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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미꽃 향기로운 5월의 편지

    미꽃 향기가 만발한 계절의 여왕인 5월이 찾아왔습니다. 어머니! 저는 꽃피는 봄이 되면 어머니의 소녀 같은 마음이 제일 먼저 생각납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요. 문에 창호지를 바르면서 손잡이 근처에 예쁜 꽃잎을 집어 넣으셨던 것 생각나세요? 우리 남매들은 그것이 신기하고 예뻐서 몇 번씩이나 문을 열고 닫 았었지요. 창호지 속에 들어 있는 꽃잎을 보며, 어머니 속에 간직하고 있는 순수하고 깨끗한 소녀 같은 마음을 엿볼 수 있었고, 처음으로 어머니가 어머니를 넘어 여자임을 인식할 수 있었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이 계절에 손을 잡고 어디라도 가고 싶습니다. 요사이는 부쩍 늙으시는 것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어머니를 추억해보면, 제일 많이 생각나는 것이 새벽마다 자식들을 위해 드리는 기도 소리 입니다. 나라와 민족, 그리고 다섯 남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며 기도하시던 모습은 저희 모두의 신앙의 귀감이었습니다. 모든 남매가 믿음으로 살게 된 것도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 고, 제가 C.C.C. 간사의 길을 가게 된 것도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제가 사역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사역에 당장 큰 부흥의 조짐이 보이지 않아 초조해 할 때 마다, 요나처럼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뒤에서 기도하시는 어머니를 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역자로서 미숙하고 실수투성이의 제가 13년의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같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유명하시죠. C.C.C.에서는 제일 긴 것이 김준곤 목사님의 설교라고 하는데, 우리 집안에서는 어머니의 기도가 제일 길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할 겁니다. 명절 때마다 대표기도를 드리는 어머니의 기도에 조카들은 주리를 틀죠. 너무나 길기 때문에요. 그리고 가끔씩은 아버지께서 “너희 엄마,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났다면 변호사는 했을 것이다. 암 하 구말구!”라고 놀려대시죠. 그러나 저는 어머니의 기도가 누구의 기도보다도 좋고, 정감이 넘칩니다. 그리고 평생 소원처럼 드리셨던 어머니의 기도 구절 하나 하나를 기억한답니다.

    1988년인가, 나사렛형제들 수련회에 다녀오시고 나서,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 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당신들의 온 몸을 온전히 바치신 것처럼….’ 가사를 빼곡히 적어 놓으신 어머 니의 노트를 보고, “엄마! 이게 뭐예요?” 라고 물었을 때, “기순아! 그렇게 살고 싶은데 잘 안된다.”라고 대답하시며 겸연쩍어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아니예요. 어머 니! 어머니는 위대한 어떤 사역자보다 산 신앙이셨고, 우리 모두의 귀감이셨습니다.

    또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으면 평생 들고 다니시던 책상이 생각납니다. 성경도 그냥 읽으시 면 잊어버리신다고 언제나 노트에 쓰시면서 읽으셨죠. 그뿐 아니라 일기를 쓰시던 것도 기 억나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께서 열심히 성경 쓰시다가 돋보기 너머로 바라보시던 모습을 기억한답니다. 저는 그 모습이 자랑스러웠어요. 무언가 열심히 하시는 어머니를 우리 남매들 이 닮았나봅니다. 물론 어머니의 성실함과 근면함을 반도 쫓아가지 못하지만요.

    어머니! 제가 어머니의 성경책(지금의 개역성경이 아닌 고어체로 된 성경으로 어머니가 처 녀 때 외삼촌으로부터 선물받았음.)과 노트, 일기책을 보관하고 있는 거 아세요? 어머니를 평생 본받고 싶어서 제가 보관하고 있는 것이예요. 어머니의 신앙과 성실하심, 근면하심을 늘 기억할께요.

    어머니하고 보냈던 가장 추억에 남는 일은 종일 비를 맞으며 다녔던 목포에서의 1박 2일의 여행입니다. 목포 옆에 자리한 몽탄면! 어머니께서 1.4후퇴 때 군함으로 피난 내려와 처음으 로 자리잡은 곳! 외할머니와 동생을 잃고 추운 마음으로 가족들이 정착한 곳! 그 날 따라 종일 내리는 비는 어머니와 저를 처마 끝으로 피하게 만들었고, 그 모습은 어머니께서 피난 내려왔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같아 어머니 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습니다.

    골목 구석 구석까지, 동네 사람들의 아이들 이름까지 기억하시며 그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 들을 찾아내려는 어머니의 눈빛은 포효하는 호랑이와 같았습니다. 겨우 한 사람을 찾아냈지 만 세월의 무상함을 확인하며 돌아서는 시간이었죠.

    그래도 몽탄면을 찾아갔던 기쁨은 어머니께서 처녀 시절에 다니셨던 교회를 방문한 것이었 습니다. 지금도 마루 바닥에 초라한 시골 교회에 들어서며 저는 어머니께서 외할머니도 잃 고 장녀로 동생들을 돌보아야 하는 피난민으로서 의지할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신앙을 갖게 되었던 간증은 하나님께서 어린 딸에게 내리신 은총이고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열병으로 모두가 죽어가는 그 상황 속에서 먹을 것이 없어 동생들과 함께 울어야 했던 그 어려움 속에서 보호하시고 돌보아주신 분은 하나님이심 을 믿어요.

    어머니! 어디에서나 몇 번을 불러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이제 통일이 되면 아버지, 어머니 손을 잡고 그렇게 가고 싶어하셨던 고향에 가야죠. 제가 모시고 갈께요. 굵게 패인 주름과 거칠어만 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을 때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와요.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세요. 저도 어머니의 신앙을 본받아 열심히 믿음으로 살께요. 정말 어머니께서 평생토록 부탁하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될께요.” 오늘은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꽃 한 다발을 사가지고 가야겠어요.

    이기순/ 합동신학원 졸업, 한국 대학생 선교회 기도부 책임

    - 이기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