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돈 돈, 돌고 있는 돈 바람에 세상도 덩달아 돌고 있다. 이렇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우리도 돌다가 함께 미쳐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1997년 12월 겨울은 참으로 추운 썰렁계절이다. 한국은 이제야 말로 진짜 '사정의 칼'을 휘두르 는 IMF의 날선 칼날로 십수십년 곪은 구조악의 수술을 받고 있다. 오늘 현재 환율이 달라당 1,700원까지 치솟았다.
얼어붙은 한국경제, 마비, 혼미, 도산, 부도로 은행들까지 국가은행에 산소 호흡기를 대고 있다. 숨 가쁜 고빗길을 죽을 힘를 다해 오르고 있다. 오늘 오르고 나면 무엇이 보이는가. 내일은 기 대마져 사라저버린 절망의 파산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총체적 위기의 재앙을 부른 부정부패의 뿌리 깊은 위기를 경고한지 오래다. 지난 여름 청와대에 벼락이 떨어지더니, 이제 죄없는 국민들까지 대 낮에 날벼락을 맞고 있다. 불사의 신 화 같은 화려한 한국형 '재벌'이라는 이상한 괴물도 그 실체를 들어내야 하는 엑스레이 앞에 벌 거벗고 떨고 서 있다.
택시, 이발소, 룸싸롱에서 부터 청와대 밀실까지 썩어 문드러진 사회도덕, 윤리의식, 국민을 대 표한다는 얼빠진 국회의원, 금뺏지를 달고 외유하며 불란서의 최고의 술을 사들고 오는 졸보들 이 나라의 대사를 논하고 있다. 국가가 도산하는 지경에 자신들의 세비를 30%올리고, 비서까지 더 증원시키는 국회의원을 가진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일 것이다.
옛날부터 '한국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는 자조적인 체념으로 살아온 우리들 이 아닌가. 독선적 권위권력 구조악의 뿌리는 정치계, 경제계, 종교계, 교육계, 사회 전반에 불치 병으로 이미 3기말의 암선고를 받은 지 오래 되었다. 한국은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 경제 만 살리면 된다는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 한국의 구조악적 의식 혁명 더 시급한 과제다.
세계의 시각은 혹독하다. 이제 겨우 좀 살게 되었다고, 과거를 망각하고 '야만적 천민 자본주의' 의 졸부의 촌티를 벗어야 한다. '부끄러운 재벌의 나라' '한국 꼴 난다.' 고 비아냥 조롱거리가 되었다. 최근 어느 대학에서 '한국사회의 천박성과 그 극복'이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세계 어디 를 가도 오만성으로 무례한 건방진 한국인 상'이라는 스스로의 결론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썩은 구조 속에서 이룬 악의 화려한 성곽은 무너져야 한다. 기업 도산, 금융기관 파탄, 정부. 중 앙은행 몰락은 3중의 파국은 썩고 썩어 고인 물에 허리케인으로 비를 몰고 와 싹 쓸어 버려야 하는 하늘의 재앙이다. 인간의 가장 근본 윤리와 도덕이 없어진지 오랜 나라에 오래 참고 찾아 온 신의 채찍이다.
아직도 얼빠진 어떤 지식층에서는 IMF가 국가경제주권을 찬탈하려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제2의 '국치일'이라고 한다. 그래도 IMF라도 있어서 공식적 국가 도산의 '모라토리움'(대외지불 정지)이라는 무서운 국가파멸에 숨통이라도 트고 순간이라도 연명하게 된 고마움을 알아야 한 다. 그리고 세계화의 구호가 아닌 '세계화의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무지(無知)부터 다시 깨쳐야 살아 남는다. 신문과 방송매체가 사설로 칼럼으로 특별기고로 애타게 목청껏 부르짖고 있지만, 아직도 만성 불황불감증의 국민의식은 깊은 잠 속에 코를 골고만 있다. 부잣집만 털다가 잡힌 어느 강도도 놀란 부잣집 장롱 속에 감춰둔 6만 달러, 검사는 잠깐 재미 로 수천 만대의 포커를 즐긴다. 피가 마르고 살이 타들어 가는 협상을 IMF와 밤새워 하고 있 던 서울의 화려한 힐튼호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의 지하 디스코텍의 귀를 찢는 밴드소리와 술 취한 젊은이들의 비틀거리는 사회의식 부재현상이 한국을 공동(空洞)의 텅빈 거품현상을 풍선 높이 띄어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의식의 부재, 이것이 문제다. 인간 의식의 쟁화에 앞장선 종교들 마저 부정과 부패의 은신처가 되고, 신의 이름으로 이들을 성화의 세례까지 베풀어주지 않았던가. 중생을 죄악의 사파에서 구 원하는 저 종교라는 이름의 잡신 배들이 오늘의 이 망국비극에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참으로 차겁고 썰렁한 12월을 보내고 있다. 암담한 세모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은 아무것도 보 이지 않는다. 시간 속에 감추어 있는 희망이라는 위안의 상자 속에 아직도 '우리의 희망'은 있 는 것인가. 이제 더 이상 엎질어 질 것도 없는 막가는 판에 누가 누구를 탓할 것인가. <나> 자 신의 의식혁신이 국민의식 성숙으로 자라야 한다고 다짐 할 때다. 폐쇄된 나만의 동굴속에서 열린 세계의 의식의 객관화가 절실하다. 올해의 산타클로즈는 이 열린 세상에 "너희가 인터넷이 라도 아느냐?"고 묻고 나서 선물을 놓고 갈 것 같다.
오늘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자신의 인권은 자신이 찾는다. GE회장 존 웰치는 "자신이 주 인이 되지 않으면 남이 자신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했다.
1997년의 12월 칼렌다를 거두기전에,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안고 1998년을 새로 걸 수 있는 의식의 깨어남이 더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