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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가 막히십니까?"

    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이는 주님의 명령으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다. 호흡을 멈추면 순간도 살 수가 없듯이 하나님을 의뢰하는 표인 기도가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이 말씀은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6)는 말씀과도 연관이 있는 것이다.

    신앙 생활을 하면 할수록 이전에는 기도의 영역에서 제외시켜 놓았던 사소한 일, 큰 일 가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렇게 절감하는 만큼 기도가 쉽게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아는 분 가운데 시간이 아까워서 1시간이라도 덜 자고 깨어 기도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었던 분이있다. 그런데 막상 기도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본인도 어느 때보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더 기도가 되지 않아서 힘들어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이에 따른 대책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Ⅰ. 기도의 대상에 대해서 잘 모를 때

    누구에게 이야기 하는지 그 대상에 대해서 잘 모르고, 인식이 없을 때 우리는 말을 함부로 하기가 쉽다. 그런 대화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귀찮게 여길 수도 있다.

    이런 식의 기도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하나의 형식적인 기도이지 기도에 대한 진지함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기도는 머지않아 시들해지고 만다. 또 막연하게 하나님을 공경하기는 하는데 너무 거룩한 분으로 가까이 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될 때, 자신의 속사정을 털어 놓는 진실한 기도는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끄러운 사소한 일에는 관심도 없으시고 지극히 거룩하고 영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또 어떤 문제는 자신이 직면한 문제가 너무 커서 하나님도 쉽게 들어주실 수 없을 것이란 생각 때문에 별 기대하지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엄격히 구분해 놓으므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영역에서는 기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우리 기도의 대상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제시되어진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 경험을 통해 계속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미건조했던 기도도 누구에게 드려지는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게 되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Ⅱ. 기도의 의미를 잘 모를 때

    기도는 기독교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교도들에게도 있다. 이교도들의 기도는 사람이 자신들의 정성으로 신들을 감동시켜 소원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이런 옛 습관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기도는 자칫 하나님께 감명을 줄 성질의 것을 낳기 위한 영혼의 노력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노력과 정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더 이상 기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런 유의 기도를 우리는 가인의 제사(창4:5)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기도하면서도 상당히 염려하며 불안해 한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간구는 무시하고 오히려 당신의 원하시는 대로 처리하실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깊이 있는 기도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기도 응답의 때와 방법을 맡겨도 위험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오히려 우리 자신의 소원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선하고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평안 가운데 더 깊은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로 기도했는데도 아무런 느낌도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깨닫지 못할 때(시 22:2), 하나님이 숨어 계시는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은 바로 그런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생각 속에 짜맞추는 잘못을 서서히 제거시켜 나가시면서 더 온전하신 당신의 지혜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기도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을 설득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이신 하나님의 더 온전하고 선하신 뜻을 우리에게 이해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Ⅲ. 죄로 인하여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자신을 숨기려고 한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첫 번째 보인 반응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피하여 숨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죄된 본성으로는 아무리 스스로 의지를 새롭게 한다 하더라도 어려운 것이다. 로마서 3장 11절에 보면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라고 하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스스로 기도할 수 없고 성령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롬 8:26∼27).

    기도와 관계된 몇 가지 죄의 목록은, 첫째, 교만: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술이 막히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바로 알게 되면서부터 기도는 시작된다(잠 18:12). 둘째, 게으름: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며 소원이 있다 하더라도 육신이 게을러서 기도가 자꾸 막힐 수 있다(잠 13:4). 이런 때에는 주변의 도움(합심 기도, 짝기도)을 받으면서 경건의 연습을 할 수 있다. 셋째, 고백하지 않은 죄: 이럴 경우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며 기도에 시들해지게 된다. 문제가 더 확산되기 전에 죄를 바로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다(시 66:18). 넷째, 정욕으로 구함: 때로 우리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잘 모르고 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만 들어주신다는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약 4:2,3).

    Ⅳ. 사단의 방해로 인하여

    사단은 성도의 기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꾸 기도 시간을 미루게 하거나 다른 활동으로 대체하게 만들며, 기도 시간을 짧게 단축하도록 유혹한다. 그리고 쓸데없는 잡념에 사로잡히게 하거나 불신의 마음을 심어 주어서 힘 없이 두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게 한다. 이렇게 되면 기도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불안정한 시간이 되어버리고 무의미한 시간처럼 여겨지게 된다. 이럴 때 자칫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집중시키므로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게 기도하는 한, 깊이 있는 집중된 기도는 어렵다. 우리의 씨름의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우리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며 처한 위치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자신을 의탁하게 될 때 성령의 도움으로 비로소 이런 시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첫째, 너무 바쁘고 피곤하게 한다. 많은 현대인들이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없다 하더라도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열 일 제쳐놓고 시간을 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면 참으로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우리보다 더 크고 무거운 사명 가운데서도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던 예수님을 따라 많은 신앙의 위인들은 무엇보다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다. 마틴 루터는 “나는 오늘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러므로 3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고는 그것들을 모두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모든 이차적인 일들을 할 시간을 주셨다면 일차적인 의무를 수행할 시간도 그만큼 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으면 없을수록 우리의 생활 속에서 기도의 부분들을 넓혀야 한다.”라고 하였다.

    둘째,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채 기도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속삭인다. 기도하고 싶다고 느껴질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그러나 처음부터 완전한 기도와 자신의 동기가 순수해질 때까지 위선적인 기도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은 기도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문제는 처음부터 완전히 해결하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기도하면서 해결되어져 가는 것이다. 올바른 기도를 하려고 애쓰지 말고 단지 하나님과 진실되게 이야기 하라.

    아마도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밥을 한 두끼 굶을 수는 있어도 계속 해서 대화 하지 않고는 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죄에 대해 중형일수록 독방에 감금하는 것은 더한 형벌인 것이다. 얼마 전 타계한 테레사 수녀에게 있어서도 가장 큰 고통은 굶주림이나 희생이 아니라 외로움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로 인하여 막혔던 당신과의 대화의 창구를 열어 주셨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은혜이고 특권이다.

    최호영 간사/ 합동신학대학원 졸업, 한국대학생선교회 대구·경북지구 대표

    - 최호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