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이 활짝 열렸다. 모든 생물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마음껏 펼치고 뻗쳐보는 계절이다. 봄이 몸부림치는 혁명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무르익은 자유의 계절이다. 그리고 조금은 삶의 리 듬에 '라르고'(Largo)를 누리고 싶은 충동이 이는 계절이다. 성장과 쉼과 자유가 활개를 쳐보는 시간이다.
거대한 괴물 신음 소리를 내는 만핫탄 빌딩 숲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다가도 강하나만 건너면 도심의 열기를 말끔히 씻어 주는 허드슨강이 있다. 허드슨 강변은 뉴욕을 사는 사람들에게 어 머니 젖줄 같은 태고의 쉼 속으로 한없는 안도감으로 들뜨고 놀란 가슴을 가라 앉혀 준다. 허 드슨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뉴욕이 살아 있다.
자연과 인생, 그 안에 함께 사는 사람과 동식물은 한 가족처럼 얽혀 산다. 흙으로 만들어진 사 람은 흙과 가까울수록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고 흙과 멀어질수록 제 모습을 잃어 간다. 몸 안의 원소가 흙속에 있다.
마구 뿌려대는 농약, 살충제, 비료들의 화학증폭 상승 부작용은 인간 탐욕이 부른 재앙의 대가 가 아닐 수 없다. 자연 파괴가 극에 달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몸살을 하고 있는 지구에 경쟁 삼아 무지한 핵실험으로 지각을 깨고 있으니 여기저기 지진이 터지는 구역질과 엘니뇨, 라니냐 같은 감기증세를 앓고 있다. 드디어 '환경호르몬'의 출현으로 인간은 자연 파괴의 혹독한 대가 를 대대로 물려주고 죽게 되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면서 자연을 지배하는 특권을 가진 동 물일 뿐이다. 우리는 그 동안 그야말로 문명이라는 이름아래 자연 파괴의 탕진을 자행한 탕아 들이다.
이 여름 자연으로 나가 자연과 더불어 인생을 보자. 자연은 몸으로 우리와 말을 주고받는다. 자 연을 즐기고 아낄지언정 자연을 유린하는 만행을 저지르지 말자. 풀잎 하나, 잡초하나를 쓰다듬 고 들과 산 계곡에 외롭게 피어 있는 야생화 한 포기에서 우주의 신비를 깨닫는 공부를 하자.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이 자연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다.
경관만 좋으면 식수원천이든 어디든 호수 가에 술집, 호텔, 유흥업소, 음식점이 들어서서 난장 판을 만들어버리는 한국식 장삿속 자연파괴가 안타깝기만 하다. 좁은 땅이지만 한국 같은 수려한 자연을 오밀조밀하게 가진 산세 고운 나라도 없다. 그러나, 지구본을 보면 손가락 크기만도 못한 한국의 좁은 땅이 임진강 한탄강의 흐르는 눈물로 두동 강이 나있다. 언덕만도 못한 산등성이를 하나를 놓고 영호남이 지방색으로 갈라져 나라를 망치 고 있다.
호수에 물방울 하나 일렁일 때 내 마음도 같이 출렁이고, 풀잎하나 바람에 흔들릴 때, 들꽃 하 나 반겨줄 때 내 마음도 덩달아 미소짓는 자연과의 대화 없는 인간성은 잔혹할 수밖에 없는 문 명이 만든 괴물이다. 밤하늘 별들과 속삭일 줄 모르는 인성벙어리 마비, 철근 콘크리트에 철판 을 깐 심장으로 어찌 인간들끼리인들 훈훈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초여름 숲속에 피는 찔레꽃을 본다. 화려한 봄꽃들이 한바탕 제 자랑을 하고 간 뒤, 숲속 어디 선가 풍겨오는 향기가 있다. 순수한 향기, 순박하면서도 어떤 품위를 높여 주는 향기다. 인간 의 언어로는 그 향기를 표현할 수가 없다. 아련한 향수를 온 산천에 뿌려 놓는다. 나는 찔레꽃 향기가 휘날리는 여름밤이 행복하다. 코를 가까이 대어야 맡을 수 있는 꽃향기도 있지만 찔레 꽃은 아무도 모르게 온 숲속을 헤치며 그 향기를 뿌리고 다닌다. 화려한 장미과의 족보를 가지 고 있으면서도 그것도 숨겨둔채 찔레는 순박하게 가냘픈 작은 꽃으로 소복의 흰색으로 수줍게 도 핀다. 찔레를 보면 나는 어쩐지 순정(純情)이라는 옛이야기 같은 향수에 젖는다.
찔레꽃을 미국에서 보면서, 찔레꽃이이야 말로 우리 한국에서 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해본다. 찔레는 죽은 가지에는 월계관을 씌워주고, 가냘픈 나무는 신부의 레이스를 입혀 격려해 주는 꽃이다. 무리를 지어 팀웍으로 얽혀 살고, 꺾일수록 잘릴수록 더욱 뻗는 찔레의 기상이 있다. 도둑을 막아주는 담장을 만들어 악을 저지할 때 가시를 쓸 줄 아는 꽃이다.
눈 속에 피어나는 매화, 서리 맞고도 피는 국화, 진흙 속에 피는 연꽃, 그리고 사시사철 푸르고 곧기만 한 송죽(松竹)은 뜻이나 절개가 그 화품이요, 치자, 동백, 사계화 등은 깐깐한 기골이 그 화품이요, 모란과 작약은 부귀(富貴)가 화품이며, 해바라기, 두충(杜沖)은 충(忠)과 열(烈)이 화 품이고, 박꽃, 맨드라미, 봉선화는 박실(朴實)하고 성실함이, 진달래와 개나리는 분명한 거취가 그 화품이다.
동물을 인간성의 야욕성에 비교하고, 꽃은 인간성의 품위에 상징한다. 인간의 성격도 품위도 꽃 향기 만큼 다양하다. 늑대나 여우같은 사람성품이 있는가 하면, 옥잠화 같고 달맞이꽃 같은 향 기를 발하는 인품이 있다.
최근 두만강을 넘어 몸이라도 팔아 먹을 것을 찾아야 하는 북한의 우리 여인들의 피맺힌 사연 을 보고 찔레꽃 피는 내 조국 산하 눈에 아른거려 눈시울을 적신다. 임진강변, 한탄강변 찔레는 38선의 철조망을 기어이 넘어 피고 그 향기를 더욱 진하게 발하고야 말 것이다.
옛날 우리 나라에선 해마다 이웃 오랑캐 나라에 여자를 바치기로 되었는데 이들을 <공녀> <진 공녀>라 불렀다. 이 때에 억울하게 공녀로 끌려가 오랑캐 땅에가 살게된 찔레라는 소녀가 있었 다. 그 곳의 생활은 자유로 왔다. 그들의 주인이 모두 높은 지위에 잇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러 나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찔레만은 호사스런 생활보다도 고향 생각 때문에 눈물로 살았고 세월은 흘러 10년이 넘게 되었다. 찔레의 주인은 울고 있는 찔레를 발 견하고 곧 사람을 멀리 보내 고려에 가서 찔레의 동생을 찾게 했다. 그러나 세월이 너무 지났 기 때문에 그 후의 일을 알 수가 없었다. 할 수없이 찔레는 스스로 동생을 찾아 길을 떠났다. 찔레는 산 속을 헤매다 죽고 말았는데 그 후 그의 아름다운 마음은 흰 빛깔의 꽃으로 변하고, 방울방울 흐르던 눈물은 붉은 열매가 되었고, 찔레의 고운 목소리는 향기로 변했다.
정주영 할아버지가 몰고 간 소떼 500마리와 함께 우리의 찔레는 먼저 판문점을 넘어 향기로 소 떼를 맞고 있을 것이다.
찔레꽃의 한을 담은 잃어버린 혈육을 찾는 우리의 피맺힌 남도창 판소리는 없는가?! 200리길 찔레꽃 피어 있는 먼 이국땅, 미국의 허드슨 강변을 달리며 오늘따라 차창이 몇 번이 나 짙게 흐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