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끝없이 흐르고 있는 시간에 매듭을 지어, 새해 새 칼렌다를 걸 수 있는 것이 올해 만큼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해도 없는 것같다. 국가 도산의 위기를 부른 실(實)없는 한국경제 의 거품성 허세성장이 세계의 조롱과 수치거리가 된 1997년이었다. 환율 1달러당 1,900원까 지 치솟았던, IMF의 냉혹한 경제논리로 한국을 평가하는 기준은 냉정하고 정확했다. 두 번 다시 입에 올리기도 싫은 한국형 정경유착, 부정부패의 치부를 세계 만방에 발가벗기운채 들어내보인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족벌 재벌체제의 이상한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이 언젠가는 당해야 하는 시대의 흐름인 것이다.
IMF 앞에 두 번이나 약속이행 각서를 확인해주어야 하는 국가신뢰성의 국치를 당하고도 세 계가 보고 있는 한국을 우리가 스스로 볼 수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망국을 자초하는 것이다. 한국을, 또는 한국 사람을, 한국의 관행을, 한국인끼리만 통할 수 있는 소위 ‘한국의 정 서’를, 객관적 평가를 스스로 겸손하게 반성해보아야 하는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우리는 서 있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릿저널, 워싱턴포스트, 프랑스의 르몽드지,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 등에 보도된 한국의 평가는 IMF의 준엄한 규약보다 냉혹했다. ‘촌티나는 한국 졸부들의 작태’, ‘한국꼴 난다.’라는 모멸적 한국인상을 꼬집고 있다. 온 세계가 ‘한국인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좋게 말해서 그렇지 그건 거짓말쟁이라는 말과 다를 것 없다. ‘조 작된 회계장부, 협잡성 실적수치의 교활성’을 하나도 믿지 않고 있다. 늪 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도덕성, 윤리성의 문제다.
같은 한국인으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느끼는 것은 사회 저변의 밑빠진 부패, 술집, 모텔, 호 텔, 이발소, 룸싸롱, 사우나탕, 백화점에 진열된 2, 3배가 넘는 외국 상표들, 사치의 극치, 과 소비의 극한을 이루고 있는 분위기 속에 떡값뇌물과, 비자금, 국정을 이끄는 국회의원들의 저질성…,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썩지 않는 곳이 없다. 도대체 이런 분위기의 나라에서 무엇 을 기대할 수 있는지 도덕과 윤리가 썩어빠진 분위기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국민의식의 신뢰도와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거듭날 수 있느냐, 아니면 객관적 시각을 독선적 권위주의로 묵살해버리고 자멸을 촉구하느냐의 선택이다. 문 제의 핵심을 피해갈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세계화의 경제구조와 지구를 한 마을로 꿰뚫 어 놓은 정보 통신과학에 눈을 제대로 떠야만 살아 남기라도 한다.
우리 민족의 저력과 잠재적 무한 가능성을 믿는다. 마음만 먹으면 못해 낼 일이 없는 민족 이다. 뽑아놓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매달려서도 안되고, 경제의 수치에 목을 걸어도 안된 다. 밖에서 보는 우리 조국의 위기는 ‘국민의식의 신뢰성 회복’이다. 문제의 핵심은 졸속 한 부에 밀려나버린 정신과 도덕과 윤리의 부재공동화(不在空洞禍)의 문제다.
이 문제의 원천적 책임은 ‘성(聖)’자를 부친 종교인들에게 있다. 나 자신에게 있고, 하나 님나라를 확장해야 하는 우리들 자신의 것이다. 옛날에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면 열린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고 들어갔지만, 지금은 개구리탈을 벗어 던지지 못하면 열린 세 계가 먹어버리는 시대이다.
새로 맞은 1998년 새해 새 달력을 달면서, 참으로 겸허하게 성실과 정직으로 자신을 돌아보 며 한 걸음 한 걸음 성숙의 발걸음을 다시 배워야 한다.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사의 존 웰치 회장은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지배한 다.’라고 했다. ‘거짓말 안하기 운동’ 같은 기본적인 국민운동이 오히려 시급하다. ‘국 가신용 공황사태’와 더불어 경제위기 극복에 앞서 ‘국민의식의 신뢰성과 성숙성’을 구축 해야 할 1998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