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의 예산 심의를 해보셨습니까?
1. 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관찰
"망대를 세우고자 하는 자"의 비유는 우리에게 "비용을 계산하여 보라"는 것을, 또한 "전쟁을 결정하는 왕"의 비유는 우리에게 "전쟁에서 이길 확률 또는 그것을 치루는 데 드는 희생과 비용을 계산하여 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두 비유 모두 비용(재정 또는 재정과 생명)이 많이 드는 프로젝트에 뛰어 드는 것의 위험함과 함께 현실적인 사전 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가르침을 제자도와 연결시키어 생각하며 보면 그러한 삶에 헌신하기 이전에 그러한 삶을 사는데 요구되는 "비용"을 계산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이 비유가 주어진 앞뒤의 문맥을 통해서 분명하듯 제자도의 비용은 26절의 말씀인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하며, 33절의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는 두 말씀을 통해 제시되어 있다.
2. 이 비유를 통해 얻는 교훈
이 두 비유의 가르침을 제자도라는 주제와 연계시키어 두 가지의 두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둘째, 예수의 제자는 예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도에 관계된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그에 따르는 비용을 분명히 발견한 후 그를 좇기 때문에 그분과의 관계가 제일이 되며 그로 인해 다른 모든 관계는 (심지어 가장 우선된다고 생각되며 양보 되어질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관계가 있을 지라도) 우선 순위에서 2순위로 밀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눅 14:26, 27, 33절에서 반복이 되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표현을 주의 깊게 보는 것이 요구된다. 이 표현을 긍정적으로 하자면 비용을 세어보고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져버릴 수 있다는 각오를 한 사람만이 헌신된 제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위의 원리들을 단순한 각도로 바라보면 마치 제자가 되는 것을 억제하고 계시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 보면 이 비유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을 단념시키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헌신된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가"를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은 "변혁"을 일으키는 제자의 사역에 일부만이 헌신된 자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며 온전히 헌신한 자들만을 찾고 계신다는 것이다.
3. 이 비유의 교훈과 우리의 현실
오늘의 두 비유 중에서 특별히 첫번째의 것은 경부 고속철도를 지으며 부실 공사와 미진한 진척으로 인해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비용 때문에 원래의 공사 목표를 수정하며 또한 이미 들여와 "놀고 있는" 고속 열차를 보관하게 만든 우리 정부의 "미흡한" 정책을 생각나게 만든다. 조심스레 계획하며 세밀한 검토와 예산 편성은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절대적으로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배워야 한다. 세상일도 그리한대 하물며 "변혁을 초래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제자의 삶은 더욱 더 그리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성격을 지닌 제자의 삶은 단순히 세상 속의 삶에 업히어진 여가활용 차원의 행위가 될 수 없으며 클럽이나 동아리 같은 것과 같이 취급되어 질 수도 없다. 오직 예수님의 삶 속에서 발견되어 지듯 "예외 없이 모든 것"을 온전하게 헌신 되어진 모습이 요구되어진다. 결국 제자의 삶이 추구하는 "변혁을 초래하는" "엄청난" 목적을 위해 "엄청난" 비용을 세어볼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비유들을 통해 강조되어 있는 그 변혁의 삶의 결과인 영광과 상급의 약속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함께 가르치고 있다. 오히려 영광과 상급을 세어볼 뿐만 아니라 그 것을 얻기 전에 감수하여야 하는 고난과 어려움을 생각하여야 한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 제자도의 예산심의를 한 후에 시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예수의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자들을 향해 그 삶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방법을 이 쌍둥이 비유를 통해 제시하고 계신다. 우리 각자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자. "왜 예수의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였으며 또한 왜 원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곳에서 강조된 감수하여야 될 희생에 대하여 세어 본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