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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조찬기도회’를 재조명한다!

    1. ‘국회조찬기도회’ 및 ‘국가조찬기도회’의 태동과 경과

    김준곤 목사(한국 C.C.C. 총재)는 ’63년과 ’64년 미국 국회 상·하원 조찬 기도회에 참석 하여 공식 소개되고 인사말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1964년경 미국 국가조찬기 도회와 국회조찬기도회를 주관하는 국제 기독교지도자협의회(I.C.L.:International Christian Leadership) 총무 로빈슨씨와 국제 C.C.C. 이사였고 미국 국회조찬기도회 담임목사였던 하 버슨 박사가 한국을 방문, 김준곤 목사(한국 C.C.C. 총재)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한국에서 도 국회조찬기도회를 시작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김준곤 목사는 당시 공화당 의원이었던 박현숙 장로, 김종필 의원과 의논했는데 그들은 전 적으로 동의를 표하면서 국회 사무처에 등록된 기독교 의원 약 30명의 명단을 건네주었다. 이들에게 국회조찬기도회의 취지를 설명하고 초청했다.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과 김영삼 당시 민중당 원내총무, 정일권 국무총리 등 20명 정도가 참석했다(모임 장소는 구 조선호 텔). 이때가 1965년 3.1절을 앞둔 2월 27일이었다. 한국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복음 안에서 만나 함께 예배를 드린 최초의 모임이었다.

    김준곤 목사는 국가조찬기도회를 정례화시키기 위해 국가조찬기도회 조직방법을 참석 의원 들에게 물었던 바 김준곤 목사가 임명을 해달라고 위임해주어서 여당 총무에 김종필 의원 (현, 국무총리 서리), 야당 총무에 김영삼 의원(전직 대통령)을 위촉하고 일 년 동안 매주 모 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미국처럼 대통령 조찬기도회로 모이자는 제안이 있어 김 종필 의장을 통해 박 대통령의 뜻을 타진한 바 기쁘게 참석하겠다는 응답이 왔다. 그래서 한국 C.C.C.가 그 준비 일체를 담당했던 것이다(당시 한국 C.C.C. 총무였던 윤두혁 목사와 강용원 간사가 실무를 담당했음). 외국인 관계의 코디네이터로는 나이스베커 선교사 부부가 맡아 수고했다.

    그리하여 1966년 3월 8일 7시 30분, 구 조선호텔 볼룸에서 제1회 한국 국가조찬기도회가 개 최되었다. 이 국가조찬기도회는 미국보다 9년 늦게 시작되었지만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열 렸다. 미국의 기독교 지도자들(로빈슨 총무, 하버슨 박사 등 미국 I.C.L에서도 5명 참석)과 브라운 주한 미국 대사 등 각국 외교 사절, 삼부 요인, 이효상 국회의장, 정일권 국무총리, 노기남 천주교 대주교 등 267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은 기도회 5분 전 에 긴급한 사정으로 참석치 못함을 통보해 옴으로 제1회 때는 참석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2회 때부터는 계속 참석했다.

    한국 I.C.L. 회장 박현숙 의원의 개회사로 시작된 국가조찬기도회는 김영삼 당시 원내 총무 가 시편 23편을, 김종필 의장이 고린도전서 13장을 봉독하고 김활란 박사, 강신명 목사, 유 호준 목사, 최태섭 장로와 천주교 노기남 대주교 등이 참석, 순서를 담당했다. 김준곤 목사 가 설교를 했는데 제목은 ‘나와 너의 미래상을 생각해 보자.’였다. 1966년 3월 8일자 경향 신문은 이 사실의 상세한 보도와 함께 설교 전문을 싣기도 했다. 김준곤 목사는 한국에서의 대통령 초청 국가조찬기도회가 정착되기까지의 전과정을 기획, 추진했다.

    이에 대해 ’66년 3월 13일자 ‘연합기독신보’는 ‘조직과 아이디어의 명수’라는 타이틀 로 김준곤 목사와 국가조찬기도회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다음은 그 기사의 일부다. ‘지난 8일 새벽, 조선호텔에는 이효상 국회의장, 정일권 국무총리, 브라운 주한 미국 대사, 길진경 기독교연합회 총무, 최태섭 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비롯한 정계, 교계, 실업계의 내·외빈 인사 250여명이 모인 이례적인 기도회가 열렸다.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대통령 기도 조찬회’라는 이름의 모임. 회비 5백원의 기도회도 처음 보는 케이스이거니 와 이만큼 규모 있고 질서 있게, 그리고 성대하게 꾸며진 기도회는 아마 처음 있는 일일 것 이다(유감스러운 일은 그 시각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박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하여 참석자들 이 적지않게 섭섭해했다는 일이다.). 이 대회는 공식적으로는 얼마 전에 국회 내의 기독인들 로 조직된 국회기독교지도자협회(NACL)가 주최한 것이다. 그러나 국회기독교지도자협회를 조직하게 하고 다시 이렇게 이 협회가 주동이 되어 대통령기도조찬회를 열도록 아이디어를 공급하고 그 기도회를 조직적으로 준비하는 모든 절차와 대소의 실무를 도맡았고, 또 이 모 임에 미국 I.C.L.의 대표로 하버슨 박사와 로빈슨씨를 참석케 하는 일까지 거뜬히 처리하고, 그리고 그 모임에서 당당히 그의 소신을 담은 메시지를 연설하여 한국 교회에 그의 존재를 재인식케 한 주훈의 인물이 김준곤 목사다.’

    이후 김준곤 목사는 1969년 5월 1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설교했고〔제목: ‘하나님의 주권 앞에 머리 숙이자!’(사 40장)〕, 1970년 5월 1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도 설교했으며[제목: 먼 저 하나님을 바라보자!’(히 3:14)], 1971년 5월 1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는 사회를 맡았고, 1972년 5월 1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과 국가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했으며, 1973 년 5월 1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도 설교[제목: ‘사랑의 기적으로 세계의 신화를!’(요일 4: 7~21)]하는 등 수차례의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설교 및 주요 순서를 담당했다. 김준곤 목사의 설교문(영역)이 대학 교양영어 교재에 실리기도 했다.

    특히 1969년부터는 한국 국가조찬기도회 상설위원 8명(김준곤, 윤인식, 김일환, 김인득, 최태 섭, 방순원, 박현숙, 윤남중)을 김준곤 목사가 위촉하여 매주 목요일 정례 기도회로 모였다. 윤인식 의원이 ’68년부터 국가조찬기도회를 담당·수고했고, 한국 C.C.C. 총무였던 윤남중 목사가 ’68년 이후 국가조찬기도회 실무 총무를 맡아 섬겼으며, 8인 상설 위원회가 재정적 으로 후원했다.

    다음은 1969년 5월 2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제2회 연례 대통령조찬기도회가 5월 1일 아침 8시 세종호텔 해금강홀에서 열렸는데 그 자 리에는 300여명의 국내·외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기도회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하여 이효상 국회의장, 윤치영 공화당 의장서리, 김성곤, 길재호, 정일형 씨 등 여·야 의원, 주한 외교사절 그리고 미국 상·하원 조찬기도회 간사인 로빈슨 씨와 데이빗슨 씨도 참석, 성황 을 이뤘다.

    박대선 연세대 총장의 개회 기도, 노기남 대주교의 구약성서 낭독, 김계원 육군 참모총장의 신약성서 낭독, 김옥길 이대 총장의 대통령과 국가 지도자를 위한 기도, 김준곤 박사의 설교 등의 순서로 약 한 시간 동안 기도회가 진행되는 동안 박 대통령은 경건히 머리를 숙여 기 도하고 설교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국가조찬기도회 회장인 정일형 의원(신민)은 개회사에 서 ‘매년 5월 1일을 나라와 대통령을 위한 기도의 날로 기도해 달라.’고 강조했다.’

    2. 조찬기도회와 민족복음화와의 상관관계

    1958년 C.C.C.를 창설하고 민족복음화를 위해 민족의 심장 같고, 새벽이슬 같은 미래의 한 국의 지도자로 성장할 대학생들을 전도하여 민족의 지도자로 키워내고 있던 김준곤 목사는 민족의 입체적 구원을 위한 비전을 가지고 다양한 사역을 전개해가기 시작했다. 이승만 대 통령 시절에 군목 제도가 시행되었는데 김 목사는 국가조찬기도회를 계기로 군 복음화를 위 해 전군신자화운동(全軍信者化運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의 모든 농·어촌 동리 59,000 자연 부락마다 사랑방 성경공부운동을 전개해서 민족의 입체적 구원을 도모할 비전을 품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전 략을 담은 ‘순론’(筍論)을 집필했다. 이 ‘순론’으로 김 목사는 전북대에서 명예 문학박 사 학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준곤 목사가 국가조찬기도회를 계획하고 추진한 것은 민족의 입체적 구원이라는 열망과 비전을 문자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소원 때문이었다. C.C.C.가 민족복음 화를 위해 대학을 그 못자리 판으로 삼은 것은 그들이 모두 이 민족의 잠재적 지도자들이기 때문에 그 파급 효과가 크고 가장 생산적인 전략이라는 발상에서였다.

    만일 대통령을 비롯해서 국가의 핵심적 최고 지도자들이 복음화될 수만 있다면 기성(旣成) 지도자들인 그들의 영향력과 파급 효과는 크고도 빠를 것이다. 실제로 구원의 대상은 천하 만민 모든 백성, 즉 아래로는 비천한 사람으로부터 위로는 최고의 권위자까지를 망라한다. 국가조찬기도회는 누구나 보편적 대상으로 여기는 일반 서민들과 함께 골리앗 같던 상한선 을 깨뜨렸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전인류가 복을 받을 것이라고 언약하셨고, 여자의 씨를 통해 구세주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창 3:15)에 따라 하나님의 독생자를 구속주로 보내주셨다. 성경 은 모세(출 32:32)와 바울(롬 9:1~3)을 인류 최대의 애국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들의 구원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고까지 했기 때문이다. 누가 진정한 애국자이며 민족을 사랑하는 자인가? 물론 다양한 견해가 있을 것이다. 전민족 의 영혼이 구원받아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자가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민족복음화운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요, 최대의 애국운동이다. 어쩌면 이러한 기저(基低)가 새마을운동의 정신적 이론의 바탕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이다. 국가조찬기도회 이후 민족복음화라는 용어가 한국 교계에 회자(膾炙)되기 시작했을 뿐 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조찬기도회가 열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지도자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하는 데서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지금도 국가조찬기도회는 계속되 고 있을 뿐 아니라 여타 조찬기도회들이 열리고 있다.

    3. 올바른 역사 기록

    오늘날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가 지도자들의 대표적인 기도회가 두 개 있다. 첫째는 1965년 2월 27일부터 시작하여 오늘까지 이어오는 국회조찬기도회이고, 다른 하나는 올해로 30회(실제로는 31회)째 내려오는 연례 국가조찬기도회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기도회는 한 국 교회의 자랑스런 교회사적 사건들이다. 모든 역사는 그 배경과 시작의 연대와 주역들이 있게 마련이다.

    개인의 이력도 그 출생을 빼 놓으면 의미가 없다. 국가조찬기도회의 연혁을 보면, 그 진실이 위와 같이 제1회 국가조찬기도회는 1966년 3월 8일 오전 7시 30분 (구)조선호텔에서 김준곤 목사의 헌신적 준비로 시작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진실과는 다르게 1968년 5월 1일 워커 힐에서 열린 것을 제1회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주요 사건의 역사적 뿌리를 간과한 일이 다.

    담당자는 초창기의 자료가 불명하기 때문이라고 하나 아직도 생존하고 있는 많은 증인들과 당시의 국내 일간지, 교계지, 일본의 크리스천 신문, 영자지 등의 산 증거를 토대로 마땅히 그 기록이 정정되고 바른 역사 기록이 후손들에게 전해져야 할 것으로 믿는다. C.C.C. 자료 실도 이와 관련된 신문 보도의 스크랩과 김준곤 목사의 4회에 걸친 설교 전문을 보관하고 있으므로 사실 규명에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1966년 3월 8일자 국가조찬기도회가 제1회로 되어야 하고, 1968년 5월 1일자 기도회 (현재의 연혁에 1회로 되어 있음.)는 2회로, 그 이후는 마땅히 순연(順延)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회조찬기도회의 연혁에 나와 있는 최초의 국회 조찬 기도회도 1965년 11월이 아니 라 1965년 2월 27일에(박현숙 의원과 김준곤 목사의 주도) 열린 것으로 정정되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유종호/ 목사, 본회 비서실장, 순성서신학원(SBTC) 부원장

    - 유종호 (한국대학생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