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기
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과연 우리에게는 구세주가 필요합니까? 세계 인류에게도 구세주가 필요합니까? 역사는 심판과 함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은 절대로 역사의 주인이 아닙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코로 숨쉬며 막대기와 같고 벌레와 같은 존재입니다. 인간이 자기의 절대성, 절대 주체성을 주장하는 것이 교육상으로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만 신학적으로 볼 때 이것은 인간 죄악의 원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삶의 액세서리가 아니고 전부입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는 하나님, 죄를 용서하시고 성령의 전을 만드셔서 당신의 영원한 처소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인류와 역사 전체와 민족들에게 구원이 필요합니다.
정치가 우리 민족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방위산업이 점점 더 발전하고 또한 교육 수준이 높아가고 복지제도가 완전해짐으로써 우리 민족이 구원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성령으로 새롭게 될 때까지는 GNP가 늘어가더라도 마음 속에 쌓인 불안지수와 허무지수는 높아질 것입니다.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이 병을 고칠 사람도, 구원할 사람도 없습니다. 전 인류에게는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구세주가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전 인류의 구세주입니다.
전 인류에게는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우리 민족의 구세주로 모시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입을 모아서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거기에 민족의 살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매순간마다 주 안에서 생명의 공급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잠시라도 끊어지면 죽음이 오는 것입니다.
또한 북한에 있는 우리 동포에게도 이 기쁜 소식이 전해져야 되겠습니다. 주님은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위에서 북한의 문을 여시도록 간절하고도 합심된 기도로써 주님의 마음을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십자가
그 다음으로 예수님이 나를 위해 받으신 십자가의 상처에 나의 상처를 맞대어서 예수님의 고난과 아픔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가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상처와 이웃 사람들의 상처, 그리고 내가 아파하는 상처를 맞대게 하는 것이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결코 편안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남 모르는 신음이 있지만 예수님이 그것을 듣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즐거운 찬송 속에도 주님의 십자가는 항상 있습니다. 내 이웃들의 신음소리도 항상 있습니다. 우리는 천박하고 얄팍하게 인간의 질병을 진단하고 우리 사회와 민족의 질병을 진단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그 상처를 진단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옆에 있는 지극히 작은 사람들에 대해 냉수 한 그릇만 대접해도 그 상을 잊지 아니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찰스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보면, 어느 날 수전노 스크루우지가 꿈 속에 자기의 동업자 유령이 길고 무거운 쇠사슬에 발이 채워진 모습으로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온 몸과 손과 발목에 무겁고 차가운 쇠고랑으로 채워져서 끝없이 밤을 헤매며 통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크루우지가 더욱 깜짝 놀란 것은, 무거운 절망의 쇠고리가 더 많이 채워져 있는 자기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스크루우지는 그것을 회개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꿈을 안 꾸고 환상을 못 보아서 그렇지, 이 이야기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웃에게 베푸는 사랑 하나하나가 영원한 투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목자가 됩시다. 인간 전체를 생각하고 그 영혼을 생각하며 시간과 마음을 써주고 기도해 주고 같이 외로워하며 아파해주는,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돌보아 주는 것처럼 인간의 목자가 됩시다.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사랑의 기적을…
우리의 사랑을 제도적으로, 역학적으로 에너지화시키는 일을 해야겠습니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 끼를 굶고 성금과 쌀을 모으면, 밥 굶는 결식아동들과 소년소녀 가장들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 동족 북한 동포도 기아 위기에서 살려낼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민족에 사랑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나라의 기독교 안에서 이런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만일에 교회가 내 이웃의 복지를 위해서 사랑의 목민(牧民)센터가 될 수 있다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못 가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야학으로 교육시킬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 가운데에는 변호사와 의사도 많고, 간호사도, 한의사도 많습니다. 사실 이 사람들이 시간의 십일조만 낸다면 의료보험에 안 들어도 기독교인에 의해서 병이 다 고쳐질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고 신용조합, 소비조합을 만들면 한국은행보다 더 큰 은행이 만들어집니다. 국가의 보조를 안 받아도 기독교 복지재단에서 모든 사람들의 사업 자금을 다 대어 줄 수 있고 또, 물건을 만들 때도 포장비나 선전비가 필요없고 중간 착취가 없게 되므로 물건을 더 싸게 공급해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마지막 혁명의 십자군이 되어야겠습니다. 공산 혁명 이후에 우리가 일으킨 혁명은 예수의 혁명입니다. 우리가 지금 세계에 수출해야 될 것들 중에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예수의 수출입니다. 한국의 인적 자원과 기독교 자원과 기도의 자원과 영적인 자원과 재정적인 자원은 모두 동원되어 세계 선교를 위해서 전략적으로 쓰여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심는 것이 평화를 심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기도 운동이 세계가 사는 길입니다. 마지막 구국 운동, 예수 운동, 성령 운동, 기도 운동, 사랑 운동, 평화 운동을 위해서는 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핵과 같이 뭉칩시다. 비전을 가진 사람들 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민족적 위기를 당했을 때 우리에게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도가 없다면, 우리는 죽은 크리스천들입니다. 우리는 소시민적인 좁은 생각을 가지지 말고 전인류의 구원을 위한 십자군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김준곤 목사 (한국 대학생 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