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1년 프리머스 청교도들이 첫해 곡식을 거두고 자유와 곡식, 안전으로 지켜준 하나님께 드린 첫 번째 감사였다. 프리머스 총독 윌리암 브래포드(Governor William Bradford)가 11월 29일 온 주민을 메이플라워호가 첫 닻줄을 맨 Plymouth Rock 언덕 교회에 모여 감사의 예배를 하나님 께 드리고 감사절로 선언했다.
200년후 1863년 아브라함 링컨이 감사절을 매년 11월 4쨋주 목요일을 공식 휴일로 정하고 선포 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절기다. 터키를 굽고 흩어진 가족이 모여 감사를 되새기며 즐기는 아름 다운 축제의 절기다. 나라마다 추수를 끝낸 후 축제를 벌리는 절기들이 있다. 우리고국도 추석 한가위의 절기가 큰 명절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시작한 감사절(Thanksgiving Day)은 그 동기와 내용에 있어 감사의 대상이 조물주에게 분명히 하고 있는 점이 특별하다. 지금은 다민족의 혼합 속에 이름 그대로 하나의 할러데이로만 근본을 잊은 절기중 하나로 지켜 지고 있는 것이 아쉬운 마음이다. 우리말로는 '추수감사절'로 부르지만 영어의 단어를 그대로 옴기면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한해 가 마지막 가는 시간에 감사의 의미를 되 새겨 보며, 삶의 의미를 감사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더욱 감사의 의미가 주는 삶의 내용을 풍성하게 일깨워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년에 한번 절기로 지키는 <감사절>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의 정상적인 삶이 <감사절>이 되 어야하는 감사가 참된 감사가 된다.
'감사'라는 말의 그리스어의 어원은 '카리스'라는 말로 '은혜'라는 말과 같은 동의어로 쓰인다. 감 사는 은혜와 동전의 앞뒤면이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감사를 할 수 있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이 은혜라는 축복을 이해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은혜망각시대, 감사결핍증으로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중대한 병폐를 초래하고 있다. 망각은 단절의 죄악이다. 잊어버린 감사는 마음의 질 서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원망과 시비와 불평 불만이 싹튼다. 혼란을 부르고 삶의 의욕을 좀먹 기 시작한다.
플라톤은 임종시 자기의 주어진 운명에 감사하며, 첫째로 남자로 태어난 것, 다음으로 야만인이 나 짐승이 아닌 그리스인으로 태어난 것,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 하고 죽었다.
유태인의 성전에는 "혀로 감사한다는 말을 버릇들이기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경구가 있 다. 스페인에는 '하루 그라시어(감사)를 백번 하지 않고는 저녁밥을 먹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인간의 생체리듬과 마음자세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때 건강의 신비, 엔돌핀 돌풍을 몰고 왔던 이상구 박사의 건강법에는 병이나 암에 대한 저항력인 T임파구가 감사하며 감사 받는 기 쁨 속에 엔돌핀에 의해 증가한다고 했다. 감사는 정상의 삶속에 흠뻑 젖어 있는 은혜 속에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한다. 절망 같은 좌절, 슬퍼진 마음, 외로운 고독의 문을 열어 강한 햇살로 지하실에 핀 곰팡이를 사라지게 한다.
감사는 뜻밖의 행운을 안겨준 복권 당첨 같은 기적 같은 사건보다 평범한 일상의 정상이 더욱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서 올바른 감사를 배우게 된다. 우리는 흔히 매일 매일 정상적인 생활의 일상 기적을 살다가 사고가 나서 겨우 남은 것으로 감 사를 배운다. 자동차 사고를 내고 부러진 다리 하나가 남아 있는 것으로 감사를 배운다.
감사를 잊은 망덕은 그 대가를 엄청나게 치루고라도 감사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무서운 훈육선 생이다.
감사는 비타민과도 같아서 가지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모두 불러내 활성화 시켜주는 묘약이 다. 적극적 사고의 원리, 긍정적 사고, 창의적 사고, 수평적 사고, 수직적 사고 등등의 인간자세 의 사고의 원리가 있다. 그러나 감사의 사고의 원리는 이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이모든 사고의 원리를 가동시켜주는 엔진과도 같은 바탕사고의 원본이다.
감사는 오만을 싫어한다. 감사는 교만한 마음에는 말라 버린다. 감사는 겸손한 마음 바탕에서 샘솟는 속일 수 없는 순수한 샘속의 솟아 오른 생수와 같다. 감사는 감사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하는 감사가 참된 겸허를 아는 감사가 된다. 잘되기 만 하는 일에 감사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억울한 일을 당하고 하는 감사는 인간 겸허를 아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다. 작은 감사가 큰 감사를 만들어 준다.
[안드류 머레이(Andrew Murray)의 '겸손'이라는 시속에서 우리는 이 감사절, 참된 감사를 다시 한번 겸손한 나 자신을 되새겨 배우면 좋겠다. " 겸 손 " / 겸손이란, 마음의 완전한 고요함입니다./ 괴로워하는 마음이 없는 그런 것입니다.// 겸손이란, 결코 초조하지 않고, 흥분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으며, 스스로 실망하지 않는 그런 것 입니다.//아무 것도 그 댓가를 기대 하지 않으며, 내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놀라워 하지 아니 합니다.// 겸손이란, 아무도 날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때, 내가 꾸중을 들을 때, 내가 욕을 먹을 때, 그럴 때 그것으로 인해, 나로 하여금 편히 쉬게 해 주는 것입니다.//겸손이란, 하 나님의 품속에서, 축복 받는 따사로운 "홈"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나는 이 집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히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기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이란, 온 세상이 걱정으 로 꽉 차 있을 때, 깊은 바다 속과 같은 그런 평화 속에, 나를 잠기게 하고 또 머물러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 ]
감사할 수 있는 인간의 겸허한 자세는 동전의 앞면 뒷면에서 참 행복을 불러온다. 감사는 주어진 삶을 긍정하는 막강한 힘을 얻는 원동력이다. 감사는 인간성숙의 척도다.
행복은 감사에 비례하고, 욕망에 반비례한다. 욕망의 성격이 어떤것인가에 행복할수 있는 인간 조건이 있다.