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에 정식 데뷔 한 적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글을 써 온지 38년째는 되는것같다. 이 시간을 통해 방송되는 글도 다음주면 만 1년이 된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느끼고 배워가는 것이 많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인가도 새삼 깨닫는다.
어쩌다가 글을 쓰게 되었는지 어떨 때는 처량해진 자신을 한탄한 적도 있다. 지금은 여기 저기 한 달에 6편의 새 글을 써서 8곳에서 활자로 찍혀 나오고 있다. 국민학교 때부터 숙제로 한 일 기 쓰기로 시작을, 중고때, 백일장이라는 곳에서 장원 한번 입상해 미제 파커만년필을 상으로 받은 경력밖에는 없는 처지다.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것임을 배운다. 나 자신을 쏙 빼고, 비판적인 글이나, 새로운 지 식의 정보에 관련된 글,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해야된다는 글은 하루 내내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포함된 내 인격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옴겨 쓴다는 것은 내 자신을 발가벗기지 않으면 써 질 수 없다.
특히 "방송엣세이"를 쓰면서, <행복만들기>주제에 관련된 글을 쓰자니, 하루에 12번도 변덕을 부리고, 조그마한 일에도 신경이 걸리면, 화장실부터 가야하는 나의 체질에 한 주에 한번 쓰는 엣세이가 1년동안 나를 수련해준 훈련관이었다. 마감시간을 초를 재며 시험을 치르듯 자신을 다지는 시간들이었다. 다른 글과 함께 지난 한해 100여편의 엣세이를 쓸수 있었던 것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행복만들기>에 동참하며 엣세이를 쓰면서, 우선 나 자신의 가정의 행복을 새삼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고, 나 자신의 사람됨됨이, 인격이라는 인간성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면 서 느낀 것은 나이는 들고 인생의 기술은 노련해 졌을 지는 몰라도,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은 하 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것을 미화시킬 줄 알고, 돌아갈 줄 알고, 잠시 피해 가는 기술이 늘었을 뿐인 것 같다. 본래, 급하고, 잔혹하고, 냉정하고, 이기적인 나는 "인격적"이라는 미사여구에 잠시 숨어 잠복하고 있을 뿐이다. 글을 쓰는 것은 혹시라도 다른 사 람에게 함께 나눌 수 있는 격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야 하기 때문에, 쓰기 전날부터라 도 마음가짐, 감정관리를 잘하고 있어야만 글다운 글이 되는 것을 안다. 하물며 목소리로 직접 방송을 하는 분들의 어려움도 함께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기 때문에 주변에 관련된 일이 생길 수 있다. 기분 좋은 일도 있을 것이고, 기분이 나쁜 일도 생길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분노도 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이크 앞에 앉았을 때는 그 모든 것들을 죽여야 한다. 자기가 죽는 것이다. 글을 쓰는 칼럼형태의 글도 그렇다. 그것도 쓰 고 싶을 때 쓰는 글이 아니라 고정된 마감시간을 앞에 놓고는 더욱 그렇다.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종 중에 하나가 신문기자, 그래서 기자생활을 한 사람의 평균 수명이 가장 짧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을 악(惡)이라고 한 순자의 이론도 있고, 인간의 본성이 선천적으로 선(善)하다는 맹자의 설도 있다. 기독교에는 원죄성이 있고 불가에는 불성이 있다고 한다. 나는 솔직히 어느 학설도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얼마전 한국KBS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기프로그램 "열린 음악회"를 보았다. 사회정치 어디에나 문제의 현장에 가장 한가운데 앉아 있는 내가 존경하는 김수환추기경이 음 악회에 있었다. 음악회에 나온것만으로도 감동을 주었는데, 사회자의 요청으로 독창을 부탁했 다. 김추기경은 서슴없이 마이크를 받아 들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애모'라는 유행 가를 프로급에 가깝게 불러 주었다. 나는 눈물이 핑돌았다. 그 노래의 내용에 얽힌 사연도 슬펐지만, 나를 감동케 한 것은 김추기경의 인간미의 모습이었 다. 민생속에서 민생과 함께 애환을 노래 할 줄 아는 김추기경이 더 한층 존경 스러웠다. 강론이 날카로와 강남의 부유층 신자들을 향해 '금모으기운동'의 강론이 끝나자 마자 7백50명이 참여 51Kg 가량, 싯가 6억8천여만원이 일시에 모아졌다.
나 자신이 기독교에 입문한 동기는 교리가 아니었다. 한 목사의 따스한 인간미였다. 내 평생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K 목사님이 있다. 그때는 외국의 유명한 명작이라야 떳떳이 극장에라도 갈 수 있는 그런 분위기의 상황이었다. 그는 나를 대리고, 허장강, 김승호등이 주연으로 나온 한국영화를 함께 대리고 가서 보아주었다. 때때로 당시의 유일한 낭만의 주말여행은 교외선기 차을 타고 백제를 한번 돌고 오는 것이었다. 시골길 논두렁을 같이 걸으며, 아무 집이나 찾아가 '토종닭'을 한 마리 잡아 달라고 해 농촌향수에 흠뻑 젖어 돌아오기도 했다. 당시도, 지금도 수 십만의 대학생들의 황량한 가슴속에 칼날 같은 멧세지를 퍼부어 댔던 분이었다. 나는 모든 감 화를 그분으로부터 받았지만,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과 내가 매력을 느낀 것은 그분의 인간미 (人間味)였다.
우울한 겨울, 엉거주춤한 겨울답지 않는 겨울, 암울한 인간성을 만나고 당할 때마다 나는 나 자 신의 본래 모습으로 환원해 버리고 만 자신을 보면서도, 나의 스승, (그분에게도 결점은 있다.) 이 보여준 인간미를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은 풀 수 없는 모순 속에 두 개의 자아, 선성과 악성이 싸우다가 가는 것일지도 모 르겠다.
지난 7일 개막한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본다. 가장 잘 미끄러지는 눈과 빙판 위에서, 가장 잘 미끄러지는 신발을 신고, 인간의 총체묘기를 연출해 보이고 있다. 미끄러지기 쉬운 세상속에 서도 인간성을 다듬은 인간미가 오늘도 내게서 동계올림픽의 인간발휘처럼, 아름다운 인간미로 피어 나면 좋겠다.
험한 세상 살고, 살벌하기만 인간들의 관계 속에 '사이먼과 가핑걸'의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 어...>의 노래와 요즈음 어디선가 들은 노사연의 '만남'이라는 가요가 가슴을 파고드는 시간이다. 꽃이라도 활짝피는 봄다운 분명한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