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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승리의 삶을!
도덕적 인간의 최고 수준에 있었던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롬 7장)라고 탄식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법을 즐기고 섬기고자 하는 본심이 있지만, 또 다른 육신의 법이 있어서 죄와 사망의 법을 따르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 사도 바울의 절규의 소리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에는 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해방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인생의 왕좌에 앉고, 주가 되십니다. 내 마음의 주인을, 왕을 바꾼 것입니다. 현대인은 내가 나의 주인으로 “내 인생 내 맘대로 한다. 아무도 나를 지배할 자가 없다.”라고 하며 신을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허무와 악한 신이 자기를 지배하게 됩니다. 인간은 구조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든가, 참 신을 섬기든가를 결정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기는 절대 자유자도, 절대 주권자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상과 참 신 사이에 살게 되는데 예수를 믿게 되면 죄인이었던 그 상태에서 참 주님을 모시고, 주권을 바꾼 사람이 됩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고 싶고, 예수님의 뜻을 기뻐하고, 그대로 살고 싶어 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받은 자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여 다시 살아난 자가 된 것입니다. 세례라는 것은 상징적으로,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 죽음을 의미하고 또 다시 물에서 나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한 것, 즉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는 그 정체가 동질화된다, 연합한다, 혹은 결혼한다, 변화를 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인생의 왕좌에 앉게 되면 자기 생명의 질이 변화를 받습니다. 누에가 나비가 되듯이 생명의 변질이 이루어집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인간이 본질적으로, 생명학적으로, 유전학적으로 완전히 바꿔집니다. 왜냐하면 내 속의 주인이, 생각이 바꾸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로 주를 삼았고 그리스도 중심의 삶으로 마음의 의지와 소망이 다 바뀌어졌지만 동시에 우리들 속에는 죄와 사망의 악한 법이 있어서 성령의 법과 싸움을 합니다. 내 속에 악하고 죄를 사랑하는 자가 그 세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 속에도 선과 악이 싸우듯이 두 개의 자아가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동적으로 선하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시험과 유혹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죄를 자백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넘어지는 것과 자꾸 유혹을 받고 시험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예수님이 피할 길을 주신다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굉장히 동정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피와 땀을 흘리며 기도하러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갈 때 세 제자를 특별히 선택해 데리고 가서 깨어 있으라고 부탁했으나,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고 있는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구나.”라고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런 주님을 우리가 모시고 삽니다. 그 예수님은 피할 길을 주시고,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기도문에서처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악한 자에게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여기 있나니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믿음이니라.” “악에서 구하옵시고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내 힘으로가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구해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선 중의 선이고, 의 중의 의입니다. 기독교는 강자 철학도, 의지의 종교도 아닙니다. 은혜와 사랑과 성령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신 그 의를 힘 입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모여서 성경공부 하고, 기도하고, 같이 일을 하는 동안 내 힘이 약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코이노니아, 성도의 교제입니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성령에 의존하고,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는 선이 끊어지지 않도록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요한일서 1장 9절을 생활의 습관으로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의 힘으로 살아갈 때 크리스천의 승리가 계속 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성화의 과정은 죽을 때까지 이루어집니다. 승리는 내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뭇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절로 과실을 맺음과 같이 크리스천이 성화하려면 주님께 붙어 있어야만 됩니다. 은혜로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를 저절로 맺는데 그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주 안에 있고, 그 혈관이 잘 통할 수 있도록 믿음을 유지하고, 기도하면서 선한 일에 힘쓰면 죄에 대한 면역의 힘인 저항력이 강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편 중독자처럼 습관적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그 죄란 놈은 유혹하는 힘이 있고 우리의 저항하는 힘을 빼버리기도 합니다. 죄는 불치의 병과 같아서 정상적인 생각을 못하게 만듭니다. 나의 힘으로 이것을 극복할 수 없어 죄와 사망의 법 아래서 평생 살다가 죽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서 죄가 다시 힘을 얻으면 예수님에게서 거듭난 우리의 새 생명은 점점 무력화될 것입니다.
다른 종교나 철학적 개념은 “나는 하여야 된다. 그런고로 그걸 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나는 하여야 된다. 예수님 법대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없다.” 이게 차이입니다. 여기서 이기는 법은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힘입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그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상상하고 기도하는 것보다도 더 큰 능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일생 동안 쓸 수 있는 힘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한 발짝 한 발짝 주님께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기독교인이 된 후에도 우리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하루 주님을 의지하면 승리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승리에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승리에서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그러나 이김을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사하노니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해방하였나이다.”하는 이 절대 확신에서 자유함을 얻고 살기 바랍니다.
- 김준곤 목사 (한국 대학생 선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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