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잔인한 1997년이 마지막 가는 12월 31일, 잊을 망자, 망년(忘年)의 날이다.
하늘도 안쓰러웠던지 지난 한해 거칠고 험난했던 우리 마음을 쓰다듬어 주듯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고 있다. 길로 말하자면 이렇게도 험한 가시밭길은 일찍이 없었고, 뱃길 항로도 이렇게 높은 거센 파도 풍랑도 일찍이 없었다. 항공길 난기류 돌풍도 올해처럼 변덕을 부린 해도 없었다. 육해공으로 국내외에 불어닥친 몽둥이로 잔뜩 두들겨 맞아 피멍이 들고 기절했다가 깨어나기를 몇 번이나 했던 1997년이었다. "참담하기만 했던 1997년은 어서 지구를 떠나라." 나는 미리 새해 칼렌다를 걸어 놓고 며칠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지난 한해 모두가 철학과를 지망하지 않고도 인생철학을 다시 재수한 재수. 삼수생들이 었다. 한국은 이제야 말로 진정한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삼수를 해내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좌절을 경험했고, 인생 비극과 행복이 무엇인가를 역사위에 부침 한 인물을 통해 배운 소중한 한해 였다.
시간과 역사, 그리고 인간의 필연과 신의 간섭, 불가사의 인간한계를 필수과목 학점을 다시 채 워 넣어야만 한 1997년이었다. 사실은 사실대로, 실제는 실제대로 돌아야 하는 역사의 준엄한 채점 평가의 진실이었다. 지난 한해의 세계와 한국의 10대 사건을 다시 여기서 정리하지 않아도 우리는 눈으로, 피부로 보고 만져 보았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고 그 흐름 속에 희망이라는 파랑새를 좇아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하는 삶 자체의 의욕을 가지고 오늘을 서 있는 것이다. 그 시간과 희망의 파랑새 사이에 약속이라는 조 건이 있다. 그 약속의 속에는 신뢰와 믿음, 순종과 겸손 같은, 그 희망의 실제를 잡을 수 있는 인격적 구성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거짓과 불신과 허풍의 허세 속에는 결코 그 약속의 희망 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보기에도 민망스런 우리 고국 한국의 오늘, 만천하에 벌거벗고 치부를 들어내고 서있는 초라한 모습의 굴욕적 치욕은 그 뿌리가 깊다. IMF 덕분에 이제야 겨우 제 모습을 조금이나마 겨우 비쳐 볼 수 있게 되었다. 불행중 천만 다행스런 일이다. 이 시간을 통해서도 지난 10개월간 몇 번이나 반복했던 지적을 다시 말할 시 간이 없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새해 1998년, 무인년 호랑이 해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새 칼렌다를 걸 것 이다. 문제는 새 칼렌다가 걸린다고 새해 새로운 일이 일어 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각오와 결심, 희망의 실제를 이룰 수 있는 우리의 마음 가짐과 삶의 내용이 새것이 되어야 한다. 한국의 도하 신문매체들은 허탈과 좌절에 주저앉은 국민의식을 깨우는 캠패인이 한창이다. "태 극기와 함께 다시 뛰자."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희망아 솟아라." "가라. 시련의 97년아"
패배와 실패. 좌절과 수치를 걷어 재치고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 성탄카드에 몇 자 써 보 낸 대학교수가 된 어느 제자의 글에서도 "선생님, 우리는 다시 일어섭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 인데요." 각오가 새로워짐을 읽었다. 그렇다.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인데 다시 일어서고도 남을 것이다.
가족에 끌려 제작비가 사상 최대로 들었다는 최근 개봉한 "타이타닉"영화를 보고 왔다. 그 화려 기만 했던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딪혀 두 조각이 났다. 그 처절한 파국 속에 두 남녀의 죽음 을 뛰어 넘는 사랑의 이야기를 주제로 깔고 있다. 그 거대한 "타이타닉호"는 파멸했지만 "사랑 의 승리"는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 엄청난 파괴가 있었기 때문에 오 히려 그 아름다운 사랑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는 교훈처럼 보여준다.
암환자가 되어 암과 투병하면서, 고대 의대생 박경화 양은 의사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처 음엔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낙담만 했지요. 그러나 내게 신앙이 큰 힘이되 고난을 기 쁘게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투병하는 동안 환자의 고통과 고독을 잘 이 해 할 수 있게 됐지요. 내게 힘이 들수록 환자에게 꼭 필요한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더 간절해 졌다."고 했다.
판도라의 상자 속에 아직 못 빠져나간 "희망"이 남아 있다. 우리는 이 "희망"을 다시 굳게 잡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시간 속에 아직도 희망은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실패와 패배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 앞에서는 오히려 축배를 들어 준다.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슬퍼 하거나 노하지 말라!/암울한 날들을 견디면/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현재는 슬픈 것/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 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라.// 푸슈킨의 시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