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 June 14
죄인과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셨던 우리 주님의 사랑이 가슴마다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하여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종종 왜 목사가 라디오나 TV에서 종교 프로그램에 나가지 않고 일반 프로그램에 나가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별로 쓰지도 않을 뿐더러 무슨 시인, 소설가, 사상가 이름만 들먹거리는가 또 호칭도 목사를 부치지 않고 '이학권'이라는 이름만 직함없이 호칭되는가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한가지 이유는 종교프로그램은 대게 한 시간당 방송료를 한달에 1천불에서 3천불 가량 내는데 저는 돈을 내고 방송에 나가야 될 필요성을 아직은 절실하게 못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원천적인 이유는 교회의 얘기가 교회 '안'에서만 통하는 얘기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현대신앙의 치명적 약점은 신앙논리(the grammar of the faith)가 사회속에서는 통(communicable)하지 않는 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 결과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 끼리 모였을 때에는 열광적인데 세상 안에서는 의지박약해서 신앙이라는 감성적 도피처에 웅크리고 있는 현실도피주의자들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메시지가 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메시지가 이미 교회논리를 받아들인 무리들 안에서 으시대는 소영웅주의적 과시가 아니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저의 메시지가 신앙가정에서 자라나서 대학교 역사시간에 왜 종교가 인류에게 공헌보다 해악을 더 많이 끼쳤는지를 보고서로 쓰고 교회에 대해 회의가 생긴 학생에게 나눔이 되고 싶습니다. 각각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만났을 때에 왜 그들의 신앙지식이 서로에게 참 진리를 만나는 도움이 되기보다 갈등의 원인이 되어야 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20세기 말에도 종교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얘기란 신화나 동화얘기에 불과 한 것이라는 생각 하는 사람들에게, 사실은 자신이 지극히 종교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교는 자신과 무관한 것이라고 살아가는 선량한 사람들에게, 교회는 가족의 경조사(결혼, 장례, 등)에나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왜 교회의 나가서 은혜받기 보다는 상처와 모욕감을 더 받아야 하는지 혼란된 사람들에게, 이러한 모든 이들에게 진지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나눔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들을 저는 사랑합니다. 이것은 교회생활의 열심인 사람에게 관심을 많이 쏟아붓는 일반교회의 관계와는 달라서 혹 저희 교회에서 당황해하는(때로는 분노하기도하는) 성도님들께는 사과를 드립니다.
저의 부족한 의견에는 교회생활에 이미 열심인 분들은 벌써 좋은 출발을 하신 분들이니까 교회생활이 단순한 종교인의 생활을 넘어서 신앙본질에 접근하도록 격려와 훈계가 필요하며 상은 준비된대로 하늘에서 받게 될 것이므로, 교회의 관심은 아직 출발을 못하고 있는 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그러하셨던 것으로 확신합니다.
교회는 우물안의 개구리가 아니라 잠든 사회를 일깨워 빛의 길로 나서게하는 각성의 소리여야하며, 이것은 저들은 무지하다거나, 강팍한 불신앙자들이라거나 하는 비판에서가 아니라 아직 철 안들고 천진난만하기만한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광야의 소리되고 되고픈 종 이학권 드림
- 이학권 목사 (뉴욕 새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