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
스승은 평범한 그러나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경건과 거룩을 은근히 나타내는 사람들을 왠지 수상쩍어했다.
결혼문제로 상담하러 온 제자에게 스승은 말했다.
"한가지만 주의하게. 절대로 너무 거룩한 여자하고는 결혼해서는 안되네."
놀란 제자가 물었다.
"아니, 무슨 뜻입니까?"
"만약에 자네가 거룩한 여자하고 결혼하게 되면, 평생 거룩은 볼지 모르지만 아내라는 여자는 못 볼테니까"
스승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가는 제자의 등 뒤로 스승은 혼잣말처럼 말했다.
"거룩이야 하나님으로부터 보아야지 왜 사람에게서 보겠나"
하나님의 거룩은 나사렛 예수라는 갈릴리 해풍을 맞으며 죄인과 세리와 어울리기를 마다치 않고 먹기와 마시기를 즐기고 부정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기를 망설이지 않고 잔치자리에 포도주를 만든 그 거칠 것 없는 삶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아니 그것이 거룩 자체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요 1:14) 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육신을 감추고 말씀만 나타내려 합니다.
육신으로 말씀을 나타내십니오.
거룩은 결코 말씀으로 육신을 가리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신앙논리로 무장되고 가리워져 있습니까?
무장해제를 하십시오.
갈릴리 해풍에 그을은 주님을 만나십시오.
- 이학권 목사 (뉴욕 새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