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선교 답사보고 3
서울에서 갈아탄 방콕행 비행기는 최종 도착지가 봄베이여서 인도 승객들이 많은 가운데 6시간을 걸려 도착했습니다. 이번에도 두 시간 이상 잠을 잘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많이 건강해진 몸의 상태를 좋은 수면 상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방콕에 내려서 마중나온 우수현 자매와 혜린이를 반갑게 만났습니다. 짐이 많고(선교용품들) 네 사람이 다 같이 수현 자매의 차에 탈 수가 없어서 박일용 성도님과(비싼 카메라 장비를 가지고 계셔서) 은정 자매가(여성보호 차원으로) 수현 자매의 차에 타고 나와 웅상 형제는 택시를 탔습니다. 그러나 방콕생활이 얼마되지 않은 수현자매가 택시 기사분에게 틀린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준 덕택에 우리는 5시간 동안 방콕시내에서 미아가 되어 헤매야만 했습니다.
28시간의 여행에서 잠시 쉴 것으로 기대했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화씨 100도가 넘는 방콕시내에서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더더욱 걱정은 저녁 8시 반 버스로 북쪽 난(Nan)지방을 향해 출발해야하는데 모든 것이 어려워지는 듯이 보였습니다. 한국대사관 전화번호를 어렵게 찾아 연락했으나 아무도 대답이 없었고, 한국교회 전화번호를 찾으려 했으나 타일랜드분들은 "Church"라는 말조차도 몰랐습니다. 마지막으로 권홍석형제가 이미 난에 올라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UN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다행히도 전화받은 경비 주임이 친절하여 오랜시간이 걸려 권홍석 형제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어서 연락해보니 이미 이사나간 옛주소였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요, 공중전화 한통화 쓰는 것도 언어와 동전가 드물게 있는 공중전화 때문에 진땀을 빼서 쓰는 데 스무번에 가까운 통화가 다 무산이 되자 맥이 풀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급할 때 왜 기도도 응답 안하시는가 하는 원망의 마음도 생겼습니다. 다시 경비 주임에게 연락하여 일단 UN 사무실로 가기로 했습니다. 출입문에서 경비에게 사정얘기를 했더니 경비는 두툼한 UN직원 List를 주었습니다. 권홍석을 찾아서 인터콤 넘버를 찾았으나 그는 사무실에 없으니 소용없었습니다.
이때 옆에 있던 웅상간사가 UN에 홍석형제 말고도 다른 한국인 직원이 있다는 얘기가 기억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얼른 Kim을 찾았더니 여러명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시간이 오후 6시가 넘었으니 사무실에 누가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김성진이란 이름을 무작정 골라 전화를 했습니다. 한국 액센트로 받는 전화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내가 뉴욕에서 권홍석씨를 만나러 왔다고 말을 시작하자마자 그쪽에서 "이학권목사님이시지요?"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니 저를 어떻게... ?"하자 "녜, 제가 목사님 설교 tape을 듣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내려와서 자기 차로 지도를 찾아가면서 우리를 홍석형제의 집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분의 카스테레오에는 삼상 16장 다윗의 얘기를 담은 뉴욕새교회 Tape이 꼳혀있었습니다. 더욱이 김성진 형제는 자기가 보통 늦어도 4시면 퇴근하는데 (방콕의 교통체중 때문에 UN 근무시간은 7am-3pm이다) 오늘만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고 하는 말에 우리는 여호와 이레를 체험하면서 믿음의 인내가 짧은 내 자신을 또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집에서는 자신이 주소와 전화번호를 잘못적어준 것을 깨달은 수현자매는 우리가 5시간 실종이 되자 사색이 다 되어서 기다리다가 우리를 보자 울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정확한 개입으로 우리는 샤워하고 식사하고 버스정류장에 8시 20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5시간의 실종은 피곤했지만 낭비는 아니였습니다. 우리는 방콕의 도시의 삶과 뒷골목의 노점과 IMF로 농성하는 농민들의 모습등을 자연스럽게 보는 귀중한 현장답사의 시간이었습니다.
- 이학권 목사 (뉴욕 새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