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겨울을 통과해야 봄을 봄답게 맞는 보람을 얻는다. 엘니뇨 탓인지 엘니뇨 덕분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지금 겨울이 없었던 봄을 기다리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그러나 2월의 마지막 주간을 보내고, 3월이 되면 우선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봄은 열리기 시작 한다. 지난겨울 같은 애매한 계절을 지나면서 느낀 것은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고 봄은 봄다워 야 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생명의 시간은 정확하고, 그 힘은 무서우리만큼 강인한 재생력(再生力)을 가지고 있다. 앞뜰 뒷 뜰 여기저기서 벌써부터 트고 나오려는 생명의 함성이 북소리로 둥둥둥 들려 오는 것만 같다.
몸으로 받는 체감온도의 칼날 같은 매서운 바람 없는 겨울이었지만, 우리는 지난겨울 같은 잔 혹한 겨울을 마음으로, 생활로 경험해 본적도 일찍이 없었던 같다. 혼란의 아비규환 같은 국내 IMF한파가 살 속으로 칼질을 하며 역사에 없었던 냉혹하고도 예리한 차가운 바람이 한국인의 의식(意識)을 흔들며 휘몰아쳤다. 몸으로 느끼는 추위는 외형적으로 두꺼운 옷을 걸치면 되지만 이번에 불어닥친 경제난국의 벼 랑끝 한파는 의식(意識)의 변화에 혁명을 요구하는 칼날 같은 추위였다.
생명력은 풀 수 없는 신비를 가지고 있다. 풀어지면 끝없이 늘어지고, 조이면 강한 반발 응전 생명력이 발동한다. 도전에 응전 하는 인간역사가 야만에서 오늘의 문화를 꽃피운 생명의 비밀 이었다.
이제 참으로 무서운 겨울을 통과한 한국의 오늘은 역사의 새봄을 기다리고 있다. 거품과 허풍 을 걷어내고 나니 GNP 1만불이 10년전 6천불 선으로 되돌아 왔다. 제 모습에 제 푼수의 값이 라도 바로 볼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겨울 바람에 가까스로 걸쳐 있는 죽은 가지들이 앞마 당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다. 나는 죽은 가지를 가장 싫어한다. 언제 어느 바람에 떨어져 사람이 라도 다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겨울 바람은 불어야 한다. 그래야 봄이 안전하다. 사람이 식별하기 어려운 죽은 가지를 하늘의 전정사(田丁士)가 해 주는 것이 고마운 겨울 바람이다. 나무가 높아 어떻게 할 수 없는 죽은 가지를 겨울바람이 대신해 주는 고마움을 나는 알고 있 다.
생명의 비밀은 그 재생의 힘에 있다. 죽어 버린 줄만 알았던 생명들이 봄의 함성을 듣고 깨어 나는 시간이다. 그리고 도전에 응전하는 힘의 신비는 그것이 당한 시련과 고통 속에 더욱 더 강해진다.
하와이 열대어를 토론토 수족관으로 수송하는 중 모두 죽어 버렸다. 최첨단 시설로 똑 같은 물의 온도와 먹이를 유지시켜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연구 끝에 생명의 본능적 방어력을 이용하기로 했다. 열대어 안에 문어를 넣었다. 수송중 문 어가 문어발을 휘두르며 열대어의 생명을 노렸다. 열대어들은 잡아먹히지 않기 위 해 이리저리 피하는 중 마침내 어족관에 산채로 건강하게 이송되었다.
뜨거운 물 속에 개구리를 넣으면 깜짝 놀라 뛰어 나오는 힘으로 산다. 그러나 개구리를 탕속에 넣고 개구리가 알아채지 못하게 서서히 물 온도를 높이면 개구리는 삶아 죽고 만다. 지금 한국 은 갑자기 뜨거운 물에 놀라 이리저리 놀라 뛰고 있는 개구리 같은 현상을 보이고 있어 살아 남을 희망이 보인다.
오늘 한국은 새로 뽑은 김대중대통령, 50년만에 이뤄진 정권교체, 한 인간의 파란의 정치생애 43년에 이루어진 꿈의 성취를 보는 15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다. '목포의 눈물' 대신, 조수미가 불러준 '동방의 아침의 나라'가 울려 퍼지고 국내외 축하객 4만3천800명이 모인 가운데, 1,500마 리의 비둘기가 의사당 창공 위를 날고, 축제 예포 21발이 하늘을 가른다.
새로 들어선 5년간의 청와대 주인으로 한국을 이끌어 갈 '김대중 대통령'을 보면서, 한국의 얼 룩진 역사와 눈물과 땀과 피와 고독으로 점철된 한 인생의 승리와 한국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설래이는 기대와 함께 가슴이 뭉클해 오는 감동이 있다.
87년7월8일, 광주 망월동 추모식에서 그가 던진 '인동초(忍冬草)'라는 꽃의 비유가 그 자신을 상 징하는 꽃 이름이 되었다. 인동초(忍冬草)는 말 그대로, 겨울을 참고 기다리다 핀다는 의미 있 는 꽃 이름이다. 인동덩쿨에서 피어나 자태도 아름답고 향내도 좋다. 무엇보다 이 꽃은 종기, 치질등 악성 질환 치료때 항생제 대신으로 썼던 귀한 꽃이다. 이제, 인동초(忍冬草)가 드디어 드디어 활짝 피었다. 축하행사로 걸린 사상 최대크기의 태극기 로 활짝 피었다.
우리에게 아직 봄을 기다리는 희망이 있다. 북소리 울리며 대지를 깨우는 봄이 오고 있기 때문 이다.
15대 대통령 취임식에 새로운 기대로 우리도 함께 축하 하며, 어디선가 들려 오는 봄 합창이 한국 의 봄을 기원하고 싶다.
다시 한번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로 그리워지는 고국 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