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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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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자유를 누리며 살라

    마태복음 11장 28~30절

    사람은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사탄이, 이 세상의 죄악이 우리 마음을 난도질해 놓았습니다. 우리 마음에 얼마나 나쁜 것이 있고, 상처가 있는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무의식 속에 그 상처들이 입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포로가 되었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인류는 모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다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다 병들어 있습니다. 다 사탄에게 붙잡혀 있습니다. 감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말기 암환자와 같습니다. 단테의 「지옥도」를 읽어보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에 지옥이 있습니다. 단테의 「지옥도」가 현재 속에, 마음속에, 역사 속에 있습니다.

    자유 누리며 살라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그가 쓴 「자유론」에서 ‘빈궁에서의 자유, 공포에서의 자유’를 얘기합니다. 그러나 빈궁에서 놓임을 줄 수 있으나 공포에서의 자유는 어떻게 가능합니까? 정치가가 죄에서, 죽음에서, 그것의 공포에서 자유를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치유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치유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절대 자유를 원하지만 모두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모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입니다. 모두 죽음에게, 운명의 불안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그냥 화가 나고 콤플렉스가 있고, 분노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주는 내 안에 있었고, 나는 내 밖에 있었나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자기가 자기 집에 살지 않습니다. 자기 속에 자기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꿈속에서 살아갑니다. 인간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자기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아에서의 자유, 욕심에서의 자유, 멍에와 고통에서의 자유, 또 하나님에게로의 자유, 이 자유를 주시는 해방자는 예수님입니다. 인류 전체, 피조물 전체가 이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인간 마음속에 있는 문둥이와 마음속에 있는 앉은뱅이, 마음속에 있는 귀신 떼, 마음속에 있는 죄의 상태가 해결됩니다. 감옥에 갇힌 자, 우상과 욕심과 탐욕, 이러한 것을 예수님이 명하십니다.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 “나사로야 일어나라” 이 음성을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매 순간마다 들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주님을 부를 때 구원력이 발동합니다. “주여, 이것이 또 나왔습니다. 내가 또 이런 상태에 있습니다. 악한 자가 이렇게 나를 쥐고 있습니다. 또 쫓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피난처, 우리의 SOS는 주님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에서 구원을 받고 치유를 받습니다.

    죄에 대한 해결책

    죄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신뢰는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손을 붙잡고 가듯, 어머니를 믿고 살 듯이 사는 것입니다. 자다가도 “엄마”, 위험이 닥쳐와도 “엄마”, 무엇을 알고 싶어도 “엄마”, 걱정이 생겨도 “엄마”, “엄마”, “엄마”하듯이 “주여”, “주여” 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돌이키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주님 모시고 여기 왔습니다. 주님 따라서 주님 손잡고 여기 왔습니다. 주님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주님 손잡고 잠을 잡니다. 주님 손잡고 오늘 다시 살겠습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에 주님 따라 갑니다.” 우리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골로새서 2장 6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있어서 모두 믿음으로 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느니라”고 고린도후서 5장 7절에 적고 있습니다.

    말씀의 약속을 붙잡으라

    믿음은 감각을 의존하지 않습니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주님의 약속과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고백하면 기억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사탄과 양심은 우리를 얼마나 참소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속에 우리를 위로하는 양심은 별로 없습니다. 십계명 하나하나를 가지고, 사랑 안한 것으로, 전도 안한 것으로 계속 공격합니다. 위선자, 살인자, 음란자, 탐욕자, 누구든지 예외가 없습니다. 감각, 심지어 양심까지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내가 악한 놈이지만 용서 받았습니다. 성경이 이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절대 사고의 원점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한 번도 나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너는 나의 자녀다. 내가 약속한다.” 사랑의 확증입니다. 이것은 진실한 사건입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진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믿을 곳이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신조가 없습니다. 부를 노래가 없습니다. 내 양심을 보면 사랑을 받을 만한 놈이 못 되지만 우리 주님의 보혈이 죄를 씻어 주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용서받은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내 속에서 나의 맘을 빼앗을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나를 눈동자처럼 보호하십니다. 손바닥에 이름을 기록한다 했습니다. 천지가 변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유효합니다.


    주님을 위해 적극적으로 살라

    그 다음에는 적극적으로 주님을 위해 살 때 치유, 해방의 효과가 더 있습니다. 흔히 우리의 생각 가운데 공백이 되고 무(無)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탈속을 한다고 해서 죄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귀신 한 마리를 쫓아내면 그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일곱 마리의 귀신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귀신 한 마리를 잡아내면 그곳에 성경이 들어 있어야지 비어 있으면 귀신 일곱 마리가 들어갑니다. 혼자 있는 마음속에도 지옥, 정욕, 탐욕, 욕심, 별별 것이 다 있습니다. 혼자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속과 떨어진 물리적 공간에서 산다고 죄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 모시고 부지런히 살고, 부지런히 기도하고, 행동할 때 참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열심히 살면 해방과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음 같고,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그렇게 젊고 풍성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함을 얻으십시오. 사랑을 믿으십시오. 기뻐하십시오. 모든 문제를 주께 다 내어놓으십시오.

    새로운 천년을 맞는 ‘C.C.C.편지’ 애독자 한분 한분의 삶 속에 얽매이기 쉬운 무거운 것을 다 벗어버리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평강과 은혜가 생수의 강처럼 흘러 넘치길 바랍니다.

    - 김준곤 목사 (한국대학생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