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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 넘치는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라
빌립보서 4장 4~20절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은혜란 물이 그릇에 가득 채워져서 빈 공간이 없이 차고 넘치는 그런 풍요로운 축복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질적인 풍족함뿐 아니라 마음 속에 평안과 자유를 누리는 풍요로움이 차고 넘치는 것이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고백과 같이 주의 은혜에는 항상 부족함이 없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1∼34).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없기에 운명에 쫓기고 항상 불안하며 요행을 바라고 안정감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내일 일을 주께 맡기고 사는 안전보장이 되어 있다. 아기가 부모의 품에서 평화를 느끼듯이 주 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절대 평화이다. 노한 풍랑이 일어도, 전쟁이 일어나도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평화를 나눠 가진다.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과 사랑도 선물로 주신다. 최고의 은사이다. 기도의 샘이 마르면 주의 종들을 통해, 성령을 통해, 말씀을 통해 기도의 샘물이 터지게 하신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없게 해 주시니 감사할 수밖에…. 그런데 우리는 지위가 높을수록 염려가 많다. ‘모든 염려를 내게 맡기라’고 주님이 안타까워서 우리에게 사정을 하신다. 또 우리로 하여금 분노를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마음 속에서 그를 위해 기도해 주고 사랑할 마음을 품어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마태복음 5장에는 형제를 향하여 노하는 자, 미련한 자라고 하는 자는 심판 받을 상황에 놓인다고 했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께 가져가서 고침을 받아야 된다. 로마서 12장에서는 악을 선으로 갚으라고 했다. 악은 악으로 갚아야 한다고 할 때, 절대로 원수가 갚아지지 않는다. 오직 사랑으로 녹여야 한다. 항상 축복하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 자비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고후 1:3, 4)이 나와 함께 하시므로 그 아버지와 함께 사는 연습을 하여 늘 그렇게 마음의 자세를 주 안에서 정착시켜 놓으면 그 마음에 우울한 것들이 치료된다. 현대인의 병 가운데 누구나 걸려 있는 것이 고독병이다. 지성인일수록, 부자일수록 더 고독하다. 다른 사람을 향하여 열려진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채 전부 이기주의로 완전무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들 고독하다. 그러나 기독교인만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하겠다”, “지금의 환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사랑하고 기쁘기 때문에 그 고독을 극복할 수 있다. 언제든지 형제와 더불어 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고 싶어하고, 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줌으로써 자기가 기쁜, 그것이 기독교인이다. 고난을 받지만 예수님의 고난 받은 것에 참여하는 것으로 감사하며 은혜의 잔으로 받아 감당할 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 사실, 크리스천은 그 어떠한 것도 아름답게 만들어 버리는 삶의 시인이며, 예술가이다. 우리의 재료가 환난이든, 고독이든, 죽음이든 그 무엇을 가지고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복음화시키고 미화시켜 찬송과 감사와 연단과 인내와 소망과 믿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우리는 사단이 이 세상을 주관하는 것도 알고, 내 안에 모든 죄가 있는 것도 알지만 주님이 그것들을 극복하는 힘을 주시는 줄 믿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 가운데 제일 큰 문제가 열등감의 문제이다. 배우처럼 사람에겐 두 개의 ‘나’가 있다. 껍데기가 있고, 속의 진짜 ‘나’가 있는데, 속의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에야 비로소 그 껍데기를 벗는다. 모든 사람은 사람 앞에서 다 배우 노릇을 한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 성령의 조명을 받은 사람 외에는 다 배우 노릇을 하고 있다. 열등감이라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죄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것은 자기 속에 눌려져 버린 죄의식이 있기 때문에 연막을 치는 것이다. 부부간에도 우월감을 갖기도 하고, 친구 사이에도 잘난 척, 선한 척 하기도 하고, 종교적으로도 바리새인들은 길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껍데기 경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 기준의 X-Ray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바로 현대 바리새인들임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 인기를 얻을까 생각하는 껍데기 인간들이 돌아 다닌다. 그러나 새로 시집간 여자는 남편에 대한 애정 하나로 가득 차 있기에 다른데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예수님과의 사이에 사랑과 만족이 가득 차 있고, 너무나도 값지고 귀한 밀어의 시간들을 보내기 때문에 다른 것들이 상대화되고 조그맣게 보인다. 어떻게 콤플렉스와 우월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껍데기를 벗어야 한다. 주 앞에서 항상 진지하게 자기 자신을 대해 봐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숨길 것이 없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기에 겸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에게 뽐내고 다닐 필요가 없다. 남에게 호감을 사려는 의식을 하지 않을 때 호감을 사게 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내가 50점짜리면 50점 이상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란 게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 아무 잘난 것도, 숨길 것도 없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에 신성함과 존엄성이 있는 것이지 하나님을 떠나 놓고 보면 인간이라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완전하고 절대적이고 무한하며 스스로 계신 분(to be)이기에 소유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돈에 대한 욕심, 성적인 것, 권력의식 등의 소유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소유는 불완전한 존재에게 있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소유의식과 같은 보충존재에 대한 보충이 필요하나 난파선에서의 구조시에 몸 하나만 구원 받듯이 우리가 심판 받을 때에 소유와 존재는 완전 분리가 된다. 소유라고 하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의·식·주와 같이 꼭 필요한 실용재산과, 돈이나 증권 같은 명목재산이다. 우리에게 돈이 필요하지만 철저하게 주님의 것이라는 겸손한 청지기 의식을 갖고서 주의 영광을 위해 써야 한다. 그 소유에 대해서 주 뜻대로 사용하여 풍성함을 누리고 살면 모든 일용한 양식과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모든 필요를 다 채우시는 주님의 풍성한 새 은혜 속에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풍족한 생활, 모든 은혜가 차고 넘치는 풍성한 삶을 경험하길 바란다.
- 김준곤 목사 (한국대학생선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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