품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올해 사순절과 고난주간, 그리고 부활절을 청와대에서 맞으면서 주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모습을 깊이 묵상하고 그의 교훈과 지도를 또 다시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처참했던 고난의 십자가와 부활을 생각했습니다.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고난은 세상의 철학과는 다른 특색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기독교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대속적인 고난’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저 팔레스타인의 한 모퉁이 음침한 해골 골짜기에서 일어난 그 십자가 사건은 모든 사람들의 오해에 둘러싸인, 심지어는 사랑하는 열두 제자에게까지도 버림을 받은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영생의 생명력이, 약속된 승리의 노래가 멸시와 조롱과 고통 속에 숨어 있던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성서적으로 고찰해 보면 우리들의 고난은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과 직결되어 있으며, 고난이 죄의 대가만이 아닌, 오히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전주곡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저의 체험이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를 드러내는 도구로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으며 기독계 계통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험로가 있었습니다. 여학교를 졸업했을 때는 모친의 사망으로, 전문학교 때는 제2차 세계대전시 교육비상조치로, 대학을 마치고는 비극적인 한국의 6.25 동란으로 진학을 중단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굴절된 과정을 겪으면서도 진학의 길을 찾으며 늘 하나님께 저의 길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저는 1953년에 도미한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 친구가 저를 ‘크로(Crowe)’목사님께 소개하여 1954년에 유학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크로(Crowe)’목사는 저를 소개하는 회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었습니다.

    “훈련된 한국인 한 명은 열 명의 미국인 선교사보다 더 많은 일을 합니다. 저는 전세계 선교활동에 이러한 실용적인 접근이 채택되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그 때 6.25사변으로 폐허가 된 한국은 복구작업이 시작된 때였으므로 유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처임을 깨달으며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4년 간의 교육을 마친 후 귀국했습니다.

    장승원 그림1958년 한국으로 돌아오자 곧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 1959년부터 YWCA연합회 총무로 4년 간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62년에 저는 결혼을 했습니다. 주위의 많은 친지를 놀라게 한 결정이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3일 만에 일어난 5.16 군사 쿠데타로 정치규제법에 의해 정치활동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주위의 반대도 무릅쓰고 결혼을 했는데, 저의 결혼생활은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결혼 9일 만에 남편은 반혁명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연행되었습니다. 집에는 노모와 오래 투병해온 시누이, 그리고 전처의 아들 둘이 있었으므로 저의 책임은 컸습니다. 남편은 혐의가 없어 36일 만에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1971년 남편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낙선된 후부터의 수난은 더욱 심한 것이었습니다. 선거 때부터 검은 그림자의 미행과 도청이 끊임없이 우리를 따라다녔고 힘겹게 격동의 역사 속에서 삶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대통령 선거 후 연이은 총선에서는 유세차 이동 중에 당시 여당 소속의원의 트럭이 달려드는 차 사고로 남편은 탈관절을 상해 오늘까지도 불편을 느낍니다.

    1971년 선거시 남편은 이번에 정권 교체가 안되면 영구 집권의 총통제가 된다고 경고하였는데, 남편의 예언은 결국 일년 반이 좀 지나서 그대로 맞아 불행하게도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치료차 일본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귀국예정인 10월 17일, 계엄령 선포로 귀국을 포기하고 일본과 미국을 왕래하면서 민주회복을 위해 힘쓰던 중 1973년 8월 8일 동경 그랜드팔레스호텔(Grand Palace Hotel)에서 납치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 때 저는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를 드리면서 남편의 생사가 확인되기를 바랐습니다. 납치 5일 만인 13일 남편은 초췌한 모습으로 귀가하였습니다. 남편은 방에 들어오자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했다.”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을 죽음 직전에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어려움에 처하면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 늘 저에게 연결되어 있음을 체험하면서 감사의 마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남편이 5년형을 받고 옥살이를 하게 된 당시에도 우리 구속자 가족들은 감사의 마음으로 찬송과 기도로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그 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씨가 부하의 총탄에 쓰러져 유신체제가 종말을 맞기까지, 남편을 비롯하여 민주의 역군들이 당해야 했던 그 부당한 처우와 고통의 세월들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1980년 5월 17일 밤 11시 40분, 우리와 가까웠던 많은 분들이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연행되어가고 18일 광주에서는 비참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전국적으로 계엄령이 전개되고, 광주에서는 죄없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나라의 민주화와 인권의 회복을 위해 힘쓰던 남편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친지와 비서들, 형제와 아들까지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하는 왜곡된 역사가 다시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1년 동안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연금생활을 하면서, 그 공포의 유예된 시간 속에서 의지할 분이라곤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 칠흑같은 역사의 어둠 속에서 어째서 이같은 고통이 거듭 되는가를 깊이 생각하면서 기도와 찬송과 성경을 통해서 해답을 얻으려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때로는 금식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절망하기도 하면서 신·구약 성경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에게 던져진 이 고난의 수수께끼의 해답을 성경을 통해 얻기 시작했습니다.

    성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종들의 삶을 보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난의 삶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예레미야 선지자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이 불러 세우시고, 하나님의 희망에 따라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백성은 그가 전하는 말씀에 반항하였습니다. 이런 이중의 고통 때문에 예레미야는 거의 망가질 지경에 이르렀고, 곤경에 처한 자기의 아픈 마음을 자주 하나님께 큰 소리로 털어놓았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아무리 시비를 걸어도 그 때마다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니다. 어찌하여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나쁜 자들이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렘 12:1)

    그렇다면 기독교인으로서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고난에의 참여입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을 보면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셨습니다. 악한 시대에는 고난이 모든 의로운 자들의 올바른 운명, 불가피한 운명이 됨을 깨달았습니다. 믿는 자, 바르게 사는 자들은 고난받는 공동체에 기꺼이 동참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고난은 또한 인과응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초기 신앙인 신명기에 보면 고난은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욥기에서는 다릅니다.

    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순종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했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이다”(욥 1:2). 욥은 처음에는 더러 불평하기도 하였지만, 28장 28절 말씀에 이르러서는 지혜서의 최고봉을 말합니다.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고 굳은 신앙을 고백합니다. 저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악한 시대에 있어서의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하는 길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사형선고를 받은 남편을 살려달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시절 제가 믿고 의지했던 말씀은 이사야서 41장 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멘! 아멘!을 눈물 속에서 부르짖으면서 새 힘을 얻곤 했습니다.

    또한 로마서 8장 18절 말씀도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작가이면서 독실한 크리스천인 미우라아야꼬(三浦綾子)의 작품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길은 여기에’, ‘빛과 사랑을 찾아서’, ‘살며 생각하며’ 등입니다. 사람들은 고난과 역경이 거듭되면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죽음의 파멸로 가든지 아니면 고난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기도하게 하시고 회개하고 겸손하게 하는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저의 생은 하나님의 사랑의 줄로 연결되어 있음을 체험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세계 명국의 사람들을 감동시켜 남편을 사형선고에서 건져 내주신 하나님. 믿는 많은 형제들의 기도와 성원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남편은 대통령으로 3번째 입후보하여 실패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사지에서 살려주신 하나님의 뜻이 남편을 꼭 들어 쓰시기 위함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자 저는 잠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마지막 기회인 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나이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정계를 은퇴하였으며,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영국 캠브리지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우리 인간의 계획과는 달랐습니다. 늙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 이삭을 허락하셨듯이, 한국도 IMF라는 비상시국에 하나님께서 남편을 들어 쓰시기 위해 예비해 놓은 자리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였습니다.

    남편과 저는 고난을 통해서 저희들을 연단시키시고, 깨닫게 하시고, 드디어는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이 땅에 그의 나라가 하루 속히 도래하기 위한 전주곡으로 작은 힘이나마 최선을 다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오늘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고난을 통해 얻어진 영광이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C.C.C.편지 애독자 여러분! 고난의 문제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질문인 것입니다. 고난의 현재적 의미는, 부활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서 사는 확신의 삶,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리의 사건만이 우리들에게 그 해답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그 뜻에 따라 믿는자가 어떤 삶을 사는가를 통해서 항상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서 제 일생을 바쳐 정말 그대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작은 선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지만 아직 미약합니다. 남은 여생을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그 큰 은혜와 축복의 만분의 일이라도 제가 갚으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 감사함을 하나님께 보답해드리기 위해서라도 제 일생을 바쳐 선교사업에 힘쓰고자 합니다. 한국과 세계를 위해 늘 기도와 성원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이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