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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탄의 진정한 의미

    마태복음 1장 18~25절

    성탄절 하면 그 축제 무드와 산타클로스와 캐럴과 파티와 휴가, 크리스마스 휴전과 크리스마스 특사,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푸는 구제와 선물들, 사랑의 캠페인, 이런 것들이 연상됩니다.

    성탄의 참 뜻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하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대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은 완전한 사랑의 표요, 약속이었습니다. 인류와 역사의 문 밖에 서서 닫혀진 마음의 문을 두드리셨지만,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예수님은 인간에게 거부를 당하셨습니다. 말구유도, 십자가도 완전한 거부였습니다.

    성탄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심도와 농도는 각각 다를 것입니다. 그림이나 노래에 겉으로 드러난 면과 그것과 깊이 친숙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숨겨져 있는 면이 있습니다. 또 눈물도 여러 가지 각각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게 마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풀지 않으면 역사는 전혀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가운데 성탄은 기쁜 일이지만 최초부터 십자가의 수난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사야 53장, 누가복음 2장은 연결해서 보아야 합니다.

    테니슨의 시(詩) 가운데 ‘천지를 진동하는 우주의 나팔 소리에 깨어나라, 인류의 새벽이 깨어나리라’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우주의 새벽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어두움에 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이것은 ‘어두움이 거부하더라, 반대하더라, 수용치 못하더라’하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던 그 날 밤에, 그 깊은 한밤중에 예루살렘의 제사장들도 자고 있었고,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해야 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에 나귀와 말과 소가 있는 곳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하늘의 별과 천사의 빛과 아기 예수의 후광 등 세 가지의 빛이 있었습니다. 천사의 찬송 소리와 요셉과 마리아의 조용하고 낮은 기도 소리와 아기 예수의 울음 소리, 숨소리 등 세 가지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또 세 종류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양치는 목자들과 동방박사 세 사람과 마리아 요셉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속죄주, 구속주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가실 하나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고등 종교, 인격 종교, 윤리 종교의 궁극적 지향의 도상에는 반드시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서 있게 되어 있습니다. 윤리의 궁극적 지향의 도상에는 그리스도가 있고, 인간 철학이 추구하는 궁극의 도상에서 결국 허무냐, 신이냐,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파스칼적인 사색의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탄의 양면적 의미

    성탄에는 소극적인 의미와 적극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효과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첫째 암흑을 폭로합니다. 빛은 암흑을 정복하고 심판하고 부정하고 쫓아내는 면이 있습니다. 또한 광명을 노출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인간의 암흑 상태를 폭로하는 일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일종의 시금석과 같습니다. 자석을 쓰레기 더미에 넣고 저어 보면 쇠붙이만 들러붙듯이 예수님께 소속된 마음이 가난하고 경건되고 의롭고 구원을 갈망하는 열린 마음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암흑에 속한 사람들은 빛에 대해 저항을 하고 미워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했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의를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인간의 무신성, 거역성, 부패성, 이기성(롬 1장) 등은 빛 아래서 폭로되었습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면인데,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탄이 복음이기는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정죄이기도 합니다. 십자가 구속의 효율성은 전 인류의 죄를 덮을 수 있을 만큼 큰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화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의 비교

    예수님의 초림을 재림과 병행해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약속대로 오셨습니다. 재림에 관한 예언은 초림 때의 예언보다 더 많이 있습니다. 초림은 수난의 종으로 오셨지만 재림은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초림은 은혜와 사랑으로 구속하러 오셨으나 재림은 심판주로 오십니다. 초림에는 익명의 그리스도로 오셨지만 재림에는 만민이 보는 앞에서 오실 것이고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아무도 입을 열 수가 없고 변명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됩니다. 초림 때는 전인적인 우주적인 메시야로 통치하러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전인적이고 그의 은혜는 충족적입니다. 지금은 영적인 것만 구원을 받았지만 육체의 구속을 포함시켜서 혼과 영의 전체가 구속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또한 현실적인 모든 문제들이 예수님의 구속과 사랑과 영향권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기 때문에 내가 슬프고, 외로울지라도 나 혼자의 슬픔이 아니라 주님의 슬픔이고 주님의 외로움이 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나의 모든 짐을 주께 가지고 가면 그것을 가볍게 해주시는 현실적인 전폭의 구주가 되십니다.

    유대인들의 잘못된 메시야관

    유대교인들은 예수님의 초림 때 잘못된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두 가지 이유로 예수님을 죽였는데 하나는 시기이고, 하나는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야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메시야, 혁명의 메시야, 사회적인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죽인 이유가 반드시 돈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 굉장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속죄양이 된다고 하자 그 사실에 보복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초림과 재림의 중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예수 상에는 이상이 없을까요? 기독교의 본질적인 영의 변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어떤 이는 신령한 구속주를 전하기보다는 세속적인 예수 상을 전하고 있고, 전자를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의 재림을 내세적이고, 반문화적이고, 반사회적이라는 비난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재림의 주를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른 예수 상을 전해야 합니다. 종말론을 전해야 하고 지옥과 천당을 전해야 하고 구원의 절대성과 예수님께서 이 우주의 통치자로 재림할 것이며, 예수님이 재림한 후에야 지상의 악이 없어지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탈색해서는 안 됩니다. 재림을 바라보며 죄에서 구속해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분명한 상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성탄을 맞는 자세

    이번 성탄에는 그리스도를 내 마음과 내 생활의 주 하나님으로 왕좌에 모셔야겠습니다. 그에게 내 방의 모든 열쇠를 다 맡기며, 사랑과 헌신을 고백하며, 내 가정도, 내 사업도, 학문도 당신의 것이 아닌 구석이나 죄가 있으면 회개 자백하여 성령을 슬프게 하는 구석이 없어야겠습니다. 그의 복음을 많은 이웃에게 더욱 절실히 전하는 계절이어야겠습니다. 예수 이상 큰 사랑과 축복,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사랑을 전달하는 계절이어야겠습니다. 우체부, 수위, 가난한 분들, 병자, 옥에 있는 분, 나보다 불행한 분들을 찾아가 정성된 사랑의 선물을 전달해야겠습니다. 몸으로 섬기는 삶을 배우고, 이웃의 고난에 깊숙이 참여하여 내 몸처럼 돌봐주기를 바랍니다. 우울한 시대를 믿음으로 헤쳐가는 모든 이들에게 중심을 담아, 메리 크리스마스!

    - 김준곤 목사 (한국대학생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