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에게 달린 상아
대학교수 하던 사람이 학교를 그만두고 빈민촌으로 들어갔다.
친구가 꼭 그래야만 되겠느냐고 물었다.
"가정과 사회가 바뀌지 않는 이상, 학교에서 무엇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네. 학교에서 나는 숲 속에서 상아를 찾아 헤메이는 자 같았어. 천신만고 끝에 상아를 발견했는데, 그 상아는 거대한 코끼리에게 붙어 있는 것이었다네."
이것이 교수의 대답이었다.
이상을 나누고 설명하며 가르치고 배우기는 재미 있습니다. 그 이상을 가지고 설명하고 흥분하여 큰 소리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이 가정과 사회 속에서 열매 맺게 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실 때에 첫 비유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였습니다. 씨는 열매 맺는 데에 그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씨는 아무리 비싸든, 수입품이든, 개량품이든, 존재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씨는 반드시 열매 맺어야 되는 데 씨가 열매 맺는 땅은 좋은 마음이요, 좋은 마음은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눅 8:15) 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마음은 추상적 마음의 성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행동으로 살아가는 구체적 행위를 얘기합니다.
천마디의 고고한 이상향보다, 한번의 용서와 희생은 억만배의 값어치가 있습니다.
오늘의 신앙의 비극은 교리적, 성경적 지식과 이상은 참 고고하지만, 단 한개의 진실된 행동이 뒤따르지 못함에 있습니다.
- 이학권 목사 (뉴욕 새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