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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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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도 귓전에 맴도는 애원

    리 일행은 8월 2일 12시 55분 김포공항발 중국 북방항공 국제선편으로 심양을 경유하여 중국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당일 18시 5분 연길에 도착하였다. 다시 대절 택시로 도문을 거쳐 H시에 이른 것은 21시가 가까워서였다.

    첫날 밤은 쌓인 피로와 여독으로 교회가 새로 준비한 게스트 룸에서 단잠에 빠졌다. 시차가 한 시간 늦은 그곳에서 다음 날 오전 5시부터 시작된 새벽기도회의 힘찬 찬송 소리에 잠을 깼다. 이른 새벽기도회는 날마다 이어졌다. 사회주의 나라이기에 이곳에 오기 전에 이모 저모로 요주의 사항을 많이 들었고, 특히 공안원들의 감시에 민감하라는 주의를 받았는데 새벽부터 복음성가로 힘차게 합창하는 소리를 들으니 묘한 감회에 쌓였다.

    조선족과 함께 한 열강의 시간들
    9시부터 강의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당초 수강 등록자가 21명이라고 들어서 교재 등을 21명분(63권) 준비했는데 35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좌석을 거의 메웠다. 그들은 100% 조선족이어서 낯설고 귀설기는 하나 우리와 같은 외모였고 강한 억양의 이북 말씨나마 한국말을 쓰고 있어서 외국인 같은 느낌은 거의 없었다. 멀리서 온 수강자들은 교회에서 합숙을 하였으며 중간 중간에 찬송을 합창으로 부를 때는 손바닥이 빨갛도록 손뼉을 치며 목이 터져라 절규했다. 그들은 우리의 강의가 너무나 좋다며 우리더러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와서 계속 가르쳐 줄 수 없겠느냐고 애원했다.

    우리는 수요일 저녁예배에 설교 요청을 받았다. 조선족만 200명 모이는 예배와 한족만 50명이 모이는 예배(통역), 처소교회 등에서 설교했다. 처소교회는 자전거로 약 1시간 거리에 있었고 재적은 20∼30명이나 예배 참석자는 8∼12명 정도였다. 대부분 노인들, 여성들이고 청년들은 극소수였다. 처소교회 지도자들은 몇몇 성도들을 데리고 본 교회에 참석한 후 처소교회에 돌아가서 다시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그곳에서는 찬송도 소리내어 부를 수 있고 통성기도도 할 수 있었다. 마치 성도의 집에서 드리는 한국의 구역예배를 연상케 했다. 그들은 말씀에 갈급해 있고 바깥에 십자가만 안 달았지 교회나 다름없었다. 처소교회 지도자들은 본 교회 설교에서 말씀을 공급받고 있었다.

    밤에는 늦도록 내방 청년들과 함께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재미있는 얘기 중 하나는 얼마 전에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남한 해군과 한판 붙었는데 남한 전사 800명이 숯덩이가 되었고 큰 군함 한 척도 그 자리에서 박살나 가라앉는 북한의 완승이었다는 것이었다. 이 상황은 우리가 다 잘 아는 얘기라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북한에서 얼마나 우민정책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북한에서는 약 삼백만 명이 아사했는데 비교적 약하고 순한 사람이 주류를 이룬다고들 했다. 그들은 그 희생자들을 ‘예선 탈락자’라 칭했다. 갈수록 악하고 강한 자만 남고 상대적으로 약한 자가 차례대로 희생당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언젠가 남북이 통일될텐데 이렇게 살아남은 악한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까? 악한 심성이 유전되어 민족성을 황폐화시키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자전거가 많은 나라, 장백산이 있는 나라
    우리는 여가 시간에 H시내 구경도 했는데 시내의 모든 상황이 60년대의 한국을 연상케 했다. 특히 물 쓰는 일과 화장실 사용이 많이 불편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오래 살던 그들이 이제 막 시장경제의 맛을 알아가고 있으며 참으로 돈 가지고 안 되는 것이 없는 나라인 것 같았다. 교통수단은 자전거가 주이고, 자전거와 오토바이에 매단 인력거, 소형 택시가 많았다. 시내에도 도로에 중앙선은 없지만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서 남녀노소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은 무척 한가로워 보였다.
    260km를 달려서 장백산에도 갔는데 북한에서 넘어오는 짙은 안개구름이 정상을 덮어서 시계 1m였고 물 젖은 찬 안개구름 때문에 당초 정상에서 1시간을 기다려서라도 천지 물 속을 들여다보겠다던 계획은 단 5분만에 접어야 했다.

    산 옆구리를 깎아 만든 2차선 찻길은 몇 백 구비인지 모르겠고 좌측으로는 수천 길 낭떠러지인지라 소름이 끼쳐서 감히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정상 50m 이하까지는 이름 모를 들꽃으로 장관을 이루었고 마지막 50m는 적어도 40도 이상은 되는 가파른 경사로서 풍화된 현무암으로 이루어졌다. 정상에서는 장백산 특산인 물에 뜨는 돌을 팔고 군용 방한 코트를 대여해 주고 있었다. 참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훗날을 기약하며 돌려야만 했다.

    우리는 연길로 돌아온 후 화룡을 경유하여 북한과의 국경 소도시인 숭선, 무산의 대안인 적하, 백금, 남양의 대안인 도문들을 두만강변도로를 따라 약 500km를 고개를 오른쪽에 고정시키고 한눈도 팔지 않은 채 다녔다. 강이라야 바지 걷고 건널 만한 곳도 있고 H시 S라는 강변은 두만강 하류인데 여의도 같은 섬이 북한 소유라 샛강이 국경이어서 불과 5m도 안 되는 강둑에서 북한을 건너보기도 했다. 중국 땅은 한결같이 풍작인데 북한 쪽은 옥수수 밭이 누런빛을 띤 흉작의 연속이였다. S라는 두만강 둔치에는 흙모래에 살찐 잔디가 밭을 이루고 50∼100년생 미루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섰는데 넓이가 가히 수백 만평은 헤아리겠고 통일만 되면 대학생여름수련회 장소로 최적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만강 양안을 개발하면 얼마나 멋진 관광명소가 될까!

    중국 선교를 위한 ‘만추리아 프로젝트’
    우리는 중국을 최대의 선교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려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문화를 익혀야 한다. 그러나 모든 간판에 한글을 병용하고 한국말을 하고 우리와 같은 외모를 갖고 있는 조선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자국 선교사로 만든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유창한 중국말로 13억 중국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면 좋겠다. 이 전략을 우리는 만추리아 프로젝트라 부른다.

    중국은 많은 조선족들이 복음을 갈망하고 있고, 북한과 접경지여서 현재도 그렇지만 통일을 대비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또한 러시아 연해주와도 가까워서 그곳의 고려인들과 러시아인들에게 할 일이 많다.

    “북한 인민들은 이생의 삶에 급급하며 참혹한 나날을 보내면서 지금까지는 김정일의 약속이 수없이 빗나갔지만 ’99년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약속을 마지막으로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과 영생에 대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 내방 청년의 간증이 지금도 귓가에 있다. 또한 우리 손을 잡고 연신 허리를 굽히며 자주 와 달라고 애원하던 조선족 교우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0박11일 동안의 우리 사역을 승리케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며 L선교사 내외분, S선교사 내외분, P교수, Y선교사 사모님의 호의에 특별히 감사한다.

    유종호·C.C.C.순성서신학원 원장

    - 유종호 (한국 대학생 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